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교육을 다시 설계할 때
김지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입력2026-05-04 05:00
수정2026-05-04 05:00
지면 29면
최근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 1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발표가 있었다. 구글 딥마인드가 서울에 ‘인공지능(AI) 캠퍼스’를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알파폴드, 알파게놈과 같은 모델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서울대 연구자들과 만나 생명과학·기후 분야 연구에 활용될 것이다. 이는 AI를 인간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 연구자와 함께 성과를 만들어가는 동반자로 보는 방향이다. 구글이 한국을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챗GPT 유료 구독자 수 세계 2위, ‘AI 혁신 밀도’ 세계 1위인 한국은 글로벌 AI 기업이 협력하고 싶은 매력적인 무대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무대를 발판 삼아 다음 10년의 AI 강국으로 도약할 인재를 충분히 길러내고 있는가. AI 사용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AI를 사용한다고 AI 인재가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 사용이 사고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미래 AI 인재 양성에 미칠 잠재적 위험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은 참가자들을 AI 사용 집단, 검색엔진 사용 집단, 인간의 사고에만 의존한 집단으로 나눠 에세이를 쓰게 하고 뇌파를 측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AI·검색엔진을 사용하지 않은 집단의 뇌 연결성이 가장 강했고, AI 사용 집단은 가장 약했다. 특히 AI를 쓰던 참가자들이 마지막에 AI를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쓸 때, 처음부터 AI를 사용하지 않은 참가자보다 뇌 활동이 더 약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를 ‘인지 부채’로 표현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와 카네기멜런대의 연구도 이와 비슷한 경고를 내놓았다. 연구진은 생성형 AI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가 줄어든다는 점을 밝혀냈다. AI가 생각을 대신해주는 순간 생산성은 높아 보이지만 스스로 판단할 힘을 잃으면 그 생산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길러야 할 인재는 AI를 많이 쓰는 데 그치지 않고, AI와 함께 사고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AI가 내놓은 답을 심사하고, 한 단계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AI가 놓친 맥락을 잡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 같은 능력은 역설적으로 AI 없는 사고의 경험에서 나온다. 자기 머리로 부딪히고, 막히고, 다시 시도해본 사람만이 AI가 던지는 답을 의심할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교육은 두 단계의 훈련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먼저 AI 없이 깊이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고, 그 위에 AI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쌓는 것이다. 이 원리는 초·중·고 교육과 대학 교육에 서로 다른 과제를 던진다. 초·중·고 교육은 AI를 언제 손에 쥐여주느냐가 중요하다. 학생이 글을 쓰며 단어를 고르고, 문제 앞에서 막히고, 책을 읽으며 자기 생각을 빚어내는 시간이 충분히 확보된 다음에 AI가 도구로 들어와야 한다. AI 튜터(보조교사)와 디지털 교과서가 그 시간을 건너뛰게 하는 지름길이 돼선 안 된다.
대학 교육 역시 무거운 고민 앞에 서 있다. 이미 여러 사무직종의 신입 채용이 줄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이 일반 역량을 가르치고 기업이 현장에서 직무 훈련을 맡는 분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AI가 주니어 직원의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이 사다리가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대학은 일반 역량 교육을 넘어 졸업과 동시에 기업이 바로 일을 맡길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AI가 만든 결과를 평가하고,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며,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커리큘럼 차원에서 길러야 한다.
10년 전 알파고는 ‘AI가 인간을 이긴다’는 충격으로 한국에 다가왔다. 10년 뒤 같은 회사가 한국과 맺은 협약은 ‘AI가 인간 연구자와 함께 발견을 만들어간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진짜 결실로 이뤄내는 데 필요한 것은 더 많은 AI 사용자만이 아니라, AI와 함께 더 깊이 사고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야말로 다음 10년 한국 AI의 진짜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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