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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위기에 빠지는 이유

김찬석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입력2026-04-30 18:32

김찬석

김찬석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CEO의 여러 모습을 묘사한 AI 이미지.
CEO의 여러 모습을 묘사한 AI 이미지.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경제의 혁신을 이끄는 주인공들이다. 개인적으로도 남다른 지능과 탁월한 통찰력 그리고 숱한 노력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른 매우 스마트한 인재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토록 똑똑하고 유능한 리더들이 위기에 빠지거나 기업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역설적인 현상을 목격하곤 한다.

똑똑한 CEO들이 위기의 늪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현상을 입체적으로 파악해볼 때, 반복되는 CEO 위기를 멈춰 세울 수 있다.

리더를 위기로 몰아넣는 함정은 성공한 리더 특유의 오만함, 즉 휴브리스(hubris)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신의 영역에 도전할 만큼의 지나친 자기 과신과 교만을 뜻한다. 연이은 성공 경험은 리더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는다는 확증편향으로 변질된다. 애플 스토어의 신화를 창조하며 천재로 추앙받던 론 존슨(Ron Johnson)이 2011년 미국 백화점 JC페니의 CEO로 취임한 후 겪은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존슨은 JC 페니에서 애플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며 애플식 성공 비결을 이식하려 했다. 비정기적 바겐세일을 없애고 가격을 낮춘 상시 세일 정책을 도입했지만, 주가와 매출은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고 CEO는 해고됐다. 또한,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이란 종전 협상과정에서 쏟아낸 롤로코스트식 SNS 메시지 전략은 협상술일 수 있지만, 자신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휴브리스 심리의 발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조직 구성원 간 침묵의 나선이 CEO 위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침묵의 나선이란 회사에서 다수 의견이나 윗사람 눈치를 보느라 다른 생각을 말하지 않고 점점 입을 닫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CEO 권력이 강해질수록 조직은 리더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맴도는 거대한 에코챔버(반향실)로 변모한다. 2023년 일본 도요타그룹 자회사 다이하쓰(Daihatsu)의 대규모 품질 조작 스캔들이 이를 보여준다. 사실상 일본 최초 자동자회사인 다이하쓰는 경영진이 단기적인 개발 일정 단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현장의 엔지니어들은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정과 안전성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는데 주저했다. 반대 의견을 내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조직원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제3자위원회를 만들어 조사에 착수한 도요타그룹은 다이하쓰가 35년에 걸쳐 품질 인증 관련 174건의 부정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기업은 성과를 먹고 자라는 나무지만, 지나친 단기 성과주의는 기업의 존립을 위협한다. 2023년 167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파산 위기에 몰려 경쟁사에 인수된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은행 사례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당시 경영진은 눈앞의 고수익을 좇아 영국 핀테크 업체 그린실 캐피털과 유명 펀드매니저가 이끈 아케고스 등 고위험 펀드에 많은 자금을 쏟아부었다. 리스크 관리 부서의 경고음은 단기 실적이라는 명분 아래 경영진에 의해 채택되지 못했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잠재적 위험을 묵인하고 기업의 장기적 평판을 희생시킨 대가는 크레디트스위스가 UBS로 매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기업의 CEO는 위기로부터 얼마나 안전한가. 필자는 세 가지 지표로 CEO의 위기 취약성을 진단해 볼 것을 제안한다. 먼저, 시간 할당의 편중성이다. CEO의 최근 한 달 일정표를 분석했을 때, 만나는 사람의 80% 이상이 내부 임원이거나 동종 업계의 우호적 인사라면 위험 신호다. 둘째, 회의 발언 점유율이다. 주요 임원 회의에서 CEO의 발언 시간이 전체의 50%를 초과한다면, 그 회의는 토론이 아니라 지시와 훈화의 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셋째, 나쁜 소식 보고의 속도다. 현장에서 발생한 나쁜 소식이 CEO의 책상까지 올라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보라. 호재는 하루 만에 보고되는데 악재는 한 달이 걸리거나 누락된다면, 그 조직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CEO 위기 취약성을 예방하는 길은 조직 구성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파산 위기에 처했던 포드 자동차를 구한 앨런 멀랠리(Alan Mulally) 전 CEO의 신호등 보고 사례가 흥미롭다. 취임 후 열린 임원 회의에서 부서장들이 초록색(양호) 보고서를 제출할 때, 한 임원이 차량 결함을 인정하는 빨간색(문제있음) 보고서를 띄웠다. 회의장에 정적이 흐른 순간, 멀랠리는 그를 향해 박수치며 명확한 현실 인식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격려했다. 이 순간 포드의 나쁜 소식 보고 속도는 빨라졌고, 취임 후 2년 만에 분기 흑자를 내며 조직은 회생했다.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운이 아니다. 내부의 침묵과 리더의 오만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아무리 스마트한 CEO라도 혼자만의 지능이나 역량만으로는 복잡성의 시대를 돌파할 수 없다. 진정으로 위기에 강한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주위의 쓴소리에 귀를 열고 자신을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김찬석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찬석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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