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상승장이 부르는 또 다른 위험
■김민태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부장
입력2026-05-06 17:49
지면 21면
금융시장이 상승 국면에 접어들면 투자에 대한 관심은 확대된다. 특히 최근처럼 글로벌 증시가 강세를 보일 때는 투자하지 않은 자산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퇴직연금은 이런 ‘좋은 시기’에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국내 퇴직연금 자산 구조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 적립금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머물러 있다. 장기 투자 자산임에도 실제 운용은 단기 금리 환경에 크게 의존한다. 시장이 상승할수록 이 구조는 곧바로 수익률 격차, 즉 기회비용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상승장에서 기회를 놓쳤다는 인식은 뒤늦은 투자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 개인 투자자 자금 흐름을 보면 시장 상승 이후 자금 유입이 늘고, 하락 국면에서는 유출되는 ‘수익률 추종’ 패턴이 반복된다. 투자 시점이 시장을 뒤쫓는 방식으로 형성되는 셈이다.
이 현상은 성과 격차로도 확인된다. 미국 투자정보업체 모닝스타는 ‘마인드 더 갭(Mind the Gap)’ 보고서를 통해 펀드 수익률과 투자자의 실제 수익률 간 차이를 분석했다.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투자자들은 연간 약 1%포인트의 성과 격차를 보였고, 누적으로는 약 15% 수익을 놓쳤다. 상품 선택뿐 아니라 투자 타이밍이 성과를 크게 좌우한다는 의미다.
행동 측면에서도 비슷하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는 투자자들이 강세장에서 주식 비중을 늘리고, 약세장에서는 줄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고점 매수, 저점 매도(buy high, sell low)’다. 이런 선택은 당시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산배분 원칙을 훼손하고 회복 구간의 수익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이 패턴은 퇴직연금에서도 반복된다. 원리금보장형에 머물던 자산이 상승장에서 뒤늦게 위험자산으로 이동하면 고점 진입 가능성이 커진다. 이후 변동성이 확대되면 다시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결과적으로 장기 수익률은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 반복된다.
결국 퇴직연금의 위험은 시장 하락 자체보다, 시장 상황에 따라 반복되는 투자 행동에서 발생한다. 특히 상승장은 이런 행동을 촉발하는 가장 강력한 환경이다. 투자하지 못한 기간에 대한 아쉬움이 뒤늦은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음 하락장에서 손실로 연결된다.
퇴직연금은 단기 판단으로 성과를 내는 자산이 아니다. 일정한 자산배분을 유지하며 장기간 투자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결정된다. 중요한 것은 시장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정해둔 자산배분 원칙을 꾸준히 지키는 습관이다.
결국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은 시장이 나쁠 때가 아니라 모든 것이 좋아 보일 때다. 노후자산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운용돼야 하며, 그 구조를 지키는 것이 장기 성과를 좌우하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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