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까지 돔구장·아레나 ‘복붙’…시류 편승한 SOC 남발
[STOP 포퓰리즘 선거]
■여야 불문 ‘매표용 공약’ 극성
조단위 예산 불구 지역서 인기
수요 계산 없이 ‘일단 짓고보자’
철도·도로 등 토목사업 되풀이
전국 ‘유령공항’ 더 늘어날수도
“공약 단계서 철저한 검증 필요”
입력2026-04-19 17:40
수정2026-04-19 23:36
지면 3면
“107만 특례시 위상에 걸맞게 돔구장을 건립하겠습니다.”
6·3 지방선거 경기 화성시장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정명근 후보는 화성시에 대규모 돔구장을 짓겠다고 공약했다. 구체적인 규모가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지역에서는 국내 유일 돔구장인 고척 스카이돔(1만 6000석)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화성시에는 프로야구팀 없이 독립야구단(화성 코리요)만 하나 있을 뿐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돔구장, K팝 공연장 등 최대 ‘조 단위’ 예산이 드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현실성보다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공약이다 보니 프로야구·K팝 등 인기에 편승한 사업들이 ‘복사·붙여넣기’ 식으로 지역마다 반복되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선심성 현금 지급 공약과 함께 말은 그럴싸하지만 사실상 돈으로 표를 사는 매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특히 돔구장 공약이 여야 가릴 것 없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부산(전재수 민주당), 충남(김태흠 국민의힘), 충북(김영환 국민의힘), 전북(이원택 민주당) 등에서 주요 후보들이 돔구장 공약을 내건 상태다. 경선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서울시장 후보에 도전했던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해체하고 ‘서울돔’을 짓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조 단위의 예산이 소요돼 광역지방자치단체 단위로도 부담스러운 공약이지만 지역에서 워낙 ‘잘 먹히는’ 사업이다 보니 기초단체장 선거 후보자들도 심심치 않게 꺼내들고 있다. 경기 화성시뿐 아니라 재선을 노리는 박승원 광명시장(민주당)은 4만 석 규모의 돔 아레나(경기장·공연장) 구상을 내놨다. 백경현 구리시장, 이범석 청주시장(이상 국민의힘)도 돔구장 공약을 걸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서울에 위치한 고척돔마저 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인데 홈구장으로 고정 사용하는 연고팀이나 대형 공연 수요가 없는 지방에서 무슨 수로 사업성을 확보하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각 후보마다 프로야구단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자연스럽게 덧붙이면서 ‘땜질’을 하는 식이다.
K팝 인기에 편승한 초대형 공연장 개발 공약도 부지기수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정원오 후보는 서울시 상암동 유휴 부지에 K팝 아레나를 짓고 대규모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전재수 민주당 후보의 북항 개폐식 돔구장 공약에 맞서 영도구에 2만 석 규모의 K팝 아레나를 짓겠다고 했다. 김태흠 충남지사가 다목적 돔구장 공약을 선점하자 박수현 민주당 충남지사 후보는 GTX역 인근 K컬처 아레나 공약으로 맞받았다.
비슷비슷한 공약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다보니 선거 때마다 되풀이돼온 대규모 토목 사업이 오히려 현실성 있게 보일 정도다. 민주당 부산·울산·경남 후보들은 윤석열 정부에서 사실상 무산됐던 ‘부울경 메가시티’ 공약을 공동으로 내걸면서 “메가시티 해체로 중앙정부가 약속했던 35조 원이 날아갔다”고 주장했다. 대구에서는 여야 후보 가릴 것 없이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 관련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 1년 예산은 약 11조 원인데 TK 신공항 예상 사업비는 30조 원에 달해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철마다 반복되는 철도·도로 공약도 공염불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지적이다.
대규모 SOC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되더라도 그 자체가 문제로 전락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건설됐던 알펜시아리조트가 대표적이다. 총 사업비 1조 6000억 원을 들인 대규모 사업이었지만 부채가 1조 원이 넘으면서 매각됐다. 3500억 원이 투입된 강원도 양양공항의 경우 항공편이 극히 적어 ‘유령 공항’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24년 도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잼버리와 레고랜드, 가덕도 신공항 사업 등이 ‘최악의 도시개발·공공사업’으로 꼽혔다.
정치권과 개발 업계에서는 대규모 개발 공약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실패 시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 재정의 악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며 공약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언뜻 보기에는 돈이 풀리니 경기가 활성화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시중에 풀린 유동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할 수 있다”며 “물가 상승 여파로 이자율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기업이 고용을 줄이는 등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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