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창청와인 한모금
입력2026-05-17 18:11
수정2026-05-18 16:47
지면 31면
한영일
논설위원
이달 14일 미중 정상의 국빈 만찬이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 연회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건배사가 끝나자 좌중의 시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쪽으로 일제히 쏠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천천히 와인 잔을 들어 올리더니 뜻밖에도 술을 입술에 적셨기 때문이다. 평생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그였다. 친형이 알코올 중독으로 42세에 세상을 떠나며 ‘절대 술을 마시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 말을 평생의 금기로 삼아 왔던 트럼프 대통령이었기에 그의 와인 한 모금은 그 이상을 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신 술은 중국이 국가 브랜드처럼 키워낸 ‘창청(長城) 와인’이었다. 2017년 1기 집권 당시 방중했을 때도 같은 와인이 나왔지만 그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창청은 중국 내 2대 와인 브랜드 중 하나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은 1892년에 시작된 ‘장유(張裕)’이지만 1979년에 설립된 창청은 국가가 집중 육성하는 브랜드다. 프랑스 기술진과 국제 품종을 적극 도입하며 허베이·산둥·닝샤 일대에서 와인을 빚어낸다. 중국은 세계 최대 식용 포도 생산국이자 세계 10위의 와인 소비국이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와인 소비는 이제 중국 경제성장의 징표가 됐다. 지난해 40조 원에 달한 와인 관련 시장 규모는 2033년에는 두 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창청 와인에 입을 댄 것은 시 주석에게 건넨 계산된 구애의 신호이자 ‘중국 굴기’의 상징적 장면일 수 있다. 이렇듯 국가 간 정상 외교에서는 사소한 부분까지 의미가 담길 수 있다. 와인 잔의 기울기, 악수할 때 손등의 각도, 식탁 위에 오르는 메뉴 하나까지도 치밀하게 설계된 고도의 심리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안동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 안동의 고택과 밥상은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베이징의 ‘와인 외교’에 이은 안동의 ‘밥상 외교’가 주목된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