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고려아연 규제 우회 논란]
베인 보유 고려아연 지분 매입 위해
최씨 일가 주식 62만주 담보 제공
담보유지율 300%에 콜옵션도 설정
자본시장법 개인 신용공여는 금지
SK실트론·한투 TRS 활용도 제재
메리츠증권 사옥. 메리츠증권
최윤범 고려아연(010130) 회장과 메리츠증권이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고 5000억 원대 자금을 대출 받아 고려아연 지분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상 개인 신용공여 규제를 우회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와 고려아연의 지분 공시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최근 자본금 1200원에 불과한 SPC ‘피23파트너스’를 통해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보유하던 고려아연 지분 약 2%(41만 9082주)를 인수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이 SPC는 자기자본이 1200원에 불과하지만 메리츠증권 등을 상대로 총 5411억 원의 대출·사모사채를 일으켜 해당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했다. 형식상 인수 주체는 SPC지만 실질 자금 공급자는 메리츠증권을 비롯한 금융회사다.
문제는 담보와 옵션 구조에 있다. 메리츠 측은 이번 거래에 담보유지비율 300%라는 이례적으로 높은 조건을 설정했다. 이를 맞추기 위해 최 회장 등 최씨 일가 주주 11명은 자신들이 보유하던 고려아연 주식 62만주 이상을 SPC 대출에 대한 담보로 제공했다.
여기에 최씨 일가는 SPC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되살수 있는 콜옵션도 확보했다. 주가가 오를 경우 콜옵션을 행사해 SPC 지분을 되사와 차익을 가져가고 주가가 떨어져 담보비율이 무너지면 자신들이 제공한 담보 주식이 처분되는 구조다. 이익과 손실이 모두 최씨 일가에 귀속되는 전형적인 개인 신용 공여 구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자본시장법과 시행령은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신용공여를 기업금융 업무에 한정하면서 개인에 대한 신용공여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법은 대출뿐 아니라 지급보증과 담보제공, 파생상품을 이용한 간접 지원까지 포괄하는 실질적 의미의 신용공여를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
금융당국도 그간 형식보다 실질 원칙을 강조하며 이 같은 개인 신용 공여 우회 구조에 엄격하게 대응해왔다. 2018년 한국투자증권이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활용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매입을 지원했다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019년 한국투자증권이 신용공여 제한 위반, 단기금융업무 운용기준 위반 등을 했다고 보고 과태료 부과를 확정한 바 있다.
이번 고려아연 지분 거래 건은 외형상 SPC가 기업 대출을 받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최씨 일가 개인 주식을 담보로 잡고 콜옵션을 얹은 구조라는 점에서 이런 사례들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구체적인 위법 여부는 금융감독원의 정밀 분석을 거쳐야 가려질 전망이다. 콜옵션 행사 조건과 가격, 담보 처분 절차, 메리츠와 최씨 일가 간 별도 약정의 존재 여부 등에 따라 법 적용 여부와 제재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SPC 자체의 사업·현금흐름이 아닌 개인 주주의 담보와 옵션에만 의존하는 구조라면 종투사에 허용된 기업금융의 범위를 넘어 개인 신용공여 규제를 회피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