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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수소정책,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 가르지 말아야

■이종영 법무법인 율촌 고문

청정수소발전, 국내 생산만 가산점 부여

절대량 부족 현 상황에서 이상만 좇아

에너지 전환, 기술·공급 함께 반영 필수

입력2026-04-27 05:00

수정2026-04-27 05:00

지면 31면

문화사는 흐르는 물처럼 쉬지 않고 성장하되 서두르지 않고 진화해 왔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정치·경제·사회적 번영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으며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의 결과다. 사회는 변화를 먹고살며 그 변화의 기반에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직면한 크고 작은 분쟁의 이면에는 언제나 에너지 안보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은 에너지 다원성을 전제로 한다. 석유나 천연가스의 공급이 불안정할 때 재생에너지·원자력·수소 등 다른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에너지 안보는 실현된다. 다양한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산업 시스템을 갖춘 국가만이 경쟁력에서 앞설 수 있다. 수소에너지는 그 핵심 축 가운데 하나로 참여정부 이래 정권을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육성돼 온 것은 이와 같은 에너지 정책에서 변할 수 없는 원칙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가 주요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국가의 일관된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역사는 거듭 증명해 왔다.

최근 정부는 ‘청정수소 발전 입찰시장(CHPS)’을 국내 생산 청정수소에만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에너지 자급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방향성 자체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문제는 현실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내 청정수소는 절대량이 부족하고 경제성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년 후에 달성 가능한 목표를 지금 바로 실현하고자 한다면 연료전지발전 생태계에 감당할 수 없는 요구가 돼 수소 산업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약화로 귀결될 것이다. 이상적인 목표를 현실에 앞세울 때 에너지 다원성에 기반을 둔 에너지 안보는 오히려 멀어진다.

수소에너지 관련 협력 기업들은 지난 10여 년간 묵묵히 연구개발(R&D)에 매달려 부품 국산화율을 98%까지 끌어올렸다. 수조 원의 민간 투자와 수많은 연구 인력의 땀이 응축된 결과다. 국내 시장이 사라지면 수소경제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지금까지 발전시킨 수소 생태계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이 수소경제가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결정적 시점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급증에 따른 전력 부족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으며 연료전지가 그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수소 산업 관련 기업들은 이미 현지 파트너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 지금 국내 수요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가 지향하는 청정수소 연료전지발전으로의 전환은 기술 발전과 공급 현실을 함께 반영하며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일정한 연속성을 갖고 추진해야 하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수소 산업의 토대를 허무는 방향으로 흐르면 안 된다. 정부가 조금 인내를 갖고 청정수소 공급 인프라를 현실화하며 전환 로드맵을 산업계와 함께 설계한다면 무리 없이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수소 연료전지 기술과 산업은 초기 영유아기를 지나 머지않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성장기로 접어들 수 있는 단계에 있다. 균형 있는 지원과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 속에서 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경로를 찾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조금씩 쌓인 흙이 마침내 산을 이룬다는 ‘적토성산(積土成山)’의 교훈을 오늘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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