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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선거에 중독된 정치

입력2026-05-20 18:20

지면 30면

“이번에도 여야 모두 쉬운 선거만 하려고 하네요. 수십 년 전 선거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펼쳐지는 선거전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최근 이같이 토로했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나 설득력 있는 철학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어려운 선거’는 이번에도 보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는 “누군가와의 연만 강조하거나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쉬운 선거’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며 “쉬운 선거가 실제로 선거 결과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씁쓸한 진실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 국민의힘의 ‘독재 저지’ 프레임이 대표적인 쉬운 정치다. 모두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해 표를 달라고 호소한다. 복잡한 정책과 지역 현안에 집중하는 대신 분노와 위기감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런 메시지는 강력하게 작동한다. 유권자가 두꺼운 공약집을 읽게 하는 것보다 상대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자극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점차 선거에서 토론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쉬운 정치로의 쏠림을 증명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역대 처음으로 법으로 규정한 1회의 토론만 거친 뒤 치러진다. 심지어 사전투표 당일 새벽 1시에 토론이 종료돼 얼마나 많은 서울시민에게 가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정 토론 외에도 수차례 생방송 TV 토론에 나서서 상호 공약을 검증했던 과거 사례들과는 딴판이다.

토론 실종 책임은 여야 모두 피할 수 없다. 우선 네거티브 공세에만 집중했던 국민의힘이 빌미를 제공했다. 하지만 네거티브를 이유로 토론을 거부하는 민주당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네거티브를 정면 돌파하는 ‘어려운 선거’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더 사로잡을 수 있었음에도 민주당은 용감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유권자들도 ‘쉬운 선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이 쉬운 선거를 고집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유권자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상대방 비방에만 집중하는 ‘프레임 선거’가 옳은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인 토론이 왜 이번 선거에서 사라졌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6·3 지방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결국 정치인은 유권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불편한 사실이지만 유권자가 변해야 정치도 변한다.

이건율 서울경제 기자
이건율 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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