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개처럼 일하고 15만원 받았다”…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댓글아저씨

입력2026-05-06 11:35

수정2026-05-0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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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 이향직이라고 합니다. 형제원 피해자 분들은 제게 연락 바랍니다.”

“시급 30원 받고 2년간 쇠파이프로 맞아가면서 일했습니다. 저희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부산 형제복지원 전경. 연합뉴스
부산 형제복지원 전경. 연합뉴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기사 댓글창을 열어보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이름이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직을 맡고 있는 ‘이향직’ 씨다. 2014년부터 2026년까지, 이향직(54) 씨는 각종 포털사이트에 형제복지원 사건을 공론화하는 댓글을 바지런히 써왔다. “하루 3시간씩 자면서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고 다녔어요. 제발 우리를 알아달라고.”

2016년 한 언론사 페이스북 기사에 달린 이향직 씨 댓글. 페이스북 캡처
2016년 한 언론사 페이스북 기사에 달린 이향직 씨 댓글. 페이스북 캡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그 사이 형제복지원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이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공식 인정했다. 기사 댓글창마다 빠짐없이 등장해 ‘댓글아저씨’로도 불렸던 향직씨는 어느덧 피해자 수백 명을 대표하는 사람이 됐다.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 중인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 김수호 기자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 중인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 김수호 기자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변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그 지옥을 떠올리면 그때 맞았던 신체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져요. ‘환상통’ 이라고 하죠.”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외박했다 아버지에게 붙잡힌 향직씨는 부산 부전역 앞 파출소로 끌려갔다. 당시 아버지는 ‘장을 보고 오겠다’며 아들을 파출소에 맡겼을 뿐인데, 그새 파출소 앞에 선 차량은 향직씨를 싣고 갔다. 종착지는 형제복지원이었다.

그길로 향직씨는 ‘지옥 그 자체’였던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됐다. 명절과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곤 맞지 않는 날이 없었다는 향직씨는 14살부터 17살까지(1984년~1987년) 그곳에서 “개처럼 일했다”고 한다. 그가 3년 동안 일하고 받은 돈은 15만 원 남짓이 전부였다.

2014년 형제복지원 사건을 파헤친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향직 씨도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유튜브 캡처
2014년 형제복지원 사건을 파헤친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향직 씨도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유튜브 캡처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1987년 부산의 한 복지시설에서 벌어진 최악의 인권 유린 사태다. 당시 정부는 부랑인을 선도하고 거리를 정화한다는 명분 아래,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일반 시민과 어린이를 무차별적으로 끌고 갔다. 그때 형제원에서는 불법 감금, 폭행, 성폭행, 강제노역, 횡령 등 범죄와 가혹행위가 일상이었다.

진화위에 따르면 향직씨처럼 과거(1975~1987년)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된 이들은 3만 8000여 명, 이 중 사망한 것으로 공식 확인된 인원은 657명이다. 2022년 진화위는 형제원 사건을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피해 복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후 2024년 부산시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에게 위로금 500만 원(1회), 생활안정지원금 매월 20만 원 등을 지원하기로 했으나, 지원 대상이 부산시 거주민으로 제한됐다. 부산시에 살지 않는 피해자 상당수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국가배상금, 나라에 돈이 없어 못 준다더라”

2024년 11월7일 이향직 씨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손해배상 소송 2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2024년 11월7일 이향직 씨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손해배상 소송 2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경기도 광주에 사는 향직씨는 피해자들과 함께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를 결성하고 2021년 5월 피해자 최초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최후의 보루’인 법원으로부터 국가 폭력을 인정받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지난한 소송 과정과 2차 가해였다. 재판 과정에서 향직씨는 피고 측 변호사로부터 “14살이면 사리분별이 될 나이인데 왜 도망가지 않았냐”는 어처구니없는 질문도 들었다고 한다.

계속되는 정부의 항소와 상고로 인해 향직씨 등 13명은 4년이 지나서야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25년 3월 대법원 민사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향직씨 등 1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심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1·2심의 판단을 확정했다. 1심은 피해자들이 청구한 배상금 80억 원 중 일부를 인정해 총 45억 3500만 원을 국가가 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이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드디어 배상을 받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하루이틀이 지나고 수 개월이 흘러도 배상금이 들어오지 않았다. 국가 예산이 동났다는 이유였다. 당시 향직씨 제보로 언론사 취재가 시작되자, 그제서야 배상금이 입금됐다고 한다.

비단 향직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그는 “올해 들어서도 국가배상금 지급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며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배상 판결을 받은 형제원 피해자 60여 명이 배상금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가배상금 예산이 모자라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의 경우 부족한 예산은 예비비 편성을 통해 뒤늦게 일괄 지급됐다. 향직씨는 “당장 통신비 낼 형편도 못돼 휴대폰이 정지되는 피해자들이 숱하다”며 “치료비가 없어 사망한 사람이 이미 여럿인데,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배상금이 빨리 지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3기 진실화해위 제공
3기 진실화해위 제공

형제원 피해자들은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향직씨를 시작으로 여러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배상과 보상은 엄연히 다르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향직씨는 △피해자 지원금 대상 지역 확대 △주거 및 의료 지원 △교육 및 자립 지원 △사과와 재발 방지 등 실질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들어 향직씨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 3기 진화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 2월 3기 진화위 출범 이후 향직씨에게 진실규명 신청 관련 문의를 한 사람만 200여 명에 달한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홈페이지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홈페이지

과거 형제원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던 향직씨의 마음을 동하게 한 건 말 한마디였다. 2014년 향직씨를 찾은 여준민 당시 형제복지원사건 대책위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죄인이 아닙니다. 국가로부터 사과 받고 명예를 회복해야 할 피해 당사자입니다. 묻혀버린 그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함께해 주세요.”

12년이 흘렀다. 더는 숨지 않는 ‘댓글아저씨’ 향직씨는 피해자 한 명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쉼 없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피해자라고. 그러니 함께 손잡자고.

실화 기반 영화, 드라마, 책 등 콘텐츠 속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다양한 작품 속 실제 인물들을 ‘리캐스트’하여 작품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삶과 사회의 면면을 기록하겠습니다.

‘김수호의 리캐스트’ 네이버 연재를 구독하시면 다양한 작품 속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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