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도 CEPA 협상의 장벽과 돌파구
라훌 라즈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입력2026-05-12 11:11
라훌 라즈
인도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 한국학과 조교수
오랜 기간 정체되어 있던 한국과 인도 관계 속에 이재명 대통령이 8년 만에 최근 인도를 국빈 방문했다. 양국 관계를 단순한 거래 중심을 넘어 청정 에너지, 해양 역량, 인공지능, 공급망 등 전략적 분야로 확대·재활성화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는 양측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을 핵심 의제로 다루며 협상을 신속히 진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이 지연된 원인으로는 인도 상무부 장관 피유시 고얄이 지적했듯이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기존 CEPA의 한계가 꼽힌다.
지난 2010년에 인도와 한국 사이에 체결된 CEPA는 상호 보완적인 두 아시아 경제의 공존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었다. 상호 비교우위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전향적 협정으로 평가받았다. 한쪽은 제조업 강국이고, 다른 한쪽은 규모와 인구의 역동성을 갖춘 경제였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 협정은 역설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무역은 증가했고, 투자는 확대되었으며, CEPA는 부분적으로만 달성되었다. 협정을 업그레이드할지 여부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더 복잡해진 글로벌 경제 속에서 상충하는 이익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CEPA 발효 이후 양국 간 무역은 2024~2025년까지 260억~270억 달러 수준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이제 인도 산업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인도는 전자제품, 자동차,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 중요한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속적인 불균형이 존재한다. 인도의 대(對)한국 무역 적자는 1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으며, 이는 반도체, 기계, 석유화학, 자동차 부품과 같은 고부가가치 품목의 수입에 의해 확대되고 있다.
반면 인도의 수출은 한국의 규제된 시장에서 여전히 제약을 겪고 있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인식과 정책에 영향을 미치며, 뉴델리가 추가적인 자유화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인도는 CEPA를 단순한 업그레이드를 넘어 재정의하고자 하며, 절차적·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인도–한국 CEPA에는 두 가지 주요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관세의 비대칭성과 부문별 민감성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은 자동차, 철강, 전자제품과 같이 경쟁력이 높은 분야에서 더 큰 관세 인하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인도는 이러한 부문을 자국 산업화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간주한다.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와 생산연계 인센티브 프로그램(PLI)과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인도 정부는 자국 산업을 위협할 수 있는 수입 확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한국이 시장 접근으로 인식하는 것을 인도는 취약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게다가 비관세 장벽은 관세보다 더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인도 수출업체들은 여전히 한국의 기준, 인증 요구사항, 그리고 언어별 준수 규정을 충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농업 및 제약 분야의 수출은 각각 엄격한 규제 장벽에 직면해 있다.
반면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관료적 지연, 과도한 문서 작업, 토지 취득의 지연,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현지화 압력을 주요 문제로 꼽는다. 이러한 마찰은 상호 불신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낳으며, 점점 해결이 어려워지고 기업 활동 전반에 더 깊이 자리 잡게 된다.
세 번째로 CEPA는 설계 부분에서 다시 한 번 한계를 드러낸다. 2000년대 후반에 협상된 이 협정은 오늘날 무역의 핵심 요소로 부상한 디지털 상거래, 국경 간 데이터 흐름, 핵심 공급망, 친환경 기술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무역이 기술 및 안보와 더욱 긴밀히 얽혀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공백은 CEPA의 전략적 중요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넷째 협정 조건이 각국의 국내 정치·경제적 상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인도에서는 양자 및 지역 간 무역 협정으로 인해 수입 급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꾸준히 신중한 검토 대상이 되어 왔다. 한국 역시 수출 확대 목표와 국내 산업 보호, 그리고 국제 시장의 불확실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 나라든 무역 정책은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무역 장벽이 문제라면, 이를 해소하기 위한 협상이 필요하다.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을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직된 약속에 매달리기보다, 산업별 상황에 맞는 유연한 해법을 통해 점진적인 진전을 모색해야 한다.
인도는 관세에 민감하지 않은 분야에서 점진적인 관세 인하를 추진할 수 있으며, 서비스, 제약, 특정 농산물과 같은 강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 한국 역시 민감한 제조업 분야에서는 수입 확대에 따른 영향을 관리하면서, 성장 산업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제도화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규제 당국 간 협력 역시 중요하다. 공통 기준 마련을 위한 공동 협의체 구축, 분쟁 해결 절차의 신속화, 상호 인정 확대를 통해 비관세 장벽을 줄여나가는 것 등을 목표로 할 수 있다. 무역에 앞서 종종 간과되는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 역시 관세 인하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책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전통적인 무역의 틀을 넘어선 부분일 것이다.
공급망 협력은 전략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인도와 한국은 전 세계 생산 네트워크가 더욱 다양화되는 흐름 속에서 전자, 반도체, 전기차, 핵심 광물 분야에서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공동으로 구축할 강력한 유인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 한국 기업들은 인도를 제조 및 수출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고, 인도는 첨단 기술과 글로벌 가치사슬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 디지털 및 혁신 분야의 파트너십 역시 또 하나의 중요한 협력 분야다. 첨단 기술에 대한 한국의 역량과 디지털 공공 인프라에 대한 인도의 경험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시너지가 존재한다. 디지털 무역, 데이터 거버넌스, 그리고 CEPA를 기반으로 한 기업 간 협력을 추가할 경우, 해당 협정을 미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투자를 통한 무역 균형 조정 또한 필요하다. 인도에 대한 한국의 투자 확대, 특히 수출 주도형 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은 무역 적자 해소와 동시에 산업 간 연계성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 베트남에는 수천 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활동하고 있는 반면, 인도에 진출한 기업 수는 수백 개 수준에 그친다. 이제는 한국 기업들이 인도 내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현지 공급망을 활성화해야 할 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 순방 기간 중 체결된 ‘한-인도 산업협력위원회’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와 인도 내 ‘한국 전용 산업단지’ 조성 계획 발표는 투자, 제조, 공급망 분야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무역 규모 확대와 무역 적자 문제 완화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궁극적으로 CEPA의 난제는 무역, 더 나아가 다극화된 세계에서의 무역이 지닌 보다 근본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공급망 외교와 기술 협력을 반영하도록 새롭게 설계된 CEPA는 양측의 공동 노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는 보다 균형 잡힌 무역 구조를 지향하는 동시에 급증하는 무역 적자라는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과 지역 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 회복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타협과 새로운 발전 방향 모색, 그리고 이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상호 유리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면, CEPA는 당초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거두며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상치 못한 파트너십을 다극화된 경제 환경 속에서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CEPA 협상에 상당한 노력이 투입되어 온 만큼, 보다 완성도 높은 CEPA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한국의 과일인 ‘감’이 익어가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감이 제 맛을 내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 기다림 끝에 비로소 깊은 단맛을 즐길 수 있다. 결국 잘 익은 ‘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든, 장기적인 대외 관계를 공고히 하는 일이든 최상의 결실을 위해서는 인내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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