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잔인한 금융’ 정조준, 시장 원리 흔들리면 안 돼
입력2026-05-04 00:05
지면 31면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존의 신용등급 체계를 연일 비판하며 금융 시스템 개편의 군불을 때고 나섰다. 김 실장은 3일까지 사흘 연속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금융의 구조 시리즈’라는 글 3편을 통해 돈 갚을 능력이 증명된 고신용자에게 저금리를, 저신용자에게는 고금리를 적용하는 신용 질서는 ‘금융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라며 “낡은 신용평가라는 ‘틀’을 과감히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 사금융이 판치는 것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금융기관의 대출 기피 때문이라며 “제도 금융이 충분히 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더 정확하게 평가하자”고도 했다. 금융 관료 출신인 김 실장은 “나는 잔인한 금융 시스템의 공범이었다”며 자성의 목소리도 냈다.
김 실장이 작심한 듯 금융 시스템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은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잔인한 금융’ 논란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 대통령은 최저 신용자에게 15.9%의 고금리가 적용되는 점을 언급하며 “금융은 가장 잔인한 영역”이라고 지적하고 고신용자의 대출금리를 높여 저신용자 금리를 낮출 것을 제안했다. 신용등급에 기반한 현행 금융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이른바 ‘금융 계급제’”로 규정했다. 이 대통령은 3일 X(옛 트위터)에서는 “법정 허용치를 초과하는 불법 대부는 무효다. 즉 갚지 않아도 무방하다”며 저신용자를 노린 불법 사금융 근절 의지를 내비쳤다.
한 번의 실패만으로도 금융권에서 배척당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의 경직성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성실하게 빚을 갚으며 신용을 쌓아 온 고신용자에게 상응한 혜택을 주고 빚을 떼일 우려가 상대적으로 높은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를 부과하는 것은 시장의 기본 원리다. 정치 논리를 앞세워 적용 금리를 왜곡할 경우 금융 안전성을 위협하고 도덕적 해이를 초래해 신용 질서를 흔들 위험이 있다. 시장 원리를 지키면서 중·저신용자의 금융 소외를 막고 불법 대부를 근절하려면 책임 있는 금융 거래라는 원칙 하에 취약층을 위한 서민금융 안전망을 확대하고 법정최고금리를 조정해서라도 저신용자를 제도권 금융이 끌어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