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과 저출생의 악순환 끊으려면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자리·교육, 문화 기회 수도권 쏠려
메가시티에 실질 권한 줘야 경쟁력↑
행정통합 논의, 지방분권 이어져야
지난 연말 지방의 한 중소도시에서 찾아온 고등학생들과 지방 소멸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그곳에서 계속 살고 싶은지 아니면 서울로 가고 싶은지를 묻자 학생들은 현재 사는 곳에서 미래를 그리기 어려운 이유를 차분히 털어놓았다. 대화가 끝난 후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지방 소멸의 본질은 과연 지방의 인구 부족이나 청년들의 정착 의지 약화 때문일까.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도 삶의 기반은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수도권 중심 구조의 모순이 아닐까.
지방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더 나은 일자리와 교육, 문화적 기회가 수도권에 과도하게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청년들이 모여드는 서울은 더 이상 정착하기 쉬운 도시가 아니다. 과밀과 경쟁은 높은 생활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그 압박은 주거비와 사교육비에서 특히 선명하다. 2024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서울의 사교육 참여율은 86%를 넘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60만 원대 후반에 이른다. 여기에 평균 10억 원을 훌쩍 넘는 아파트 가격까지 더해지면서 서울의 삶은 갈수록 비싸진다. 중위소득 가구가 집을 마련하려면 월 소득의 4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하고 맞벌이 가구조차 주거비와 교육비를 빼면 남는 가처분소득이 많이 줄어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방 소멸과 저출생은 하나의 궤적으로 겹쳐진다. 서울은 지방의 젊은 인구를 끊임없이 흡수하지만 정작 그들이 정착하고 가정을 꾸리며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조건은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은 수도권의 높은 생존 비용을 감당하느라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된다. 그 결과 서울은 지방의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면서 다음 세대를 이어가기 어려운 도시가 됐다. 따라서 지방 소멸은 단순한 지방의 실패가 아니라 수도권 초집중 모델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구조적 징후다.
결국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서울과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인구와 기회를 지방으로 분산하는 공간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지방에 일자리를 몇 개 더 만드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방에서도 수도권에 뒤지지 않는 교육과 문화·생활 인프라를 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람들은 지방에서 삶의 미래를 다시 그릴 수 있다. 수요가 지방으로 분산되면 서울의 과도한 주거비와 사교육 경쟁 압력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고 지방 역시 소멸의 위협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최근 비수도권 곳곳에서 제기되는 행정통합과 메가시티 구상은 지역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하나의 현실적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파편화된 지방자치단체를 보다 넓은 경제권과 생활권으로 묶어내는 일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인구와 자본의 일방적 쏠림에 맞설 수 있는 지방의 거점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핵심은 행정구역을 단순히 합치는 데 있지 않다. 사람과 산업, 교육과 문화가 함께 순환할 수 있는 규모와 기반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러나 행정구역을 단순히 합쳐 몸집만 키우는 방식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넘기 어렵다. 메가시티가 실질적인 자생력을 갖추려면 형식적 통합을 넘어 입법·행정·재정 전반에 걸친 실질적 권한 이양이 뒤따라야 한다. 각 지역이 스스로 조례를 만들고 규제를 혁신하며 독자적 재정 기반 위에서 산업과 일자리를 키울 수 있어야 행정통합도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다면 그 시너지는 공허한 구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최근 국회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행정통합 논의와 관련 입법은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를 계기로 지방의 실질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후속 논의와 제도적 보완이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결국 지역사회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지방분권 개헌의 과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방 소멸과 저출생은 더 이상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지방의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수도권 역시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지방이 소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살려내는 것은 국토의 균형 발전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회복하는 과제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