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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에서 피어난 ‘조선의 일상’…단군 이래 최고 화가를 만나다

■ 국립중앙박물관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 전시

단원풍속도첩 등 96점 선보여

백성들 일상 생동감 있게 그려

개인 소장 ‘총석정’ 일반 첫 공개

서예실에선 이순신 친필 눈길

입력2026-05-05 17:58

수정2026-05-05 23:36

지면 27면
김홍도의 ‘씨름’.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의 ‘씨름’.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싼 한가운데서 씨름이 한창이다. 홍샅바가 들배지기로 들어올리니 청샅바가 안다리를 건다. 누구는 넘어간다고 안타까워하고 누구는 넘어가지 말라고 소리친다. 표정만 봐도 어느 편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갓을 쓴 양반도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구경하고 있다. 엿장수는 승부에는 관심 없이 엿 파는 데만 열중한다. 현대 씨름장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원 김홍도(1745~1806년)가 그린 ‘단원풍속도첩’(18세기 후반) 중 ‘씨름’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런 그림들이 없었으면 우리는 조선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서화실 두 번째 주제 전시로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를 선보였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볼 수 있었던 단원 김홍도의 명작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홍도의 대표작과 이순신의 친필 간찰(편지) 등 50건, 96점이 나왔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회화2실의 김홍도 주제 전시다. 김홍도의 전성기부터 노년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김홍도는 궁중 전속 화가인 ‘차비대령화원’을 지냈다. 지금 같으면 청와대 또는 중앙정부 소속 화가, 혹은 사진기자와 같은 자리다.

김홍도의 ‘무동(춤추는 아이)’.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의 ‘무동(춤추는 아이)’.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가 주로 활동했던 정조 시기에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사가 확대되고 다양한 그림 수요가 있었다. 특히 임금부터 세상사에 관심이 많았다. 다만 궁궐 밖을 맘대로 돌아다니지 못했기에 세상 물정을 알려면 그림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김홍도 같은 궁중 화가들이 그림을 열심히 그려야 했던 이유 중 하나다.

단원의 다양한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김홍도가 풍속화는 물론 산수화, 인물화, 도석화(신선이나 고승 그림)까지 두루 능했던 덕분이다. 유 관장은 “조선의 최고 화가를 꼽으라면 한국적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겸재 정선도 있지만 그림 자체만을 보면 단원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단군 이후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으로 백성의 일상을 생동감 있게 포착한 ‘단원풍속도첩’ 전체 25장 가운데 이번에 11장이 나왔다. ‘무동’(춤추는 아이)은 해금 등 연주에 맞춰 아이가 춤추는 모습을, ‘서당’은 서당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마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남은 14장은 7월 음식 문화를 주제로 한 ‘우리들의 밥상’ 전시에 나올 예정이다.

김홍도의 ‘기로세련계도’.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의 ‘기로세련계도’.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의 ‘총석정’.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의 ‘총석정’.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나이가 들면서 김홍도의 화풍 역시 원숙해진다. 그가 60세 때 개성 만월대에서 열린 원로들의 모임을 그린 ‘기로세련계도’(1804)에서는 산수와 인물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같은 시기 작품인 ‘노매도’(1804)는 거침없는 붓질로 나무의 줄기를 표현했고 질감은 먹이 번지는 효과를 활용했다. 김홍도가 51세에 그린 ‘총석정’(1795)은 개인 소장 작품인데,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최초 공개됐다. 파도가 치자 날아오르는 갈매기 등 서정적인 묘사에 눈길이 닿는다.

강세황의 ‘강세황 초상’.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강세황의 ‘강세황 초상’.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스승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회화1실에는 김홍도와 그의 스승 강세황(1713~1791년)을 함께 조명한다. 시간이 흐르며 두 사람은 예술적 동반자로 발전했다. 김홍도의 ‘서원아집도’와 ‘행려풍속도’에는 강세황이 직접 써넣은 감상평이 남아 있다. 강세황이 그린 ‘강세황 초상’(1782)이 나란히 걸려 있다.

회화3실에는 2500명이 넘는 인물이 담긴 ‘평양감사향연도’(19세기 초) 3점을 볼 수 있다. 당시 평양에서 열린 대규모 연회 장면으로 그의 화풍을 따라 그린 것이다. 박물관 문화상품 ‘뮷즈’ 중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해 화제가 된 술잔의 모티브가 된 그림이다. 또 왕비가 머무르던 공간인 경복궁 교태전 벽을 장식했던 부벽화 등 궁중 채색장식화와 민화도 선보였다.

이순신 친필 간찰.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순신 친필 간찰.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서예실에서는 이순신의 친필 간찰이 눈길을 끈다. 개인 소장으로 이제껏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는 유물이다. 노량해전을 불과 4개월 앞둔 1598년 7월 8일 이순신이 군수지원 담당인 한효순 총관사에게 쓴 편지다. 정말 마지막을 앞두고 있던 이순신의 절절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전시는 8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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