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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심판이 ‘투수의 기술’을 범칙으로…볼넷 70년래 최고

◆ 박시진의 글로벌 픽 <16>

홈플레이트 살짝 벗어나면 가차없이 ‘볼’ 판정

70년간 통하던 경계구 속임수 더 이상 불가능

스윙률 47.6%→46.6%, 스트라이크존 투구도↓

160㎞ 강속구에 타자들도 전략 변경…‘신중’모드

경기시간 3분 늘고 득점은 9.0점으로…느린 경기

타자보다 포수 이의 제기 시 판정 뒤집힌 경우 늘어

입력2026-05-09 06:00

수정2026-05-09 07:10

지난해 9월 김하성(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선수가 트루이스트 파크에서 열린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아웃을 잡아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김하성(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선수가 트루이스트 파크에서 열린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아웃을 잡아내고 있다. 연합뉴스

볼넷 9.5%, 70년 만의 최고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가 6주 전 도입한 ‘로봇 심판’ 이후 벌어진 일입니다.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이 투수들을 궁지로 몰고 있습니다. MLB 전체 타석 중 볼넷 비율은 9.5%에 달합니다. 수십 년간 8.5% 안팎을 유지하던 수치가 급등했습니다. 이 추세라면 올 시즌은 지난 70년 중 두 번째로 높은 볼넷 비율로 마감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2024 시즌부터 도입된 ABS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기존 심판 판정을 유지하되 필요할 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ABS는 카메라나 레이더를 이용해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을 추적해 스트라이크나 볼을 판정합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모든 투구를 ABS로 판정하지만, 미국 메이저리그는 심판의 판정에 이의가 있을 경우 선수가 ABS 판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각 팀은 기본적으로 두 차례 챌린지 요청을 할 수 있으며 두 번 모두 실패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가 저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와의 경기 1회 단타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가 저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와의 경기 1회 단타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제구력과 변화구 회전력을 갖춘 노련한 투수들은 홈플레이트를 살짝 벗어난 공을 스트라이크로 만드는 기술로 인간 심판을 속여왔습니다. 오랜 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봇 심판은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살짝만 빗겨가도 가차 없이 볼 판정을 내립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습니다.

사실 MLB가 로봇 심판을 도입한 것은 경기에 더 많은 박진감을 불어넣고 시속 160㎞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의 공세 속에 타자들이 버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봇 심판의 등장 이후로 볼넷 기록이 늘고 있는데요, 수십 년간 일정하게 유지되던 수치가 급등했습니다.

MLB 볼넷 비율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0년대 후반에는 10% 안팎이었습니다. 이후 줄곧 8.5% 수준을 유지해 왔습니다. 2000년 이후 처음으로 9%를 넘었습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올 시즌은 지난 70년 중 두 번째로 높은 볼넷 비율로 마감하게 됩니다. 경기당 득점도 지난해 같은 기간 8.6점에서 올해 9.0점으로 소폭 늘었습니다.

변화는 경기 시간에도 나타났습니다. 올 시즌 9이닝 경기 평균 시간은 2시간 41분으로 전년(2시간 38분) 대비 약 3분이 길어졌습니다. 2023년 ‘피치 클락(투구시계)’이 도입된 이후 최장 시간입니다. 경기당 득점도 지난해 같은 기간 8.6점에서 올해 9.0점으로 소폭 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볼넷 증가를 주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메이저리그 야구 시즌별 볼넷 비율. 출처=팬그래프
메이저리그 야구 시즌별 볼넷 비율. 출처=팬그래프

타자들의 타격 전략도 달라졌습니다. 올 시즌 스윙률은 46.6%로 작년(47.6%)보다 감소했습니다. 스트라이크 존 투구의 비율도 50.7%에서 47.3%로 낮아졌습니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선발 투수 잭 리텔은 “타자들은 공을 선택할 수 있으니 애매하다 싶으면 더 신중하게 타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애매하게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온다면 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ABS 테스트 기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도 실제 볼넷이 증가했고, 일부 투수들은 메이저리그 도입을 기피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ABS 스트라이크 존은 실제 더 작으며, 상단은 타자 키의 53.5%로 책정됐습니다. 또 3차원 박스가 아닌 공이 플레이트의 중앙점을 통과하는 지점을 기준으로 스트라이크를 판정합니다.

여기에 불만을 가지는 투수들도 있습니다. 로봇 심판의 판단 기준이 플레이트 가장자리 투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한 투수는 “예전에는 공이 목표 지점에 정확히 맞으면 볼이더라도 심판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렸다”며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이 더 이상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뉴욕 양키스 구원투수 제이크 버드도 “지난해 마이너리그로 내려갔을 때 ABS에 꽤나 좌절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로봇 심판이 투수들에게 불리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타자가 판정에 이의를 제기해 판정이 뒤집힌 경우는 단 46%에 불과합니다. 반면 포수가 투수를 대신해 이의를 제기한 경우 번복률은 60%에 달합니다. ABS 테스트 기간을 포함해 포수들이 1100회 이상의 이의제기를 한 점을 감안하면, 스트라이크가 200개 이상 더 늘어난 셈입니다.

결국 로봇 심판은 단순히 ‘오심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메이저리그가 70년 넘게 묵인해온 투수들의 암묵적 기술과 인간 심판의 재량 영역까지 해체하고 있습니다. 스트라이크존 경계에서 살아남던 노련함은 이제 데이터 앞에서 범칙처럼 취급되고, 투수들은 더 정직한 공을 던져야 하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ABS는 판정의 공정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야구 특유의 심리전과 ‘애매함의 미학’까지 걷어내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 MLB가 실험하는 것은 단순한 판정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이 개입하던 야구를 어디까지 기계에 맡길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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