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합리화委, 실질적 성과 내려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
국무조정실 전문성·조정력이 관건
유예조치 의존 벗고 근본 개편 시급
AI 등 규제 완화·안전 균형 잡아야
입력2026-04-27 05:00
수정2026-04-27 05:00
지면 29면
28년 만에 규제 개혁 체계가 전면 개편됐다. 최근 정부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규제합리화위원회’를 출범하고 기존의 사후적·개별적 규제 정비를 넘어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규제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자율주행·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서 규제는 더 이상 사후 통제 장치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됐다. 이에 규제를 미리 설계하고 유연하게 조정하며 성과 중심으로 관리하겠다는 접근은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다.
이번 규제 개혁 정책에서 가장 큰 변화는 위상과 규모의 격상이다. 위원회 명칭이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규제합리화위원회로 바뀌면서 위원장이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높아졌다. 또 국무총리와 함께 3인의 민간 부위원장직이 신설됐으며 민간위원 규모도 최대 25인에서 50인으로 대폭 확대됐다. 총리급 3인의 부위원장과 장관급 28인의 위원이 규제 합리화를 추진하게 된 셈이다. 역대 정부의 모든 위원회를 통틀어 가장 고위급으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것은 규제 개혁 정책의 정치적 우선순위를 높이고 부처 간 조정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규제 심사 및 정비의 최종 방향을 최고 권력자의 의지와 신산업 투자, 성장 등 핵심 국정과제와 밀접하게 연동시키는 구조다. 규제 완화에 대한 정치적 드라이브가 강력해지는 만큼 실질적인 규제 합리화 성과가 기대된다. 아울러 민간 부위원장 신설과 민간위원의 대폭 확대 등 민간 중심의 규제 합리화 전략 역시 정책 수요자가 직접 결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대통령의 조정력과 민간의 창의력이 조화를 이뤄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위원회의 권한이 아무리 막강해져도 집행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회의만 무성하고 실질적인 변화는 없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심의 중심의 위원회가 아니라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 부처별 규제 합리화 성과를 제대로 집행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실행 중심’의 체계다. 또 위원회 운영에서 간사 기관인 국무조정실이 전문성과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각 부처의 논리에 매몰되거나 위원 간 합의가 불발되는 비효율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민간위원 체제가 강화될수록 이들을 뒷받침할 간사 공무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 정책 수단이 여전히 특례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메뉴판식 규제 특례, 수요응답형 규제 유예, 규제 샌드박스 확대 등은 모두 예외를 허용하는 미봉책일 뿐 기본 법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접근은 아니다. 당장 규제 유예를 통해 성장과 투자를 촉진할 수는 있겠지만 유예 조치에만 의존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규제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 게다가 성급한 규제 유예는 자칫 특혜 시비를 낳거나 유예 기간 종료 후 소비자 보호에 구멍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규제 설계와 운영 방식 자체를 완전한 네거티브 체제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정부는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이해 갈등 사안에 대해 공론화와 숙의 과정을 거쳐 사회적 타협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표성, 포용성, 정보의 균형, 독립성 등 숙의 설계의 기본 원칙을 어떻게 담보할지가 관건이다. 특히 현재 민간위원 28명은 교수, 법조인, 전직 관료가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소비자·시민사회·노동계를 대변할 인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규제 합리화의 본질이 곧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표성이 결여된 위원 구성은 향후 사회적 타협을 험난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끝으로 규제 완화와 국민 안전 사이의 균형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네거티브 규제 원칙이 신산업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는 유효할지 몰라도 생명·안전·환경 분야에까지 무비판적으로 적용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AI·바이오·자율주행 등 파급력이 큰 고위험 기술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에 비례하는 정교한 규제 설계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사실 역대 정부의 규제 관련 위원회 중 뚜렷한 성공을 거둔 사례는 찾기 힘들다. 대부분 화려한 정치적 구호로 출발했다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규제 완화가 기업에는 달콤한 선물이 되는 반면 소비자나 시민사회·노동자 등에게는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번번이 최종 실행 단계에서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붙인 매머드급 규제합리화위원회가 이러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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