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듣기

  • 글자 크기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기사 공유

  • 북마크

  • 다크모드

  • 프린트

네이버 채널구독

다음 채널구독

이야기가 살아 있는 지방 공간

조금평 농촌유토피아연구소장

입력2026-04-30 18:36

조금평

조금평

농촌유토피아연구소 소장

지방 공간에서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AI 이미지.
지방 공간에서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AI 이미지.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흔히 정주 환경이나 산업 기반에서 찾으려 한다. 물론 이들은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지역을 찾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스토리’이다. 지역에 이야기가 스며 있고, 그 위에 감성과 경험이 더해질 때 비로소 그곳은 단순 소비의 공간을 넘어 ‘머물고 싶은 장소’가 된다.

미우라 아야코 기념 문학관과 혼불문학관은 오늘날 농촌이 마주한 과제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이다. 두 공간은 지역과 장소가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아사히카와에 있는 미우라 아야코 기념 문학관을 찾았다. ‘빙점’의 무대이기도 한 그곳에는 화려한 건축물이나 과장된 전시는 없었다. 숲속에 자리한 공간은 작은 오두막처럼 소박하고 정갈했다. 그리고 작가가 걸었던 숲길과 강변 제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방문객은 문학을 ‘보고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의 산책길을 걸으며 그의 사유를 경험하였다. 그의 문학은 진열장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숲의 공기와 나무, 바람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자연과 서사가 맞닿은 경험은 다시 찾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지역을 찾게 만드는 힘, ‘체류 매력’이다.

반면 남원의 혼불문학관은 다른 인상으로 남아 있다. 잘 가꾸어진 넓은 부지와 웅장한 한옥 건축, 다양한 전시시설은 지역의 문화 자산을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관람은 일회성에 머물렀다. 문학이 지역의 정서나 현장의 울림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전시 중심에 머무를 때, 방문객과의 정서적 거리는 멀다. 문학이 전시 공간 내부에 한정될 때, 넓은 공간은 오히려 공허함을 남긴다. 이는 규모나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의 문제이다.

미우라 아야코 기념 문학관 표지판. 조금평
미우라 아야코 기념 문학관 표지판. 조금평

정부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국정의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을 넘어 지방 주도 성장과 국토 공간의 대전환을 추진하는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 지방시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그 성패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이나 대형 시설 건립에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얼마나 오래 머물게 할 것인가, 즉 ‘관계 인구’를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예술 공간의 역할은 절대 작지 않다. 문학과 예술은 지역 개발의 부수 요소가 아니라 지역에 생명을 불어넣는 핵심 동력이다. 공간이 구조라면, 이야기는 그 안을 흐르는 생명이다.

사람은 조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일자리와 기반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머묾’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특정 장소에 머무는 이유는 그곳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그곳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일상에 깊이 침투될수록,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느끼는 감각적 경험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진다. 마을이 가진 고유한 서사는 도시가 만들어낼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다. 자연과 이야기, 감성이 어우러진 공간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정부의 지방시대 구현에 있어 문화예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공간을 조성하는 일이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 위에 이야기를 입히는 일은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다. 문화는 관계를 만들고, 관계는 사람을 모은다.

대규모 산업 유치가 어려운 농촌일수록, 지역 고유의 이야기와 감성을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이 실제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자연과 문학, 사람의 삶이 어우러진 공간은 단순한 장소를 넘어 ‘이유’가 된다. 다시 찾고 싶은 이유, 머물고 싶은 이유, 결국 돌아오고 싶은 이유가 된다. 그 설득력이 지역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역의 미래는 ‘다시 찾고 싶은 이유’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의 문학관은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농촌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 잘 가꾼 이야기에는 사람의 발걸음이 모인다. 그리고 그 걸음들이 이어질 때 지역은 살아난다. 지방시대의 완성은 단순한 시설 확충이 아니라 ‘이야기의 힘’, 곧 경험과 관계를 만들어내는 콘텐츠에 있다. 공간 위에 서사를 입히는 일은 지역에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다. 문화가 관계를 만들고, 관계가 사람을 부르는 선순환. 그 구조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농촌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조금평의 농촌유토피아
조금평의 농촌유토피아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다음
이전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