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흔들어라 : 헨리 모건 & 일론 머스크
허두영 한국과학언론인회 회장
입력2026-04-23 16:05
허두영
과학저널리스트
해적이 도시를 공격했다. 1668년 해적 500명이 모여 스페인이 본국으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파나마의 항구를 습격했다. 당시 스페인 식민지 중 요새가 가장 튼튼했던 포르토벨로도 바다와 육지로 동시에 쳐들어오는 해적을 막지 못했다. 3년 뒤 파나마시티도 마찬가지다. 함대 36척과 해적 1,200명이 동시에 바다와 육지로 밀려들어 파나마시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해적 끝판왕’(Buccaneer King) 헨리 모건이 벌인 짓이다.
육지를 공격한 이유는 명확하다. 바다에서 벌인 사략질(私掠-)은 약탈한 물건의 10%를 정부에 바치고, 배를 빌려주거나 투자한 사람에게도 몫을 떼 줘야 한다. 육지에서 약탈하면 그럴 이유가 없다. 계약에 없기 때문이다. 모건은 공격을 시작할 때, 인원이 적다고 불안해하는 해적에게 적을수록 나누는 몫이 크다고 설득했다. 악랄한 전략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성당에서 붙잡은 신부와 수녀를 인질로 앞세워 요새를 공격하는 것이다. 국교가 천주교인 스페인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작전이다.
스페인이 파나마 약탈을 거칠게 항의하자, 1672년 모건은 영국 왕실로 소환돼 조사를 받고 처벌을 기다렸다. 엄청난 활약에 감탄한 찰스 2세는 오히려 모건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고, 자메이카 부총독으로 임명했다. 모건 경(卿)은 왕실에서 해적을 소탕하는 임무를 받고, 해적들이 활동을 포기하거나 자메이카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해적 경험으로 바탕으로 포트로열(Port Royal)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항구로 발전시킨 것이다.
모건은 약탈로 번 돈을 흥청망청 쓰지 않았다. 사탕수수 농장을 3개나 운영하면서, 수요가 높은 설탕사업과 부동산에 투자했다. 해적은 물론, 정치가와 사업가로 손대는 과업마다 성공시킨 그는 부와 명예를 누리다가 1688년 눈을 감았다. 향년 53세. 남긴 재산은 280억 원 정도. 너무 잘 나간 그의 삶에 바다의 신이 노했을까? 1692년 자메이카 대지진은 그의 무덤과 함께 포트로열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250년쯤 뒤, 모건은 자메이카의 유명한 럼주 브랜드로 되살아났다. ‘캡틴 모건’(Captain Morgan)이다.
헨리 모건의 파괴적 리더십은 일론 머스크의 ‘판 흔들기’(Game Changing) 경영과 닮았다. 바다의 해적이 도시의 요새를 함락하듯, 머스크는 과감한 도전으로 기존 산업의 틀을 완전히 깨뜨려 버렸다.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모두 내연기관 기술경쟁에 머물 때, 호기롭게 ‘테슬라’(Tesla)를 대량생산하여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고, 정부가 독점하던 우주 사업도 ‘스페이스X’(SpaceX)와 ‘스타링크’(StarLink)를 내세워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서 전폭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리더십도 비슷하다. 모건이 ‘바다를 넘어 육지로’ 진격해서 적국(스페인)을 공격하자고 한 것은 조무래기 해적이 아니라, 제국을 무너뜨리는 전사로 대우한 것이다. 머스크도 ‘화성 이주’는 회사의 목표가 아니라, 인류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직원을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에 참여하는 요원으로 자부심을 심어준 것이다.
압도적인 성과로 정부의 신뢰를 확보한다. 해적이 귀족이 되어 부총독에 오르듯, 머스크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입고 정부효율부(DOGE) 장관으로 발탁됐다. 심한 막말로 구설에 올라 일찍 그만두기는 했지만, 나름 정치적인 행보에 재미를 붙였다. 머스크의 사업 범위도 장난이 아니다. 자동차와 우주는 물론, 위성통신, 인공지능(AI), 소셜미디어, 지하터널, 뇌-컴퓨터, 태양광 같은 사업에서 어디까지 ‘끝판왕’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하려면 ‘파괴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모건은 ‘파괴적인’(Destructive) 해적을 ‘파괴적’(Disruptive) 해적으로 바꿔 놓았다. 영국의 관점에서 보면, 스페인이 지배하는 카리브해의 질서를 파괴하고,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재편한 일등공신인 셈이다. 전기차와 우주 사업에서 머스크가 바꾸는 질서도 게임의 규칙을 뒤흔들고 있다. ‘판을 깨지 말고, 판을 흔들어라’(Don’t destroy the game, just disrup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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