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다음은 저속노화”…‘새로’ 탄생시킨 여명랑의 데이터 마케팅
[유문현답]
여명랑 롯데웰푸드 푸드사업부 부장
‘새로·깨수깡·칸타타’ 히트 공식 비밀
온라인데이터 속 숨은 소비욕구 읽어
“AI시대에도 가치 창출은 인간의 몫”
입력2026-05-17 08:00
수정2026-05-17 21:32
“소비자들은 자신의 욕구와 취향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여명랑 롯데웰푸드 푸드사업부장(상무)은 15일 서울경제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소비자의 말보다 행동 데이터가 더 중요하다”며 “검색어, 카드 결제, 소셜미디어(SNS) 게시글과 댓글 속에는 소비자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욕구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여 상무는 대웅제약과 CJ제일제당, 롯데칠성음료 등을 거치며, 임팩타민, 깨수깡,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크니쁘니, 새로 등 식음료 업계 ‘빅히트’ 상품을 연이어 성공시킨 장본인이다. 최근 그가 출간한 ‘데이터 투 하트’는 그 방법론의 기록이다.
그는 마케팅에서의 데이터의 역할에 대해 “사람들 마음속 0.1평짜리 욕구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도구”라고 표현했다. 소비자들은 카드 사용과 검색, 온라인 활동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고 있으며, 기업은 그 흔적을 읽어 새로운 가치로 창출해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여 상무의 마케팅 원칙은 단순하다. 경쟁자가 있는 시장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의 인기 제품들과 경쟁하기 위해 제품을 만든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소비자들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통해 아직 충족되지 않은 새로운 시장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롯데칠성음료에서 출시된 소주 ‘새로’다. 새로 개발은 기존 소주 시장을 타깃팅하지 않고, Z세대의 소비 성향 분석에서 출발했다. 여 상무는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Z세대가 원하는 건 ‘술이 세 보이고 싶지만 알코올 냄새는 싫고, SNS에 올릴 때 예뻐 보일만한 병 패키지’였다”며 “기존의 소주에서는 없던 제품이었다”고 했다.
칸타타 콘트라베이스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당시 자리를 비우지 않고도 카페인을 보충하고 싶은 직장인들의 욕구에서 출발했다. 이에 기존에 없던 500mℓ 대용량 커피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어냈다. 어린이 유기농 주스 브랜드 ‘크니쁘니’는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우는 아이들을 보며 “왜 아이가 먹는 음료를 부모가 선택하느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주스 구매자의 관점을 부모에서 아이로 바꿨다. 포장 용기를 완구 캐릭터처럼 디자인해 자녀들이 직접 고르도록 유도했다.
여 상무는 최근 소비의 트렌드 변화 역시 데이터로 뚜렷하게 관찰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과 관련 키워드를 분석해오고 있는데, 2018년까지는 가족·친구·연인 같은 관계 중심 키워드가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2019년 이후부터는 ‘먹다’와 ‘보다’가 각각 1·2위로 올라섰다고 밝혔다. 최근 3년 사이에는 ‘건강하다’ 키워드의 증가세도 두드러졌다는 설명이다.
여 상무는 이를 개인 중심 소비 성향과 연결지었다. 그는 “혼자 식사하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며 “과거 ‘우리’ 중심 소비에서 ‘나’를 중심으로 한 소비 패턴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고 말했다.
그는 식품 업계에서 ‘제로’를 이을 다음 소비 트렌드로 ‘저속 노화’를 지목했다. 특히 혈당 스파이크 관리와 건강 식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 상무는 “제로 슈거 제품은 이제 하나의 디폴트(기본값)가 됐다”며 “초기에는 단순히 ‘제로’ 여부가 중요했다면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말티톨·아스파탐 같은 대체 감미료의 성분까지 확인하는 단계로 왔다”고 말했다.
여 상무는 위고비·마운자로 등 비만 치료제의 확산이 식품 소비 패턴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체중 감량 관련 검색어에 식품이 아니라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연결되고 있다”며 “체중 감량은 약물이 담당하고, 식단은 건강 유지와 혈당 관리를 위한 영역으로 이동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에 단백질·저당·좋은 지방 중심 식품 수요가 확대되고 있으며, 혈당 관리 음료와 건강 도시락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트로’ 소비 트렌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M세대에게는 ‘레트로’로, Z세대에게는 ‘뉴트로’로 작동하면서 세대별로 다른 방식으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며 “이 흐름은 최소 10년 이상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어 “데이터는 소비자의 0.1평 욕구를 발견하게 해주지만, 이를 완전히 새로운 가치로 연결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역할”이라며 “인공지능(AI)이 아무리 발전해도 코페르니쿠스 같은 혁신적 발상은 인간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