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는 기준이 아니다
이상훈 AX콘텐츠랩장
성과급, 영업익 10%고정 하이닉스에
삼전·현대차 노조 무리한 보상 요구
일률적 현금 지급, 지속성·인재확보↓
조직 안정·차등 보상 등 韓모델 찾아야
입력2026-04-21 17:54
수정2026-04-21 23:40
지면 30면
요즘 산업계가 임금 협상으로 시끄럽다. 직장인에게 임금 협상은 ‘나’라는 상품의 단가를 매기는 가혹하고도 정직한 성적표다. 동시에 사회적 서열을 확인하는 리트머스시험지로써 조직 구성원의 자존감과도 얽혀 있다. 그래서 임금 협상 결과는 ‘노동력 매매’ 이상의 다층적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다른 기업과의 비교도 당연하게 따라온다.
올해는 유독 SK하이닉스의 성과급 문제로 다른 기업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하이닉스가 지난해 하반기 일찌감치 임금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일종의 기준점이 돼버린 탓이다. 특히 하이닉스의 성과급 조항이 뜨거운 감자다.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고 상한선을 걷어낸 게 뼈대다. 지급 방식도 금액의 80%를 한 번에 현금으로 지급하고 20%는 향후 2년에 걸쳐 이연 지급하도록 했다. 그 결과 2월에 4조 5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현금이 뿌려졌고 이것이 타사의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으로 영업이익의 15%를, 심지어 현대차 노조는 순이익의 30%를 각각 요구하고 있다. 개별 기업 간 임금 협상이 흡사 성과급 비율 경쟁으로 변질된 듯한 양상이다.
이런 소동을 보노라면 이참에 한국형 성과급 모델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미국식 모델이 ‘슈퍼스타’ 한두 명에게 천문학적 보상을 몰아주는 구조라면, 한국은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핵심 인재를 두텁게 보호하되 보편적 현금 살포는 지양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하이닉스의 경우 성과급 모델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에는 특수성에 기반한 맹점이 적지 않다. 당장 초호황기에 설계된 공격적 보상 시스템이라 지속 가능성이 약하다. 메모리 업황은 변동성이 크다. 성과급이 변동비가 아니라 사실상 고정되는 순간 기업은 불황기에 선택지를 잃는다. 무엇보다 반도체는 자본집약적이다. 막대한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이 필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이익을 성과급에 연동하는 구조는 기업 체력과 미래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중장기 보상보다 즉각적인 현금 지급에 방점이 찍힌 것도 부담스럽다. 미국 역시 현금 보상이 적지 않지만 핵심 인재 보상만큼은 장기 주식 기반으로 묶어둔다는 점이 다르다. 주식을 일정 기간 보유하거나 재직해야 온전히 내 것이 된다. 핵심 인재들이 성과급만 챙겨서 이직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물론 이 경우에도 주식을 새로 찍어 지급하는 탓에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희석되고 또 특정 개인에게 과도하게 보상되는 부작용이 있다. 그럼에도 주식 지급은 ‘회사만 다니면 받는 돈’이 아니라 ‘회사가 잘돼야 내 주머니도 두둑해진다’는 주인의식을 강제하는 순기능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
사실 성과급으로 단기 보상을, 그것도 현금 지급을 선호하는 한국적 상황은 달리 보면 직장인의 불안감이 투영된 측면이 있다. 대기업의 고용 안정성이 약한 만큼 돈을 벌 때 확실히 한몫 챙겨야 한다는 집단심리가 단기 보상으로 귀결되기 쉽다는 의미다. 특히 조직 내 위화감을 되도록 피하려는 한국적 문화와 인재 선별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점도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해도 누구나 똑같은 성과급을 받는 보상의 비효율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지금은 보상의 기준이 흔들리는 과도기다. 인공지능(AI) 확산이 반도체 초호황 등을 이끌며 산업의 수익 구조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문제는 이 변화가 곧바로 기업 간 보상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상이 동기부여가 아니라 사정이 천차만별인 기업의 자본 배분을 왜곡시키는 도화선이 돼서는 곤란하다.
자칫 자존심 경쟁에 매몰될 경우 보상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결국 산업 경쟁력 훼손이라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공멸의 레이스로 치닫기 전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기업은 재무 규율을 지키고, 주주는 그 일탈에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보상의 기준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주력 산업 퇴조는 물론 한국 증시의 선진화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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