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성장 망치는 불법 ‘공매도’
이보형 한국마콜컨설팅그룹 대표
韓, 美·유럽처럼 공매도 허용하나
합법 가장 불법·불투명성 문제 지속
증시상승으로 공매도 논란 재연 조짐
혁신 상장기업 표적으로 루머 유포도
“합법 보장하되 시장교란 철퇴 필요”
입력2026-04-23 15:46
수정2026-04-23 16:09
이보형
마콜컨설팅그룹 사장
코스피지수가 6400을 넘어서면서, 다시 한국 증시에서 공매도 논쟁이 조금씩 들려온다. 주가가 급락하면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 다시 허용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 논쟁은 애초에 질문의 방향부터 잘못되었다. 정말 물어야 할 것은 ‘공매도를 없앨 것인가’가 아니다. ‘불법 공매도와 시장교란 세력을 어떻게 뿌리 뽑을 것인가’다.
공매도는 원래 불법은 아니다.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는 오래전부터 공매도를 시장의 정상적 거래기법으로 보되 강한 위험 통제와 보고, 집행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봐 왔다. 유럽연합(EU)의 증권시장감독기관(ESMA)도 같은 입장이다. 유럽의 공매도 규정은 공매도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무차입 공매도는 막고 일정 수준 이상의 순공매도 포지션은 감독당국에 보고하게 한다. 그래서 시장 불안이 커질 때는 예외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한 마디로 국제 기준은 분명하다. ‘합법적 공매도는 허용하되, 불법과 불투명성은 강하게 제어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 원칙을 가장 실용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004년 도입한 종합 공매도 규정인 ‘규정 SHO(Regulation SHO)’를 통해 공매도 실행 전에 주식차입 가능 여부를 확약하도록 의무화하고, 결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물량이 누적되면 이를 정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 어떤 종목이 하루에 10% 이상 급락하면 룰 201(Rule 201)이 발동돼, 그날과 다음 날에는 공매도가 추가 하락을 밀어붙이기 어렵게 제동을 건다. 미국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지 않는다. 대신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해 정밀하게 속도를 조절한다.
미국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성장 기업이 일정 수준 이상 커지면 제도권 자금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나스닥100은 시가총액 중심으로 편입하고 비중을 조정하는 지수다. 기업이 커질수록 지수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진다. 그러면 그 지수를 따라 투자하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상장지수펀드(ETF) 자금이 자연스럽게 그 기업으로 흘러 들어온다. 쉽게 말해, 한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아 실력을 증명하면 ‘공매도 표적’에서 ‘대표 우량 성장주’로 신분이 바뀌는 구조가 작동하는 것이다. 테슬라가 S&P500에 편입된 것은 그 상징적 장면이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같은 장면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혁신 기업이 급성장하면 ‘이제 한국판 테슬라가 나오나’라는 기대보다 ‘이제 공매도 타깃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이 먼저 생긴다. 이 불안이 과장만은 아닌 이유는 한국 정부 스스로 그 문제를 인정해 왔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2023년 11월 공매도 전면 금지를 결정하며 그 배경으로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대규모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 공정한 가격 형성 훼손 우려, 자본시장 신뢰 약화를 들었다. 2024년에는 제도 정비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금지를 연장했다. 실제 2025년 재개를 앞두고는 한국거래소의 무차입 공매도 탐지시스템, 기관투자가의 전산 잔고관리, 일별 잔고 제출 체계까지 새로이 구축하면서 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한국 공매도 문제의 핵심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동안 불법 공매도를 상시적으로 잡아낼 시스템이 충분히 없었다는 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금지와 허용 사이에서 늘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쪽에는 시장 효율성과 국제 신뢰가 있다. 모건스탠리는 2025년 시장접근성 평가에서 공매도 허용과 함께 개선된 것으로 밝혔다. 한국자본시장연구원도 2025년 자본시장 주요 과제로 공매도 재개와 제도개선을 함께 꼽았다. 다른 한쪽에는 개인투자자의 뿌리 깊은 불신과 정치적 부담이 있다. 불법 공매도 적발 사례가 반복되는데도 제재가 약하거나 늦다고 느끼는 순간, 공매도 논쟁은 제도 논쟁이 아니라 공정성 논쟁, 더 나아가 정치 논쟁이 된다. 정부가 오락가락하게 보이는 이유는 시장 논리와 정치 논리 사이에서 매번 늦게 반응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정부가 관리해야 할 것은 공매도라는 칼 자체가 아니다. 칼을 부당하게 휘두르는 손이다. 정책도 그 지점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무차입 공매도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에 가깝게 다뤄야 한다. 과징금 몇 번 부과하는 수준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반복 위반 기관은 일정 기간 한국 시장 공매도 참여를 제한하고, 위반 사실과 제재 내용을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미 금융당국은 공매도 위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왔지만, 시장이 체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둘째, 공매도 잔고와 대차거래 정보의 공개를 더 촘촘하게 해야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대규모 공매도 포지션 보고를 강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은 단순히 공매도가 있다는 사실보다, 누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공매도하고 있는지를 알 때 훨씬 침착하게 반응한다. 정보가 보이면 소문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
셋째, 허위 리포트, 익명 메신저 루머, 특정 거래 패턴을 함께 보는 입체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 한국의 문제는 단순한 매도 주문이 아니라, 부정적 정보 유포와 거래가 동시에 움직인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 데 있다. 그렇다면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수사당국이 각각 따로 보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공매도 잔고, 대차거래, 리포트 배포, 온라인 루머 확산, 실제 매매 타이밍을 교차 분석하는 상설 합동 감시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시장 감시가 아니라 시장교란 네트워크 단속이다.
넷째, 성장주 보호를 위한 일시적 완충장치도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미국의 룰 201처럼 급락 시 자동으로 공매도 속도를 늦추는 장치는,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지 않으면서도 시장충격을 줄이는 현실적 방법이다. 한국은 늘 전면 금지냐 전면 허용이냐의 이분법에 갇혀 있었는데, 이제는 평상시 허용, 급변 시 자동 제동이라는 중간 해법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다.
핵심은 간단하다. 혁신기업이 실력을 입증해도 한국 시장에서는 아직 축하보다 ‘경계’가 먼저 온다. 성장하면 대표주가 되어 더 큰 자금을 끌어들이는 시장이 있는가 하면, 성장하면 루머와 불법 공매도의 표적이 되는 시장도 있다. 어느 시장이 더 많은 엔비디아와 테슬라를 키워낼 것인지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합법적 공매도는 제도로 관리하고, 불법 공매도 세력은 전 기관의 합동 시스템으로 추적하며, 시장교란에는 형사적·행정적으로 가장 무거운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는 공매도 찬반에 달려 있지 않다. 불법과 합법을 얼마나 냉정하게 갈라내고, 성장하는 기업을 얼마나 공정하게 보호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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