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주가 희석 감수하면서도 “리츠 살리자”…제이알 주주단의 역설적 선택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 여파로 상장 리츠 주가 평균 5% 하락
제이알, 일시적 유동성 위기로 판단될 경우 잔존이 유리
판매사, 환헤지 손실·희석 위험 미고지…홍콩 ELS 사태 판박이
입력2026-04-30 07:10
수정2026-04-30 18:18
지면 25면
국내 상장 리츠로는 처음으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제이알글로벌리츠의 주주단이 유상증자를 해서라도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자고 운용사에 제안했다. 주주들의 자산가치가 희석되더라도 고통 분담을 통해 리츠를 정상화함으로써 손실을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고육지책이다.
30일 제이알글로벌리츠 주주단 측은 “주주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리츠를 살려야 되기 때문에 유상증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주주단은 이날 리츠 운용사인 제이알투자운용 관계자와 만나 이같은 입장을 전했다.
앞서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올 1월 말 12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다가 일주일만에 철회했다. 유상증자로 확보한 재원 중 900억 원을 5월 환정산금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의 담보 감정평가서 수신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됐다는 이유를 들어 입장을 바꿨다. 주주단의 한 관계자는 “주가를 떨어뜨리는 유상증자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많지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리츠를 살려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법정관리 신청 여파로 전날 상장 리츠 주가는 평균 5%가량 하락했다.
주주단, 유상증자라도 하려는 이유는
제이알글로벌리츠 주주단이 자산가치 희석을 받아들이면서도 유상증자에 찬성하는 배경에는 ‘수비형 증자’라는 성격이 자리한다. 주주들이 원하는 증자는 신규 자산을 적극 확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재무 체질을 개선하고 단기 차입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제이알글로벌리츠는 해외 부동산 위주로 구성된 자산 포트폴리오에 만기가 짧은 차입이 집중된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고금리 국면에서 단기 차입을 지속적으로 롤오버하는 방식은 리츠사에 상당한 재무 압박으로 작용한다.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확충하고 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추면 단기 차입 구조를 해소하면서 재무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올해 1월 말에서 2월 초 사이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다가 돌연 철회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주주 이익을 지키려는 판단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단기적으로 자산가치 희석을 막고 주가 하락 충격도 완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주단은 “리츠는 본질적으로 배당 상품이기 때문에 단기 주가보다 구조 안정이 우선”이라며 “당시 증자 목적은 운영자금 마련과 차입금 상환이었는데, 이를 미룬 결과가 더 나쁜 조건으로 되돌아왔다”고 비판했다. 결국 유증 철회는 디폴트(채무불이행)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이달 만기가 도래한 전자단기사채 400억 원과 공모사채 600억 원의 상환에 실패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를 놓고 경영진의 안이한 대처와 함께 판매 금융사의 위험 미고지 문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주주단은 판매사들이 ‘은퇴 후 안정 소득을 위한 부동산 임대 자산’이라는 문구로 마케팅하면서 환헤지 비용, 유상증자에 따른 희석 위험 같은 핵심 리스크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홍콩 ELS 불완전판매 사태와 구조가 닮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환헤지 100% 조건이 대규모 정산 손실로 이어졌음에도 판매 과정에서 관련 설명이 부실했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주주단은 “미래에셋글로벌리츠나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당국을 설득해 헤지 비율을 50~70%로 낮추며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했지만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전략 수정 없이 자산가치를 깎아먹었다”고 주장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래에셋·삼성 같은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 비슷한 실패를 겪은 바 있다”면서 “다만 그쪽은 사모 구조라 내부에서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지만 제이알은 공모 리츠여서 수만 명의 개인 투자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 짚었다. 개인 투자자 수는 약 2만 8200명이며, 이들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2000억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회생법원이 이번 사태를 일시적 유동성 위기로 판단할 경우 청산보다 잔존가치를 살리는 편이 유리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나증권 김상만 애널리스트는 ‘제이알글로벌리츠 이슈 점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대주단의 자금 동결 요건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조기 상환액은 약 7830만 유로(1350억 원)로 지난해 벨기에 자산 임대료의 108.5%에 해당한다”며 “주주와 채권자가 13개월 정도 감내하면 해소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채권단에 맨해튼 빌딩 매각 대금에 대해 상환 유예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주단은 “임차인이 있고 임대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캐시트랩(현금유보) 문제도 풀린다”며 “배당과 유상증자, 캐시트랩 해소까지 이뤄진다면 회사를 살릴 수 있으니 관계 기관이 힘을 모아달라”고 촉구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감독 공백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국토부는 2023년 ‘리츠 감독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하며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3년이 채 안 돼 사상 첫 공모 리츠 법정관리 사태를 맞게 됐다. 법정관리 신청이 이뤄진 뒤에야 위법 여부 조사에 나선 국토부는 이날 김이탁 1차관 주재로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부동산원과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으나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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