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계좌 타고 도박자금 4000억 해외로…불법 외환거래 6000억 적발
가상계좌·가상자산 동원해 해외 송금
중고차 수출대금 2000억도 환치기
고철 수출단가 낮춰 신고하고 차액 반입
정부 “지능형 외환범죄 공조 강화”
입력2026-05-04 05:30
지면 8면
가상계좌와 가상자산을 동원해 도박자금과 수출대금 등을 해외로 빼돌린 불법 외환거래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적발 규모만 6000억 원을 넘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30일 범정부 ‘불법 외환거래 대응반’ 회의를 열고 환치기와 불법 해외 송금 등 6000억 원 이상 규모의 불법 외환거래 사례를 적발했다고 4일 밝혔다. 대응반에는 국가정보원·국세청·관세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참여하고 있다.
환치기는 정식 외국환은행을 거치지 않고 국내외 자금을 맞바꿔 송금한 것처럼 처리하는 불법 거래다. 국내에서 원화를 받은 뒤 해외에서 외화를 지급하거나 반대로 해외에서 받은 돈을 국내에서 원화로 내주는 방식이다. 금융당국의 송금 한도와 자금 출처 확인 절차를 피할 수 있어 도박자금이나 무역대금 세탁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규모는 소액해외송금업체를 통한 불법 외화 반출이었다. 해당 업체는 본인 외 타인 입금이 가능한 가상계좌를 다수 발행해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 운영 수익 등 약 4000억 원어치 외화를 해외로 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객별로 중복 계정을 만들고 가상계좌를 무작위로 발행해 동일인당 연간 송금 한도를 우회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세청은 해당 업체를 무등록외국환업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가상계좌는 이번 불법 송금의 우회로로 활용됐다. 타인 명의 입금이 가능한 가상계좌를 대량으로 발급하면 실제 송금 주체를 특정하기 어렵고 송금 한도도 쪼개기 방식으로 피할 수 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소액 해외송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온라인 도박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통로가 된 셈이다.
중고차와 차량용 부품 수출대금을 가상자산으로 받은 뒤 국내 업체에 원화로 지급한 환치기 사례도 적발됐다. 해외 무역상은 현지 은행 송금 규제를 피하기 위해 수출대금 약 2000억 원어치를 환치기 업자에게 가상자산으로 보냈다. 환치기 업자는 이를 매도해 원화로 바꾼 뒤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국내 수출업체 계좌로 이체했다. 환치기 업자는 검찰에 송치됐고 무역대금을 받은 수출업체들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수출단가를 실제보다 낮게 신고해 매출을 축소한 뒤 차액을 환치기로 들여온 사례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국내 고철업체는 수출품 단가를 최대 8분의 1 수준으로 낮춰 신고하고 정상 신고분만 국내로 회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나머지 차액은 차명계좌를 통한 환치기 방식으로 국내에 반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경우 장부상 매출을 줄이고 차액은 별도 계좌로 들여오는 구조여서 외환거래 위반뿐 아니라 조세포탈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적발은 기관 간 공조를 통해 이뤄졌다. 금감원은 소액해외송금업체 검사 과정에서 확인한 온라인 도박자금 등 불법 외화 송금 혐의를 관세청에 공유했다. 관세청은 이를 수사해 검찰에 송치했다. 국세청은 수출액을 낮게 신고한 업체의 조세포탈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국정원은 해외 연계 범죄 정보를 지원하고 재경부와 한은은 외환 정보 공유와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범정부 대응반을 꾸린 것도 불법 외환거래가 단순 송금 위반을 넘어 도박·무역·가상자산·탈세가 결합한 형태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범정부 불법 외환거래 대응반은 지능화되는 외환범죄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올 1월 출범했다. 대응반은 가상계좌와 가상자산을 이용한 우회 송금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기관 간 정보 공유와 수사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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