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사태’의 교훈 : 공공 부문의 제도적 방어막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2026-05-22 10:02
수정2026-05-22 11:06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최근 발생한 스타벅스코리아의 이른바 5·18 탱크데이 사태는 기업의 맹목적인 이윤 추구가 공동체의 역사적 비극을 건드렸을 때 어떠한 사회적 재난으로 비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1980년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무력 진압을 연상시키는 탱크데이라는 단어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 은폐를 상징하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결합한 마케팅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가볍게 희화화했다.
이로 인한 파장은 단순히 기업의 평판 하락에 그치지 않았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일부 네티즌들이 생성형 AI를 악용하여 역사적 가해자가 텀블러를 들고 조롱하는 딥페이크 합성물을 대량으로 유포하며 유가족에게 2차 가해를 입혔다. 또한, 분노한 대중의 항의가 매장으로 쏟아지면서 본사 경영진의 기획 실패가 낳은 후폭풍을 최전선의 바리스타와 감정노동자들이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참담한 구조적 모순을 드러냈다.
이러한 참사 마케팅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공공부문은 자율규제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해외 선진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다차원적인 제도적 방어막을 구축해야 한다.
첫째, 입법 및 형사 규제의 강화이다. 현행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은 5·18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만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상업적 조롱이나 희화화에 대한 제재가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것처럼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 비방, 왜곡, 날조하는 행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 이는 나치 지배를 승인, 찬양, 정당화하여 공공의 평온을 교란하는 행위를 징역형 등으로 강력히 처벌하는 독일 형법 제130조를 벤치마킹한 조치로, 역사적 비극의 상업적 악용을 막는 근본적 억지력이 될 것이다.
둘째, 광고 및 마케팅에 대한 행정적 차단의 고도화다. 영국의 광고표준위원회(ASA)는 대중에게 심각하고 광범위한 불쾌감을 유발하거나 살인 등 비극적 사건을 상업적으로 희화화한 광고에 대해 이례적으로 즉각 철회 명령 등 임시 조치를 내린다. 한국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논란이 되는 참사 마케팅을 골든타임 내에 차단할 수 있도록 임시중지명령제도를 활성화하는 패스트트랙 심의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나아가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의 경제적 피해 구제에 집중된 현행 표시광고법을 보완하여, 역사적 비극을 기만적으로 악용해 부당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비윤리적 상업 행위 자체를 강력한 불공정 거래로 규정하고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실효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플랫폼 및 AI 기술 악용에 대한 규제이다. EU는 2026년 시행을 앞둔 인공지능법(AI Act) 제50조를 통해 AI로 생성된 합성 콘텐츠(딥페이크 등)에 기계가 판독할 수 있는 워터마크를 의무적으로 삽입하고, 배포자가 이를 명확히 표기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영국 또한 온라인 안전법을 통해 방송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 주도로 플랫폼 사업자가 유해한 딥페이크 콘텐츠를 해시 매칭 기술 등으로 선제적으로 차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국내 공공부문도 이를 수용하여 플랫폼의 불법 합성물 방치에 대해 무거운 과징금을 매기는 제도를 서둘러야 한다.
넷째, 현장 감정노동자를 위한 산업안전보건 체계의 재설계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는 업무 일시 중단이나 휴게시간 연장 등 사후적 조치에 머물러 있다. 호주 안전보건청(SWA)은 직장 내 폭력과 고객의 공격성을 심리사회적 위험으로 규정하고 사업주에게 강력한 사전 위험 관리 의무를 지운다. 이를 벤치마킹하여, 본사가 민감한 마케팅을 기획할 때 현장 직원이 겪을 폭언 위험을 사전 평가하도록 의무화하고, 위기 발생 시 불만 접수를 매장 직원이 아닌 본사 전문팀으로 전면 이관하는 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
스타벅스 사태는 단순한 마케팅 해프닝이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와 사회적 방어망의 한계가 맞물린 결과이다. 공공부문은 촘촘한 입법적 제재, 기민한 행정 심의, 강력한 플랫폼 규제, 그리고 최전선 노동자를 지키는 산업안전 제도를 유기적으로 엮어내어 자본의 폭주로부터 사회적 윤리를 지켜내는 방어막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용어 풀이]
1. 워터마크 (Watermark) : 디지털 지문과 소유권 표식
워터마크는 사진, 영상, 문서 등 디지털 콘텐츠 내부에 보이지 않게 숨겨진 고유한 식별 표식이다.
• 원리: 마치 지폐의 숨은 그림처럼 디지털 데이터의 미세한 비트값에 특정 정보를 삽입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콘텐츠처럼 보이지만, 기계(AI나 소프트웨어)가 판독하면 누가 만들었는지, 혹은 AI가 생성했는지를 즉각 확인할 수 있다.
• 목적: 콘텐츠의 출처를 투명하게 밝히고, 저작권 보호나 딥페이크와 같은 조작물에 대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사용된다.
2. 해시매칭 (Hash-matching) : 디지털 지문 대조를 통한 선제적 차단
해시매칭은 특정 디지털 콘텐츠를 고유한 수학적 값(해시값)으로 변환하여, 사전에 금지된 불법 유해물의 해시값과 대조하는 기술이다.
• 원리: 모든 디지털 파일은 각각 고유한 디지털 지문인 ‘해시값’을 가지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는 이미 삭제되었거나 유해하다고 판정된 콘텐츠의 해시값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둔다. 사용자가 파일을 업로드하는 순간,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해당 파일의 해시값을 추출하여 저장된 불법 파일들과 일치하는지(매칭)를 확인한다.
• 목적: 일치하는 데이터가 발견되면 사람이 일일이 검토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즉시 업로드를 차단하거나 삭제한다. 이는 딥페이크 유해물이 온라인에 확산하기 전 골든타임 내에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 기제이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