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이후 과제, 밸류업과 시장 소통
■안효섭 세종 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
최근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거치며 국내 자본시장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고배당이나 자기주식 매입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이사회 독립성 강화, 임원 보상체계 개편, 비핵심 자산 정리, 자본배치 전략 등 기업 거버넌스 전반의 쇄신을 제안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밸류업 공시 도입과 상법 개정,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가 맞물리면서 이러한 흐름은 일시적 현상을 넘어 구조적 변화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최근 일부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주주제안을 보면 단순히 “주주환원을 확대하라”는 요구를 넘어 자기자본이익률(ROE) 하락과 주가순자산비율(PBR) 저평가, 이사회 독립성 부족, 임원 보상정책 미비 등을 문제 삼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이를 경영권 공격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자본시장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PBR 1배 미만 기업을 단순 저평가 기업이 아니라 자본효율성이 낮은 기업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제 시장은 기업에 어떤 사업에 자본을 집중하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지 묻고 있다. 결국 기업가치의 핵심은 자본배치의 질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업들이 특히 유의해야 할 부분은 시장과의 소통이다. 충분한 검토 끝에 내린 의사결정이라도 시장이 배경과 논리, 실행 가능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장기적 주주가치 훼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앞으로 상장회사에 필요한 것은 사후적 방어 논리가 아니라 선제적인 기업가치 제고 전략과 체계적인 시장 커뮤니케이션이다.
기업은 중장기 자본배치 원칙을 보다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업에 투자하고 어떤 자산을 정리할지, 주주환원을 어떤 기준 아래 추진할지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이사회 역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행동주의 캠페인이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보상체계 개편에 집중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기관투자자와 일반주주, 의결권 자문사와의 소통도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행동주의 확산은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내 자본시장이 자본효율성과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시장은 단순한 실적 개선이 아니라 왜 해당 사업에 자본을 배분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주주환원을 추진하는지, 이사회가 이를 얼마나 독립적이고 책임 있게 감독하는지를 묻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에 참여한 기업은 누적 기준 718개사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이미 공시에 참여한 기업은 실행과 이행 과정에 대한 신뢰를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 아직 참여하지 않은 기업도 지금부터 밸류업 전략 수립과 체계적인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에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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