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검거된 범인만 7명인데 ‘진범’은 없다…미제로 남은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
입력2026-05-14 00:00
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 <편집자주>
2007년 5월 14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수원고등학교 건물 인근에서 10대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남학교 교정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소녀의 시신이 나온 사건은 곧바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경찰은 미성년자 지문 조회를 시도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신원을 특정할 단서가 없자 경찰은 소녀를 노숙인으로 단정하고 수원역 일대 노숙인들을 상대로 탐문수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경찰 귀에 들어온 소문이 있었다. 수원역 노숙인 집단의 대장이 돈을 훔친 소녀를 부하들을 시켜 구타하다 죽게 한 뒤 시신을 학교에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였고, 수원역에서 노숙하던 정신지체인 정모씨(당시 29세)와 강모씨(당시 29세)를 범인으로 체포했다.
사건 발생 8개월 후 검찰은 당시 소년분류심사원에 수용 중이던 가출 청소년 5명을 상해치사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검찰 조사 단계에서 이들은 혐의를 시인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청소년들은 일제히 자백을 번복했다. 경찰과 검찰이 협박과 회유로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가 제출됐다. 검찰 심문 과정을 담은 녹화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검사가 청소년들에게 사건 내용을 직접 알려주며 각인시키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청소년 중 한 명은 사건 당일 수원이 아닌 성남에서 다른 가출 청소년을 만났다며 알리바이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검사는 이를 묵살하고 오히려 거짓말한다고 몰아붙였다.
국선변호인 박준영 변호사가 법정 공방을 이끈 끝에 2009년 1월 항소심(부장판사 조희대)은 청소년 5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0년 7월 대법원(주심 김능환 대법관)도 무죄를 확정했다. 무죄 판결 직후 검찰은 판사들이 잘못 판단했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 먼저 체포된 두 명의 노숙인도 자신들의 자백이 허위였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들을 위증 혐의로 기소했지만 2012년 6월 대법원은 위증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고, 같은 달 대법원은 노숙인 중 한 명의 상해치사 사건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해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3년 10월 재심에서 이들도 최종 무죄를 확정받았다.
소녀의 신원은 시신 발견 50여 일이 지난 뒤에야 밝혀졌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시신의 얼굴과 옷을 공개하고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신원 찾기 캠페인을 벌인 결과, 방송을 본 부모가 연락해왔다.
소녀는 노숙인이 아니었다. 지적장애가 있던 15세 중학교 2학년 김모양으로, 가출 경험은 있었지만 노숙 생활을 하던 것은 아니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하고 집을 나선 뒤 변을 당했다.
2011년 11월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를 통해 새로운 정황이 드러났다. 사건 며칠 전 김양의 집을 방문한 친구들이 귀중품을 훔쳐 달아났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한 인터넷 댓글 작성자가 천안에서 만난 가출 청소년 3명으로부터 “소녀를 때리다 의도치 않게 죽였고 겁이 나서 도망쳤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이를 신빙성 있는 제보로 보고 재수사에 착수했으나 사건이 상해치사 혐의로 수사되던 중 2014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진범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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