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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막히자 육로뚫어 철강 8만톤 수송…상사 진가는 위기때 발휘”

[CEO&Story] 김성원 GS글로벌 대표

갑작스런 중동 전쟁으로 배 멈추자

선사에 비용 보증 ‘내륙 개척’ 제안

‘고객사 물건 반드시 전달’ 약속 지켜

“주주에게 ‘돈 값’ 하는 건 CEO 책무”

자사주 4만주 매입·고부가사업 전환

7월 휴스턴 지사 세워 美수요 대응

공직 생활 거치며 융합적 사고 배워

상사맨은 ‘사람 장사’…신뢰 최우선

입력2026-05-06 18:00

수정2026-05-06 23:50

지면 26면
김성원 GS글로벌 대표
김성원 GS글로벌 대표

“더는 못 간다. 파키스탄에서 짐을 다 내릴 테니 알아서 하라.”

올 3월 초 GS글로벌(001250)에 비상이 걸렸다. 사우디아라비아 고객에게 보내야 할 중국산 철강 8만 6000톤을 실은 선박이 돌연 ‘중도 하역’을 통보해온 것이다.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단행한 이란 공습으로 호르무즈해협 일대가 위험지역이 된 탓이었다. 선박은 “더는 갈 수 없다”며 파키스탄 해상에 멈춰 섰다.

물건을 보낸 쪽과 받을 쪽 모두 손해가 불가피한 절체절명의 상황. 그렇다고 해운사에 전쟁 한복판을 뚫고 물건을 배달하라고 강요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김성원(사진) GS글로벌 대표는 선사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항로를 돌려 내륙을 뚫읍시다.”

GS글로벌은 선사에 비용 전액을 보증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는 호르무즈를 우회해 예멘 반대편 사우디 얀부항으로 항로를 돌렸다. 그다음은 육로였다. 얀부에서 철강을 내려 트럭으로 1000㎞ 내륙 운송을 강행했다. 중국 철강 업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객에게 물건을 전달하겠다”고, 사우디 측에는 “늦더라도 반드시 보내겠노라”고 약속했다. GS글로벌이 중개한 철강 8만 6000톤 전량은 무사히 목적지에 닿았다.

“엄청 비싼 청구서가 날아오겠죠. 그런데 상사는 그런 거 하라고 있는 회사 아닌가요? 이번 일이 종합상사 GS글로벌의 진가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단순 트레이딩 넘어 물류 전과정 책임

김 대표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찔했던 일화들을 풀어놓았다. 그가 전한 무용담은 단순한 물류 사고 수습만이 아니었다. 종합상사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회사를 어떻게 이끌어갈지를 보여주는 선언문이나 다름없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말 GS그룹 인사를 통해 GS E&R 대표이사 부사장에서 GS글로벌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선임 후 첫 주주총회가 열린 3월 그는 장내에서 자사주 4만 주를 사들였다. “회사의 가치가 시장의 평가(주가)보다 훨씬 높다는 확신이 있고 직원들과 함께 그것을 실적으로 증명해 주주들께 보답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김 대표는 “회사를 믿고 투자를 해주신 분들께 돈값을 해드리는 것은 최고경영자(CEO)의 당연한 책무이자 도리”라며 자사주 매입이 이 같은 의지의 표명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직전 연도 실적만 놓고 보면 그가 강조한 ‘도리’는 미흡한 것이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매출은 4조 1093억 원으로 전년 대비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523억 원으로 32.8% 줄었다. 주력인 철강 트레이딩이 미국의 고율 관세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데다 자회사 GS엔텍이 해상풍력 구조물 전문 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회성 손실을 낸 영향이 컸다. 김 대표는 “이유를 떠나 영업이익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는 송구하다는 말 외에는 붙일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실적 개선의 그림은 크게 양대 축을 중심으로 구상하고 있다. 하나는 기존 철강 트레이딩의 고부가가치화다. 김 대표는 유정용 강관과 전기강판을 핵심 품목으로 꼽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에너지 투자 드라이브로 미국 내 유전·가스전 설비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련 강관 수요가 폭발하고 있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기차 확대에 따른 전기강판 수요는 구조적 성장세다.

GS글로벌은 이를 감안해 7월 미국 휴스턴에 지사를 신설하고 중동 복구 시장 공략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미국 지사만으로는 에너지산업이 밀집된 휴스턴을 공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다른 하나는 자회사 GS엔텍의 조기 회복이다. 현재 해상풍력 구조물 기업으로의 전환율은 76% 수준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올해 8월이면 전체 설비 세팅이 완료돼 자체적으로 테스트 구조물을 만드는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GS글로벌은 올해 매출 목표를 4조 6000억 원으로 잡아두고 있다.

정책 안팎 모두 경험…종이신문서 사업 힌트

지금은 ‘상사맨’ 직함이 익숙하지만 시작은 정책을 설계하는 공무원이었다.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산업통상부의 전신인 상공부와 산업자원부에서 근무한 김 대표는 이후 포스코와 두산중공업을 거쳐 2021년 GS에너지 에너지자원사업본부장으로 영입됐다.

GS E&R 대표를 거쳐 GS글로벌을 이끌고 있는 지금, 공직에서의 경험은 큰 자산이자 무기가 됐다. 정책의 안과 밖을 모두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융합적 시각’이 그것이다. 김 대표는 “상공부 공무원의 강점 중 하나가 넓은 분야를 경험한다는 것”이라며 “요즘 모든 산업이 스탠드 얼론(stand alone), 즉 독자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시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철강 제품만 해도 고객이 최종 소비자에게 내보낼 때는 플라스틱도, 비철금속도 필요하다”며 “철강 장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고객의 폭넓은 니즈를 융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공직에서 배웠다”며 웃어 보였다.

다양한 경험과 융합적 사고를 위해 그가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종이 신문 읽기다. 그는 매일 아침 볼펜으로 줄을 쳐가며 경제 신문을 읽는다.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맥락을 읽는 훈련”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면 신문의 경우 거시적 흐름과 미시적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행간을 읽어야 전체 맥락이 잡히는 거죠.”

두산중공업 재직 시절 발전소와 전혀 무관한 업종의 회사가 발전소를 지을 계획이라는 단서를 신문에서 발견해 수주로 연결한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그 회사는 평소 영업 레이더 밖에 있었는데 신문 기사 몇 줄을 단서로 역추적해 의사 결정자를 찾아냈고 결국 수주에 성공했다”며 “세상에 이렇게 좋은 정보 소스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장사꾼’이라고 칭했다. 직원들에게도 “우리는 사람 장사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상사는 고객에게 필요한 것을 적기에 가장 좋은 가격으로 안전하게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며 “내가 마음에 안 들면 고객이 나한테 물건을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물건 파는 ‘나’라는 사람이 먼저 고객에게 팔려야 비로소 진짜 내 장사(업무)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신뢰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한 번은’ 팔 수 있어도 두 번, 세 번은 못 판다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나는 장사꾼…전쟁 터져도 ‘기본’ 지킬 것

회사의 미래상에 대한 질문에도 숫자 대신 사람을 먼저 꺼냈다. 그는 “매출 몇 조, 이익 얼마를 달성하는 숫자로 표현되는 회사보다 직원이 행복하고 그 행복을 바탕으로 고객의 신뢰를 얻는 종합상사가 제가 지향하는 모습”이라며 “그게 되면 돈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더라”고 했다.

눈앞의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경영자에게 쉬운 일은 아닐 터. 김 대표에게는 조급함을 다스리는 자신만의 훈련법이 있다. 매일 아침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40분간 시속 6㎞로 달리는 ‘슬로 러닝(slow running)’이다. 동네 어머니들에게도 추월당하는 속도지만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속도가 아니다. 핵심은 매일, 꾸준히, 포기하지 않는 것에 있다.

출장 가방은 ‘무조건 기내 수화물’로 실을 만큼 ‘간단한 짐’을 강조하는 그이지만 가방 안에는 운동화를 꼭 챙길 만큼 ‘매일 아침 달리기’는 빼먹지 않고 있다. 김 대표는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라며 “전쟁이 터져도 내 기본대로 지치지 않고 일희일비 않는 게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파키스탄 해상에서 배가 멈춰 섰던 3월의 어느 날도, 그는 그렇게 했다.

He is…△1970년생 △서울대 법학 △1992년 상공자원부 행정사무관 △2000년 산업자원부 행정서기관 △2007년 포스코 경영기획실 팀 리더 △2009년 두산중공업 발전영업 상무 △2017년 두산중공업 마케팅 부문 부사장 △2021년 GS에너지 에너지자원본부장 부사장 △2024년 GS에너지 해외에너지실장 부사장 △2025년 GS E&R 대표이사 부사장 △2026년~ GS글로벌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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