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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거친 美 원유, 43개월 만에 입항[biz-플러스]

파나마 운하 경유 미국산 원유

22년 9월 이후 처음 여수 입항

GS칼텍스 계약 선박 씨터틀호

홍해항로 통과 VLCC 입항예정

“전쟁 후에도 루트 분산 계속”

입력2026-04-21 07:19

수정2026-04-21 07:21

GS칼텍스 여수공장에 설치된 대형 원유 저장 탱크. 대형 유조선이 부두에 접안하면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를 원유탱크로 옮긴다./GS칼텍스
GS칼텍스 여수공장에 설치된 대형 원유 저장 탱크. 대형 유조선이 부두에 접안하면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를 원유탱크로 옮긴다./GS칼텍스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 고조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반복되는 가운데 파나마 운하를 경유한 미국산 원유가 2022년 9월 이후 처음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정부가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를 선언한 상황에서 그간 비용 문제로 외면받던 파나마 운하 항로가 재개되고 홍해 경로를 통한 공급도 가시화되면서 한국의 에너지 수급 체계 재편이 본격화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GS칼텍스의 원유를 실은 아프라막스(Aframax)급 유조선 씨터틀(Sea Turtle)호가 지난 19일 오후 여수항에 입항했다. 아프라막스급은 최대 적재량 8만~12만 톤급의 중형 선박으로 30만 톤인 초대형 유조선(VLCC)이 진입하기 어려운 좁은 수로나 수심이 얕은 항만까지 접근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씨터틀호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항에서 원유를 선적한 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 약 한 달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최대 적재 가능 중량이 약 11만 4000톤인 이 선박에는 약 80만 배럴의 원유가 실린 것으로 추정된다.

GS칼텍스 여수공장 인근의 원유 부두. 대형 유조선이 부두에 접안하면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를 원유탱크로 옮긴다./GS칼텍스
GS칼텍스 여수공장 인근의 원유 부두. 대형 유조선이 부두에 접안하면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를 원유탱크로 옮긴다./GS칼텍스

선박 추적 정보 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미국 걸프만에서 파나마 운하를 거쳐 한국으로 원유를 수송한 것은 2022년 9월 이후 약 3년 7개월 만이다. 이 항로가 그동안 활용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은 수심에 있었다. 호르무즈 해협이 열려 있던 평시에 국내 정유사들은 주로 중동에서 VLCC를 통해 원유를 들여왔는데, 배를 꽉 채운 ‘만재’ 상태의 VLCC는 수심이 얕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미국산 원유를 도입할 때도 VLCC에 실어 대서양을 건너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경로를 택해왔다. 파나마 운하 통과가 가능한 아프라막스급은 배럴당 운송비가 VLCC보다 비싸 중동 공급이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경제적 유인이 낮았기 때문이다.

상황은 지난 2월 말 급변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이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 노선 운항이 차질을 빚으면서 파나마 운하가 다시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정부도 “싼 맛에 한 곳(중동)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항로를 포함한 공급망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4~5월 물량의 70~80%를 확보했다”면서도 “전쟁이 당장 내일 끝나더라도 수급 체계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핵심 전략은 수송 경로의 분산이다. 김 장관은 카자흐스탄산을 ‘매력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며 “소량은 수에즈 운하와 홍해를 거쳐 빠르게 들여올 수 있고, 대량은 희망봉을 돌아도 55~60일이면 도착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산 경질유에 대해서도 “우리 정유사가 중동산 중질유와 섞어 쓰기에 가장 편한 유종”이라며 “대미 투자 프로젝트와의 연관성을 떠나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중요한 옵션”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번 분쟁이 종료되더라도 비중동산 원유 도입 확대와 수송 루트 다원화 기조를 지속할 방침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선박 추적 사이트 등에 따르면 약 100만 배럴을 선적할 수 있는 수에즈막스(Suezmax)급 원유 운반선 한 척이 한국과 계약을 맺고 휴스턴을 출발해 최근 파나마 운하 입구에 도착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해당 선박이 한국 측과 1600만 달러 규모의 용선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때 정부가 운항 자제를 권고했던 홍해 경로도 다시 가동된다. SK해운 소속 VLCC는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항에서 원유를 싣고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 현재 인도양을 항해 중이며 약 보름 뒤 한국 도착이 예상된다. 이는 호르무즈 봉쇄 이후 국내로 향하는 첫 유조선이자 홍해 경로를 통한 첫 수송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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