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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의 OPEC 탈퇴, 왜?

원요환 UAE 항공사(에어 아라비아) 파일럿

입력2026-05-04 11:37

수정2026-05-04 14:31

원요환

원요환

에어 아라비아 부기장

중동 전쟁으로 이란의 대규모 공격을 받은 것을 계기로 OPEC 탈퇴 등 새로운 국가 전략 수립에 나선 UAE의 모습을 형상화한 AI 이미지.
중동 전쟁으로 이란의 대규모 공격을 받은 것을 계기로 OPEC 탈퇴 등 새로운 국가 전략 수립에 나선 UAE의 모습을 형상화한 AI 이미지.

지난달 28일 아랍에미리트(UAE)가 아랍국가 석유수출협의체인 OPEC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1967년 가입 이후 약 60년 만의 결별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환영 메시지를 냈고, 한국 언론들의 분석은 약속한 듯 한 방향으로 모였다. UAE가 친미 진영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현지에서 보면 동의하기 어렵다. 이 사건은 단순한 친미 줄서기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은 맞지만 그것을 UAE의 동기로 환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UAE는 지난 두 달간 자신을 둘러싼 거의 모든 국가에 깊은 환멸을 축적해왔다. 그러나 이 환멸이 분노로 표출되지 않고 OPEC 탈퇴라는 차분한 선택으로 정리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UAE는 이미 중동의 주변국이라는 자리에 만족할 단계를 지났다. 이번 사건은 그 변화가 외부로 모습을 드러낸 첫 신호다.

술탄 알 자베르 UAE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이 OPEC 탈퇴와 관련, “UAE의 장기 에너지 전략, 실제 생산 능력, 그리고 국익에 부합하는 주권적 결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The National
술탄 알 자베르 UAE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이 OPEC 탈퇴와 관련, “UAE의 장기 에너지 전략, 실제 생산 능력, 그리고 국익에 부합하는 주권적 결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The National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한 환멸

이번 UAE의 OPEC 탈퇴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나라는 단연 사우디아라비아다. 두 나라는 지난 30여 년간 사실상 한 진영으로 묶여 움직여왔다. 같은 GCC(걸프협력회의) 회원국, 같은 수니파 군주국, 같은 친미 진영. 카타르 단교 사태에서도 같은 편에 섰다. 문제는 이 동맹 관계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UAE에게 손해를 떠안기는 구조였다는 점이다.

OPEC의 쿼터 문제부터 그랬다. UAE의 실제 일일 생산능력은 480만 배럴이지만 할당된 쿼터는 330만 배럴 수준이었다. 매일 캐낼 수 있는 150만 배럴이 땅속에 잠겨 있는 셈이다. 문병준 전 사우디 대사대리에 따르면 이로 인한 UAE 기회비용은 연간 약 60조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사우디는 1,200만 배럴 생산능력에서 1,100만 배럴 수준의 쿼터를 유지했다. 비율로 따지면 손해의 무게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사우디의 ‘비전 2030’이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했다. 사우디는 다국적 기업들에게 중동 지역본부를 두바이에서 리야드로 이전하라고 요구해왔다. 30년간 두바이가 쌓아온 비즈니스 허브의 위상을 선배 국가가 정면으로 잠식하는 구조다. 그것도 두바이 모델을 거의 그대로 복제한 청사진을 들고서 말이다.

결정적 분기점은 이번 이란 전쟁이었다. 이란이 보복 차원에서 걸프 지역에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는 의외로 UAE였다. 두바이 공항이 일시 폐쇄됐고, 제벨알리 항구의 물류가 차질을 빚었다. 그러나 같은 GCC의 좌장 격인 사우디는 침묵했다. 군사적 개입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란이 GCC 회원국을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정도의 정치적 메시지조차 없었다. 문 전 대사대리는 “사우디가 막아줄 능력이 있었음에도 안 막아줬다”고 평가했다.

불 지른 친구, 미사일 쏜 이웃, 등 돌린 보호자

이스라엘과 이란은 이번 전쟁에서 UAE에 직접적인 해악을 끼친 나라다. 먼저 이스라엘은 2020년 아브라함 협정으로 새로 사귄 외교 파트너였다. 그런데 이 파트너가 일방적으로 이란과의 전쟁을 격화시키며 동네 전체에 불을 질렀다. UAE 영토에 미사일이 떨어지게 된 직접적 원인 제공자가 사실상 이스라엘이다. 이란은 더 복잡한 상대다. 두바이 도시 형성의 뿌리이자 50만 자국민이 거주하는 곳이고, UAE의 두 번째 교역국이다. 그런 나라가 미사일을 쏘아 보냈고, 심지어 파편에 죽은 사람 중에는 이란인까지 있었다.

이번 전쟁은 UAE에게 미국에 대한 깊은 실망감도 함께 안겼다. UAE는 지난 20여 년간 미국이 중동에서 가질 수 있는 거의 가장 모범적인 파트너였다. 알다프라 미 공군기지가 자국 영토에 있고, 천문학적 규모의 미국 무기를 도입했으며, 미국이 주도한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의 1호 서명국이기도 하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거의 다 들어준 셈이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보여준 태도는 그 헌신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 UAE의 평가다. 우선 이란 공습 작전에 대해 미국은 UAE에 사전 통보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 때문에 UAE 영공과 인근 해역은 실질적인 작전 공간이 됐고, 그 결과 자국 영공이 폐쇄됐고,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가 마비됐으며, 이란의 보복 미사일이 UAE 영토 곳곳에 떨어져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손해에 대한 보상이나 보전 논의도 사실상 없었다. 동맹국이라면 응당 감수하라는 분위기였다.

UAE가 그동안 미국에 보내온 신호는 명확했다. 우리는 당신들의 가장 충실한 파트너이고, 그 대가로 어려울 때 보호받기를 기대한다. 이번 전쟁은 그 거래의 절반만 작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UAE가 비용을 내는 만큼 보호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UAE가 OPEC 탈퇴를 미국에 대한 충성의 시그널로 썼다는 해석은 성립하기 어렵다. 충성으로 더 얻을 게 있다고 믿는 나라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전쟁이 UAE에게 가르친 교훈은 ‘누군가에게 의존해서는 자기 운명을 자기가 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UAE 입장에서 이번 전쟁이 남긴 결론은 분명했다. 형님 국가(사우디)는 끝까지 침묵했고, 보호자(미국)는 말도 없이 전쟁에 자신을 끌어들였고, 새 파트너(이스라엘)는 동네에 불을 질렀고, 오랜 이웃(이란)은 내 집에 미사일을 쐈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전쟁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누구를 탓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UAE에서 2018년 건설이 완료된 한국형 원전 바라카 1호기. 연합뉴스
UAE에서 2018년 건설이 완료된 한국형 원전 바라카 1호기. 연합뉴스

새로운 좌표와 한국의 자리는

이 맥락에서 보면 OPEC 탈퇴의 위치가 분명해진다. UAE는 모두에게 환멸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현실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가 너무 깊고, 이란은 마냥 적으로 두기엔 지리적으로 너무 가깝다. 결국 가장 먼저 손볼 수 있는 상대는 그동안 감 놔라 배 놔라 했던 사우디뿐이다. OPEC은 지금껏 사우디가 UAE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경제적 손해를 끼쳐온 무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의 진짜 의미는 사우디와의 관계 정리에만 있지 않다. 더 큰 그림은 UAE의 정체성 전환이다.

UAE가 ‘GCC의 일원’이라는 지역 프레임을 벗어나는 행보는 이미 여러 영역에서 진행 중이다. AI 분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G42 투자, OpenAI 데이터센터 유치 등 글로벌 빅테크와 직거래하며 중동 AI 허브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금융에서는 두바이 DIFC와 아부다비 ADGM이라는 영미법 기반의 국제 금융특구를 키우고 있고, 외교에서도 인도, 한국, 영국, 프랑스와 양자 협정을 빠르게 늘려왔다.

이 행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UAE는 이제 더 이상 사우디라는 지역 강국의 승인이나 동행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UAE는 이미 GCC라는 지역 클럽의 멤버로 움직이는 단계를 지나 글로벌 허브 그 자체로 자신을 규정하기 시작했다. OPEC 탈퇴는 이 흐름의 가장 가시적인 신호다. 30년 위계 속에서 받아온 손해를 더 이상 감수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자신은 이제 지역 패권의 일부가 아니라는 자기 선언이다.

이 변화가 한국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UAE가 환멸 목록에 올린 어느 나라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UAE는 한국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UAE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묶여 있고, 바라카 원전 사업으로 시작된 신뢰 위에 K-방산이 천궁-II 등으로 올라타 있다. 무함마드 빈자이드 대통령의 친한국 행보도 일관적이다.

UAE가 GCC라는 좁은 무대를 벗어나 글로벌 직거래로 향할수록, 한국과의 협력 공간은 오히려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UAE는 한국을 미국이나 사우디처럼 떠받들어야 할 상위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 동등하게 거래할 수 있는 기술 파트너로 본다. 원전, 방산을 넘어 AI, 우주, 디지털 인프라까지. UAE가 자기 좌표를 새로 잡는 이 시기는 한국에는 기회의 시기다.

그러나 이 기회를 잡으려면 먼저 시야부터 바꿔야 한다. UAE의 OPEC 탈퇴를 미국 줄서기로 읽는 분석으로는 정작 그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끝까지 못 보게 된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미국에 붙기로 한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30년 아랍 위계에서 걸어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한 나라의 조용한 독립 선언인 것이다.

원요환 두바이 항공사 파일럿.
원요환 두바이 항공사 파일럿.

He is...

·한국에서 6~7년간 기자로서 산업과 경제를 취재하다가 2017년 두바이로 이주해 현재 두바이의 항공사(에어 아라비아) 부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걸프 부국의 산업·정세·문화 환경을 분석해 한국에 전하고 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예종에서 예술경영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중동’, ‘있는 그대로 아랍에미리트’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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