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법, 졸속 제정 우려스럽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입력2026-05-06 05:00
수정2026-05-06 05:00
지면 31면
국회가 많은 중요한 법률을 졸속 개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정한 상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이다. 이런 엉성한 법률이 공동체 구성원 간의 갈등을 촉발했고, 비능률·고비용의 분쟁 해결 구조를 정착시켰다.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혼란도 이런 허술한 법률 때문이다. 국회는 이제 ‘집단소송법’을 제정하려 한다. 14개 법안을 살펴보니 독소조항이 상당수다.
집단소송은 그 대상에 제한이 없다. 소비자 소송, 대규모 환경피해,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 노조의 기업 또는 기업주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등 모든 종류의 손해배상 소송에 적용될 수 있다. 코로나19 의료 대응 관련, 이태원 참사, 무안공항 참사 등에서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사고 예방 및 감독책임이 인정된다면 국가·지자체 및 공기업을 피고로 하는 소송이 한꺼번에 제기될 위험도 있다. 이는 정치인의 포퓰리즘과 결합해 막대한 국고의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법안은 ‘이 법 시행 이전에 생긴 사유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도 이 법을 적용한다’고 규정해 법치주의의 핵심인 헌법상 ‘소급입법 금지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집단소송법은 단순한 절차법이 아니다. 법이 없던 시절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새로 법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허무는 것이다.
발의된 대다수 법안은 ‘제외신고(Opt-out)’ 방식을 취하고 있다. 피해자가 귀찮아서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원고가 된다는 뜻이다. 이는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 유럽에서는 대체로 ‘사전동의(Opt-in)’ 방식을 취한다. 쿠팡 개인정보탈취 사건에서는 3370만 명이 원고가 될 수 있다. 이런 대규모 소송을 법원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인데 배상금 총액은 1인당 10만 원으로 계산해도 3조 3700억 원이 된다. 패소 시 갑작스러운 대규모 재정지출로 대기업이라도 수년간은 적자 상태에 빠지고, 중견ㆍ중소기업은 존립을 우려할 지경이 된다.
소송허가 심사요건도 정밀하게 설정해야 한다. 법안에는 다수성, 효율성, 공통성 요건을 심사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느슨한 규정만으로는 소송 남발이 벌어질 수 있다. 미국 집단소송법은 이 외에도 지배성, 우월성, 관리 가능성 등을 추가하고 있음에도 2025년 미국 연방법원에 1만 3000여 건의 집단소송이 접수됐으며, 소송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법원의 소송허가 결정에 불복하여 피고가 ‘즉시 항고할 경우에도 집행정지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한 것은 불필요하게 피고의 방어권을 제약한다.
‘법원의 직권 증거조사’ 규정은 민사소송의 대원칙인 ‘당사자주의’를 깨뜨리고 법원의 직권 개입을 강화해 소송 과정에서 기업의 핵심 영업비밀이나 내부 전략 문서가 외부에 유출될 위험을 초래한다. 미국식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를 일부 도입한 것으로 보이나, 미국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서로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고 법원은 그 범위가 적절한지를 감독하는 구조다. 기업이 원고 측과 합의해 사태를 조기에 매듭지으려 해도 법원이 허가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는 ‘당사자 자치’를 제한하며 기업 입장에서는 전략적 유연성을 가지고 분쟁을 종결할 기회가 박탈되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정밀하지 못한 법률은 국민의 권익 보호는커녕 갈등과 혼란만 부추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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