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사] ‘로즈데이’엔 빨간 장미를
김헌식 칼럼니스트·대중문화평론가
입력2026-05-13 18:09
지면 30면
장미의 계절이라고 불릴 만큼 5월은 장미꽃이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인지 5월 14일은 연인들이 장미를 주면서 고백하는 ‘로즈데이’이기도 하다. 한때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건네야 센스 있는 남자라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는데 바로 다섯손가락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라는 노래의 히트 때문이었다.
다만 이 곡에는 실연의 아픔이 배어 있다. 이두헌은 1983년 동국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동갑내기 여성 동기를 짝사랑하게 된다. 마침내 어렵게 고백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다. 상심한 이두헌은 학교 후문으로 나와 충무로를 거쳐 명동까지 걷다가 버스를 타게 되는데 그곳에서 결정적인 영감을 얻는다. 바로 버스 뒷자리에 타고 있던 여고생들이 “오늘 무슨 요일이지? 수요일! 수요일이라서 비가 오나 보다”라는 대화를 나눴고 이두헌은 이를 들으면서 명동 길가에서 장미를 팔던 할머니 모습, 대한극장이 있던 충무로 거리, 코트 깃까지 겹치면서 악상과 가사가 떠올랐다. 그 내용을 급히 담뱃갑 속 은박 종이를 뜯어 쓰기 시작한 곡이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었다. 며칠 내 녹음까지 마친 이 곡이 처음 전파를 탄 곳은 학교 방송국이었다. DJ를 보던 학교 후배가 노래를 틀면서 이 곡은 무슨 과 몇 학번 여학생을 위해 이두헌이 만든 노래라는 멘트까지 곁들였다. 재차 고백을 한 셈이다. 효과가 있었는지 그 여학생이 학교 방송국을 통해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너무 부담스러우니 그런 내용을 학교 방송국에서 내보내지 말라고 했다. 다시 거절을 당한 셈이었다. 애당초 이 노래는 1985년 다섯손가락의 1집 앨범에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음반 기획자가 추가할 곡이 필요하다면서 요청을 해 ‘새벽기차’와 더불어 뒤늦게 앨범에 수록했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보컬 임형순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거절해서 기획자가 곡을 만든 이두헌이 부르도록 했는데 비록 본인은 사랑에 실패했지만 많은 커플의 인연을 만들어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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