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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통합, 개혁을 넘어 혁신으로

정왕국 에스알 대표

입력2026-05-14 18:06

수정2026-05-14 23:52

지면 30면
정왕국 에스알 대표이사
정왕국 에스알 대표이사

“SRT 표 구하기 너무 힘들어요.”

에스알 대표가 된 뒤 가장 자주 듣는 말이자 동시에 가장 미안한 상황이다. 주말은커녕 평일 낮에도 SRT 애플리케이션을 새로고침하며 빈 좌석을 기다리는 승객들의 절박함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무겁다. 철도 서비스의 본질은 이동권 보장이다. 국민이 이동해야 할 때 제때 좌석을 공급하는 것은 철도 운영자의 1차적인 서비스다. 이 기본적인 과제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도권 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SRT 운영사의 뼈아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철도는 거대한 장치 산업이자 네트워크 산업으로 국민의 발을 책임지는 가장 완결성이 높은 산업이다. 단순히 결과물만 제공하는 여타 공공서비스와 달리 철도는 서비스의 생산과 판매·운송 그리고 소멸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정교하고 종합적인 관리를 요구한다. 서비스 대상도 다양하다. 출퇴근 직장인, 명절에 고향을 찾는 가족, 출장을 떠나는 전문가, 병원을 찾는 환자, 다양한 교통 약자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요구 사항이 다른 수많은 고객층이 있고 이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지난 40년간 철도가 국민의 삶 속에서 발전해온 과정을 몸소 겪으며 깨달은 것은 서비스에 대한 이처럼 폭넓고 다양한 요구야말로 철도를 성장시킨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는 점이다.

에스알이 출범한 지 어느덧 13년을 맞았다. 과거 철도청에서 철도공사로 전환되고 고속열차가 도입되면서 철도는 한동안 ‘속도’라는 비교 우위에 안주해왔다. 그사이 높아지는 국민의 기대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던 것이 에스알 탄생의 배경이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말처럼 에스알은 지난 10여 년간 기존 철도 산업에 ‘서비스’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며 긍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개통 이후 단 한 자리의 좌석 공급도 늘리지 못했다는 지적은 에스알의 설립 취지를 담아내지 못한 과오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고속 철도 통합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해법을 제시한다. 통합 운영을 통해 1만 6000석의 좌석이 늘어나고 내년부터 동력 분산식 고속열차 31편성이 순차적으로 도입되면 고질적인 공급 부족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된다. 이는 효율성이라는 행정적 가치와 보편적 복지라는 공공성이 만나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통합이 공급 확대라는 1차적 과제 해결로 끝나서는 안 된다.

개혁은 지나온 과거를 바꾸는 것이고 혁신은 미래를 새롭게 엮는 것이다. 철도 통합이 과거의 불합리한 구조를 바로잡는 개혁이라면 통합 이후 운영은 세계를 선도하는 ‘K철도’의 미래를 만드는 혁신이어야 한다. 문제는 공급자가 하나로 합쳐진 거대 조직은 필연적으로 공급자 중심 사고로 회귀하기 쉽다는 점이다. 경쟁이 사라진 자리에 관료주의가 싹트고 고객의 요구보다 조직의 편의를 우선시하게 된다면 그것은 통합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조직 내부에 정교한 ‘비교 경쟁’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단일화된 구조 속에서도 서비스 품질과 운영 효율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내부 비교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통합된 거대 조직의 매너리즘을 예방하고 내부 경쟁을 통해 혁신을 상시화할 수 있어야 한다. 철도 통합은 단순히 에스알을 지우고 과거 철도청으로 돌아가는 회귀가 아니다. 대한민국 철도의 안전과 서비스 기준을 다시 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통합으로 확보한 거대한 동력은 공급자 편의가 아닌 국민의 편익으로 귀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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