“매킬로이처럼” 12번홀 회심의 샷…현실은 ‘래의 개울’ 퐁당 [오거스타내셔널 체험기]
마스터스 다음날 대회 코스서 ‘꿈의 라운드’
빌 게이츠·버핏 등 회원인 특급프라이빗 클럽
캐디가 그린서 하는 말 “많이 빨라” “엄청 빨라”
우즈·매킬로이 숨결 느끼며 9㎞ ‘워킹 골프’
아멘코너 13번 홀 다리 아래엔 늑대거북 ‘빼꼼’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경험한 행운아들”
입력2026-04-17 18:41
수정2026-04-17 23:34
지면 2면
13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의 7번 홀(파4). 티샷을 페어웨이에 잘 보내놓고 두 번째 샷으로 친 웨지 샷도 그린 앞 벙커를 잘 넘어 홀 1m 안쪽에 멈췄다. 버디 찬스. 퍼트 라인을 신중하게 읽은 뒤 조심스럽게 친 퍼트가 애석하게도 홀 왼쪽을 훑고 지나갔다. 파를 적는 데 만족해야 했다.
오거스타내셔널에서 열린 최고 메이저 골프 대회 마스터스 경기의 일부 같지만 사실은 기자가 마스터스 폐막 다음 날 경험한 ‘꿈의 라운드’ 중 한 장면이다.
4%의 확률 뚫고 오거스타내셔널에 서다
마스터스는 세계 각국에서 온 현장 취재기자들을 대상으로 ‘먼데이 골프 미디어 로터리’를 연다. 일요일 최종 라운드 바로 다음 날 대회 코스에서 라운드할 기회를 준다. 90회 대회인 올해는 약 500명이 라운드를 신청해 20명을 뽑았다. 당첨 확률은 4%. 서울경제신문은 기적 같은 확률을 뚫고 라운드 기회를 잡았다. 기자는 USA투데이의 댄 스피어스, 영국 데일리메일의 리애스 알 서마라이 등과 한 조를 이뤘다.
‘골프 성인’ 보비 존스의 주도로 1933년 문을 연 오거스타내셔널은 세상에서 가장 프라이빗한 골프장 중 하나다. 회원은 300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지는데 회원 명단은 비공개다. 알려진 회원은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 등이 전부다. 회원이 워낙 적다 보니 이곳에서 라운드할 수 있는 기회가 ‘하늘의 별 따기’다. 평소에는 회원이 동반자로 초대해야만 가능하다. 그나마 마스터스 대회가 끝난 후에는 미디어 로터리로 행운을 잡을 수 있다. 그 기회가 왔다.
자비없는 그린, 캐디는 연신 “Very fast”
오거스타내셔널에는 렌털 클럽이 없고 카트도 없다. 현지 주민에게 빌린 낯선 클럽으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기로 악명 높은 9㎞ 코스를 4시간 반 ‘워킹 골프’로 완주해야 했다. 최고 기온이 32도까지 올라간 더운 날이었다. 심지어 상당수 홀의 핀 위치가 마스터스 최종일 때와 같았다.
주최 측은 1인 1캐디 전통에 따라 기자들에게도 전담 캐디를 배정해줬다. 하얀색 ‘우주복’을 입는 바로 그 캐디다. 마스터스는 캐디에게 따로 돈을 주지 말라고 했지만 기자는 1번 홀 페어웨이에서 담당 캐디인 샘에게 몰래 50달러를 쥐여줬다. “당신만 믿는다”는 말과 애절한 눈빛도 함께. 샘은 오거스타에서 수제맥주 유통업을 하며 이곳 캐디로 투잡을 뛴다고 했다. 마스터스 세 차례 우승을 자랑하는 닉 팔도가 얼마 전 이곳을 찾았을 때 그의 골프백을 멨다며 웃었다.
‘유리판’으로 잘 알려진 오거스타내셔널의 그린은 그야말로 자비가 없었다. 샘은 퍼트 때마다 “많이 빠르다(Very fast)” “엄청 많이 빠르다(Extremely fast)” 둘 중 하나만 번갈아 외쳤다. 도무지 쉬운 그린이 단 한 곳도 없었다. 골프장 측은 그린 스피드를 공개하지 않지만 샘은 “스팀프미터로 3.9m 정도 되는 것 같다”며 “그린의 경도와 스피드는 어제(마스터스 최종일)보다 더 심해 보인다”고 했다. 기자를 포함해 동반자들은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충분한 스트로크를 하지 못해 턱없이 짧게 치는 부작용을 자주 겪었다.
샘이 18홀 내내 가장 자주했던 말 중 또 다른 하나는 “나 같으면 퍼터를 들겠다”였다. 아이언 샷을 나름 정교하게 해도 높이 솟은 포대 형태의 극도로 단단한 그린은 공을 내뱉기 일쑤였다. 거의 모든 홀에서 그린이 아닌 주변에 공이 놓이는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린 주변의 잔디는 무척 짧았다. 웨지로 깨끗하게 치지 못하면 재앙인 조건이다. ‘굴릴 수 있으면 굴려라’라는 레슨 격언은 오거스타내셔널의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철칙인 듯했다. 문제는 핀 뒤편이 급격한 내리막일 때가 많다는 점. 너무 조심스러운 나머지 퍼트가 짧아 공이 다시 돌아왔고 제자리에서 다음 샷을 하는 굴욕을 몇 번이고 겪어야 했다.
도전해볼 만한 티샷 “매킬로이처럼”
PGA 투어 선수들은 US 오픈 대회장을 ‘거대한 야수’ ‘악마의 코스’라고 부르지만 오거스타내셔널을 그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티샷보다는 그린 공략 때 1야드 차이로도 기회와 좌절로 결과가 갈리기에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한 코스다.
이날 플레이한 멤버스 코스는 6365야드로 마스터스 대회 때의 7565야드에 비해 1200야드나 짧았다. 회원들도 다 이 티잉 구역을 쓴다. “생큐”였다. 통 큰 어드밴티지에 페어웨이는 널찍하게 트여 거침없는 티샷이 가능했다. 숲으로 들어가도 나무 간 간격이 넓어 레이업 또한 어렵지 않았다. “러프가 거의 없는 점을 이용해 최대한 티샷을 멀리 치겠다”는 로리 매킬로이의 전략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멘 코너서 “아멘”을 외치다
정신없이 라운드를 하다 보니 어느새 그 유명한 ‘아멘 코너(11~13홀)’에 접어들었다. 전·후반 사이 휴식 시간이 없었고 32도의 날씨에 카트 없이 걷다 보니 이미 체력은 방전된 상태.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다시 없을 기회인데 어떻게든 멘탈을 잡고 없는 힘도 짜내야 했다.
11번 홀(파4) 티샷을 잘 보냈지만 낮게 깔아친 두 번째 샷이 그린을 세게 때리고 뒤로 훌렁 넘어갔다. 그린까지 약 20m 남은 어프로치샷. 악! 강력한 뒤땅 샷이 나오며 고작 2m 전진에 그쳤다. 마음을 다잡고 그동안 경험했던 레슨 영상들을 떠올리며 다시 어프로치. 4온 2퍼트 더블보기로 홀아웃했다.
12번 홀(파3)에 들어서자 마스터스 티에 새겨진 깔끔한 디벗(클럽 헤드가 잔디를 파내서 남은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전날 선수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라고 했다. 왼편 어딘가에 매킬로이의 디벗도 있었을 것이다. 1타 차의 불안한 리드를 지키던 매킬로이는 이 홀에서 핀에 자석처럼 붙이는 티샷으로 결정적인 버디를 잡고 우승을 예감했다. 이날 전체 18홀 중 마스터스 티와 멤버스 티의 차이가 가장 적은 홀이기도 했다. 선수들은 155야드에서, 우리는 145야드에서 티샷을 했다. 7번 아이언을 조금 짧게 잡고 회심의 샷을 했지만 잠시 후 들린 것은 그린 입구 ‘래의 개울’에 빠지면서 난 ‘퐁당’ 소리. 공중에 예측불허의 바람이 많은 곳인데 그 영향이라고 믿으며 그린을 향해 걸었다. 벤 호건 브리지(1953년 벤 호건의 놀라운 플레이를 기념해 다리에 붙인 별명)를 건너가며 기념사진도 찰칵. 그나마 퍼터로 굴린 세 번째 샷을 잘 붙여 보기로 막았다.
체력이 점점 떨어지며 13번 홀(파5) 티샷도 시원찮아 2타를 잃은 뒤 기자는 ‘아멘’을 읊조렸다. 아멘 코너라는 이름은 1950년대 한 기자가 노래에서 따와 붙인 것이다. 어려워서 ‘아멘’ 하고 탄식하는 구간이라는 설명은 잘못 전해진 것이다. 심지어 아멘은 신앙적 확신의 표현이다. 11번 홀의 내리막 페어웨이를 걸을 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세 홀의 풍경화 연작은 왜 이곳이 ‘천국의 골프장’으로 불리는지 설명해주고 있었다.
캐디는 13번 홀 페어웨이 방향의 바이런 넬슨 브리지를 건너는 기자에게 다리 아래를 보라고 했다. 귀여운 거북들이 헤엄치고 있었고 그중 몸집이 가장 큰 한 마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눈을 마주치려 했다. 늑대거북(snapping turtle)이라고 했다. 이로써 기자는 오거스타내셔널 회원이나 마스터스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만나면 13번 홀의 늑대거북과 만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렇게 받아든 아멘 코너 성적표는 더블보기·보기·더블보기.
타이거가 나이키를 남긴 16번 홀
16번 홀(파3) 티 박스에 올라섰다. 마스터스 출전 선수들이 연습 라운드 때 ‘물수제비 샷’ 묘기를 선보이는 홀이다. 이 홀이 더 유명해진 것은 2005년 타이거 우즈가 선보인 기적의 칩샷 덕분이다. 당시 우즈는 티샷을 러프로 보냈다. 하지만 웨지 칩샷으로 그린에 떨어뜨린 볼이 90도로 꺾여 홀로 빨려들어가는 버디를 잡았고 연장 끝에 우승했다. 약 1.5초 동안 볼이 홀에 걸려 멈춘 사이 나이키 로고는 엄청난 광고 효과를 누렸다. 마음 속에 그 장면을 떠올리다 보니 집중력은 사라졌다. 티샷은 물에 빠졌고 세 번째 샷을 퍼터로 그린 위에 올린 후 투 퍼트. 더블보기로 홀을 빠져나왔다.
천국의 골프장 스코어카드는 106
기자는 올해 우승자 매킬로이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얻으려고 라운드 내내 매킬로이가 쓰는 테일러메이드 TP5 볼을 썼다. 그만큼 그의 샷은 대단했고 기자의 절박함은 간절했다. 마지막 18번 홀을 마친 뒤 샘에게 부탁해 지난해 매킬로이가 무릎 꿇고 흐느꼈던 모습을 재현하는 ‘설정 샷’을 남겼다. 사진을 찍어준 샘은 그린 한편을 가리키며 “40년 전 바로 저기서 잭 니클라우스의 여섯 번째 마스터스 우승을 아버지와 함께 지켜봤다”며 감상에 잠겼다. 18홀 전투를 함께 치른 동반자 중 댄은 “우리는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경험한 행운아들”이라며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클럽하우스로 돌아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봤다. 기자가 어떤 경험을 한 것인지 비로소 실감이 나면서 벅찬 감정에 압도되는 동시에 ‘다시 치면 더 잘 칠 것 같은데’라는 미련이 남았다. 그러나 미디어 로터리는 한 번 당첨되면 8년간은 기회가 없다. 106타가 적힌 스코어카드를 들고 천국의 골프장을 떠나는 발걸음이 괜스레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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