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릴 신약 발굴 획기적 단축…난치병 고칠 ‘맞춤 DNA’ 합성
■합성생물학 혁신 상징 日 신플로젠 가보니
AI 기술 진화로 유전자 설계 평준화
OGAB 독자공법으로 ‘긴 DNA’ 구현
합성비용 낮춰 국가 경쟁력 자산으로
머크·후지필름 등 글로벌 고객사 확보
마이크로칩 결합, 식품·소재로도 확장
입력2026-05-07 17:52
수정2026-05-07 23:46
지면 5면
합성생물학은 이제 실험실 안에만 존재하는 전문용어가 아니다. 탄소 중립을 위한 화학품·연료·단백질 생산부터 유전자 치료제 개발, 식품·소재 산업까지 산업 전반의 생산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차세대 제조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생명 설계 영역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합성생물학은 단순한 연구개발을 넘어 국가가 산업 전략과 공급망 차원에서 다뤄야 할 핵심 기술로 위상이 바뀌고 있다.
지난달 21일 일본 고베 신플로젠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야마모토 가즈히코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3~5년 사이 AI가 급격히 진화하면 설계 단계의 정확도가 크게 높아지고 기업 간 설계 능력 격차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누가 더 정교한 설계를 하느냐보다 누가 그 설계를 빠르고 정확하게 실제 DNA로 구현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신플로젠은 일본 고베대 대학원 과학기술이노베이션연구과 교수였던 야마모토 현 CEO와 곤도 아키히코 고베대 명예교수를 포함한 연구진이 2017년 설립한 대학 연구실 기반 합성생물학 기업이다. 연구진은 긴 DNA를 다룰 수 있는 독자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취득했다. 이를 기반으로 신플로젠의 핵심 기술인 OGAB™가 사업화 단계까지 이어졌다. OGAB™는 고초균을 이용해 길고 복잡한 DNA 조각을 정확한 순서로 조립하는 신플로젠의 독자적 합성 기술이다.
DNA는 염기 서열 길이가 길수록 다양한 유전자를 담는다. 이 경우 유전자 치료, 바이오 소재, 미생물 생산 공정 등 고도의 기술을 구현하는 게 가능해진다. 하지만 DNA가 길어질수록 합성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기 쉽고 반복 서열이나 복잡한 구조 때문에 끊어지거나 불안정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 때문에 안정적으로 긴 DNA를 만드는 기술은 합성생물학 분야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신플로젠은 OGAB™를 바탕으로 일본의 바이오산업 육성 전략 속에서 성장해왔다. 일본 정부와 고베시는 고베의료산업도시(KBIC)를 정비해 병원·연구기관·대학·기업이 한곳에 모여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함께 추진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 이 지역을 국가전략특구로 지정해 규제 완화와 실증·창업 지원이 가능한 환경을 구축했다. 대학 연구실의 기술이 스타트업으로 이어지고 다시 병원·기업·투자로 연결되는 구조가 조성된 것이다. 일본이 바이오 제조와 합성생물학을 탈탄소, 산업 경쟁력, 경제안보 관점의 중요 과제로 선정한 것도 신플로젠 같은 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됐다. 신플로젠은 설립 후 벤처캐피털 JAFCO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이후 미즈호은행이 참여한 자금 조달에도 성공하며 사업 기반을 넓혀왔다. 야마모토 CEO는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은 고객 기업의 미래 사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분야를 발굴해 출자하고 있는데 신플로젠 투자가 그 첫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신플로젠은 이후 아르칼리스·후지필름·머크 등 여러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특히 세계적인 합성생물학 선도 기업인 깅코바이오웍스와의 협업 논의는 신플로젠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신플로젠은 깅코에 합성이 어려운 고난도 DNA를 제공하고 깅코가 이를 활용해 바이오 제조를 진행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신플로젠은 앞으로 3~5년 안에 AI가 급격히 진화하면 상용화의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전자·세포 치료와 함께 항체의약품 탐색 과정에서 AI가 DNA 서열을 설계하고 이를 신속하게 합성할 수 있다면 ‘설계→합성→실험 검증’의 회전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수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후보 물질 발굴과 검증 기간도 단축될 수 있다. 이 때 경쟁 우위의 원천은 실험 데이터와 노하우가 아닌 AI가 설계한 DNA를 실제로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어내는 ‘제작’ 능력으로 이동한다.
최근 신플로젠은 벨기에 반도체 연구기관 아이멕과의 협력도 결정했다. 목표는 마이크로칩 위에서 DNA를 합성하는 차세대 기술이다. 반도체 미세 가공 기술을 DNA 합성에 응용하면 작은 칩 위에서 다수의 DNA 조각을 동시에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비용은 낮아진다. 유전자 치료제나 mRNA 백신처럼 고부가가치 분야에서는 비용 부담을 감당할 수 있지만 식품·소재·화학품·연료처럼 저비용 대량생산이 필요한 영역으로 확장하려면 DNA를 더 싸고 빠르게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야마모토 CEO는 “현재 일본에서는 합성생물학 기술을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며 “모든 산업에 응용될 DNA 합성 비용을 낮추는 것은 국가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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