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감독원, 분산에너지 지휘자 역할 맡아야
원동준 인하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입력2026-05-04 05:00
지면 29면
대한민국 에너지 대전환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필요한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약 100GW에 달하며 여기에 더해 전기차, 히트펌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로 인한 전력수요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이를 감당해야 할 전력망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전쟁과 지정학적 리스크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송전망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지자체 협의와 지역 수용성 문제는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그 결과 태양광·풍력으로 전기를 만들고도 송전제약으로 인해 출력이 제한되는 상황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제는 분산에너지라는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 소규모 분산전원,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반응자원이 지역 내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분산전력망은 송전 제약을 해소하고 계통의 신뢰도와 안정도를 함께 끌어올릴 수 있는 대안이다.
분산에너지의 확산과 더불어 에너지 프로슈머, 중개사업자, 가상발전소(VPP) 운영사 등 다양한 신규 플레이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기존 시장에 공정하게 진입해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자의 99%가 송전망이 아닌 배전망에 연계된 만큼 수동적으로 전력을 분배하던 기존 배전망은 능동적으로 자원을 운영하는 능동배전망으로 진화해야 한다.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유럽과 미국은 이미 송전망 운영자(TSO)와 배전망 운영자(DSO) 간의 역할 분담과 협조 체계를 법제화하고, 독립적인 규제 감독 기구를 통해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TSO가 대규모 송전망을 관리하며 시스템 전체를 조정한다면, DSO는 지역 배전망에서 다양한 분산에너지가 공평하게 연계 운영되도록 책임진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비전은 명확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에너지 패러다임에 대응할 송배전 협조 체계를 확립하고, 기술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그리드 코드(Grid Code)를 신속히 개선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들을 기획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시장을 감독할 새로운 거버넌스의 중심에 바로 전력감독원 설립이 놓여 있다.
정부는 개별 부처에서 세운 정책 목표를 스스로 감독하기 어렵고, 전력거래소는 이미 시장과 계통 운영을 맡고 있어 심판의 역할까지 겸할 수 없다. 분산에너지를 활성화하려면 대규모 발전사 중심의 구도에서 벗어나 소규모 사업자, VPP, 에너지 프로슈머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중립적 기구가 있어야 하며, 그 역할을 전력감독원이 맡아야 한다. 정책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운영은 전력거래소, 감독은 전력감독원으로 역할을 분리해야 비로소 신산업 활성화의 플랫폼이 완성된다. 나아가 전력감독원은 중립적 관리 감독 기구를 넘어 분산에너지를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고 계통을 안정화하는 ‘지휘자’가 돼야 한다. 공정한 계통 접근성을 바탕으로 치열한 혁신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일이 전력감독원의 몫이다.
우리는 에너지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전력감독원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분산에너지의 시대, 공정한 경쟁의 플랫폼을 하루빨리 세워야 대한민국 에너지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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