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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말이 좋아 손주 사랑, 사실상 6시간 노동”…조부모 절반이 거절 못 한 ‘손주 돌봄’의 현실

입력2026-05-10 09:01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자녀 사정 뻔히 아는데 거절할 수 있나요.”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들의 하루는 생각보다 길었다. 평균 하루 6시간 가까이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조부모들은 “비자발적 돌봄을 하고 있다”고 답해 한국 사회의 ‘숨은 돌봄 노동’ 현실이 드러났다.

“도와주는 수준 아니다”…주 27시간 손주 돌봄

10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내놓은 ‘가족 내 손자녀 돌봄 현황과 정책방안 연구’에 따르면 조부모들은 평일 기준 주 평균 4.6일, 하루 평균 6.04시간 손자녀를 돌보고 있었다. 주간 평균 돌봄 시간은 26.83시간으로 사실상 ‘파트타임 노동’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비자발적 돌봄’ 비율이었다. 응답자의 53.3%는 “원하지 않지만 자녀의 사정 때문에 돌봄을 거절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의 부담이 더 컸다. 비자발적 돌봄 경험 비율은 여성 57.5%, 남성 44.6%로 12.9%포인트 차이가 났다. 손자녀뿐 아니라 배우자나 다른 가족까지 함께 돌보는 ‘다중 돌봄’ 경험 역시 여성(56.4%)이 남성(40.1%)보다 높았다.

이는 단순히 “손주를 봐준다”는 수준을 넘어, 조부모 특히 조모(祖母)가 가족 돌봄 체계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연구진은 부모의 긴 노동시간, 사교육 일정, 맞벌이 구조, 공적 돌봄 부족 등이 조부모 돌봄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최근 6개월 동안 주당 15시간 이상 만 10세 미만 손자녀를 돌본 경험이 있는 만 55~74세 조부모 106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관계는 가까워졌지만…“힘에 부친다”는 할머니들

할머니가 손주의 유치원 등원을 돕는 모습. 뉴스1
할머니가 손주의 유치원 등원을 돕는 모습. 뉴스1

‘손주 돌봄’이 가족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응답도 많았다.

조부모의 81.9%는 “손자녀와 관계가 좋아졌다”고 답했고, 68.8%는 “자녀 부부와 관계가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특히 “손주 부모와 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남성(73.6%)이 여성(66.5%)보다 높았다.

하지만 정서적 만족과 별개로 신체적·정신적 부담도 상당했다.

응답자의 73.7%는 “육체적 피로감이 증가했다”고 답했고, 60.4%는 “스트레스와 정신적 부담이 늘었다”고 했다. 기존 질환이나 통증이 심해졌다는 응답도 47.8%에 달했다.

실제 조부모의 46.8%는 “손주 돌봄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은 49.0%로 남성(42.5%)보다 높았고, 특히 0~1세 영아를 돌보는 여성 노인의 경우 절반이 넘는 54.7%가 돌봄 중단을 고민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중단을 생각한 이유로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가 46.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스트레스(12.1%), 건강 악화(10.8%) 순이었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부모 돌봄은 한국 사회 돌봄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가족 내부 희생으로만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부모가 직접 돌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 구조와 공적 돌봄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주 돌보면 노쇠 위험 낮아진다?…“적당할 때 이야기”

손주 돌봄이 노년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박유진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국제 노인의학·노인학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손주를 돌보는 여성 노인은 그렇지 않은 여성 노인보다 노쇠 위험이 22% 낮았다.

연구진은 손주 돌봄이 삶의 의미와 역할감을 높이고 자연스러운 신체 활동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팀은 “돌봄 시간이 과도하거나 원치 않는 돌봄을 의무처럼 떠안을 경우 오히려 건강 악화와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손주 돌봄도 ‘적당할 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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