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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소비자가격, 어디까지 허용되나

■이병주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브랜드 전략과 가격 통제의 경계

입력2026-05-23 10:00

이병주

이병주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중견 제조사 K의 CEO는 요즘 골머리가 아프다. 자사 제품이 온라인몰과 일부 할인 채널에서 권장가의 절반 가까이 풀리면서, 정상가로 받는 대리점에서 “왜 우리만 비싸게 파느냐”는 불만이 쏟아진다. 더 큰 문제는 시장에 형성된 가격이 거꾸로 출고가의 기준선이 되어 돌아온다는 점이다. 유통 바이어는 “시장에서 이 가격에 팔리니, 우리도 그 가격에 맞춰 공급해 달라”고 요구한다. 한 번 무너진 가격은 회복되기 어렵고, 브랜드는 ‘싼 물건’의 이미지로 굳어진다. 영업본부장은 “권장가 미만으로 파는 매장에는 출고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건의한다. 다만 소매가를 지정해 강제하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는 일인지, CEO는 선뜻 결심이 서지 않는다.

같은 행위라도 법의 평가는 시대와 함께 움직인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한 세기 가까이 제조사의 최저 재판매가격 강제(Resale Price Maintenance, RPM)를 그 자체로 위법이라 단죄해 왔으나, 2007년 오랜 선례를 정면으로 폐기하며 정반대의 결론에 이른다. 10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같은 쟁점이 정반대의 답을 받기까지의 경위는, 경쟁법이 어떤 사실과 배경 아래에서 진화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Dr. Miles 사건 — 96년을 지배한 당연위법의 출발점

1911년 Dr. Miles Medical 사는 비공개 공정으로 제조한 특허 의약품을 약 400곳의 도매상과 2만 5000여 곳의 소매상에 공급하면서, 회사가 정한 최저가 아래로는 재판매할 수 없도록 하는 동일한 양식의 계약을 강요했다. 회사는 두 가지 논리를 들었다. 비밀 공정으로 만든 특허 의약품에 대한 가격 통제는 정당한 권리행사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제조업체는 자신이 만든 제품의 모든 판매가격을 통제할 권리를 보유한다는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우선 생산의 독점이 곧 후속 거래의 자유를 지배할 권한으로 확장되지는 않는다고 못 박았다. “특정 물품을 생산하지 않으면 시장에 공급될 수 없다는 점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과가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재산권을 확대하지는 않는다.” 제조사의 손을 떠난 순간 상품의 처분 권한은 유통사에게 넘어가며, 누구와 얼마에 거래할지는 유통사의 자유라는 것이다.

법원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설령 가격 유지가 제조사에게 유리하더라도, 그것이 곧 유통사의 거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은 명확하게 판시했다. “원고는 자신이 만족하는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했다면, 일반 소비자(公衆)는 후속 거래에서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이로써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는 당연위법(per se illegal)의 영역으로 분류되어, 시장 효과를 따져볼 필요도 없이 그 자체로 위법한 행위로 정리되었다. 이후 미국에서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는 96년 동안 변론의 여지가 없는 위법행위로 다루어졌다.

Leegin 사건 — 한 세기 만의 입장 변화

그로부터 100년이 조금 안 된 2007년, 같은 쟁점이 같은 법정에 다시 올랐다. 가죽 제품 제조사 Leegin은 1991년부터 ‘Brighton’ 브랜드로 벨트와 액세서리를 미국 전역 5000여 부티크에서 판매해 왔고, 1997년 권장가 아래로 할인하는 소매업체에는 공급을 거절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매장이 충분한 마진을 확보해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와 함께 무분별한 할인이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었다.

2002년 12월 텍사스의 Kay’s Kloset이 Brighton 전체 라인을 20% 할인한 사실이 드러났다. Leegin은 할인 중단을 요구했고 거절되자 공급을 끊었다. 매장은 셔먼법 위반을 들어 소를 제기했으며, 1심과 항소심은 Dr. Miles 선례에 따라 Leegin의 패소를 선고했다.

연방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5대 4로 의견이 갈렸으나 5인의 다수의견은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가 곧 경쟁제한적이라는 원칙 자체를 의심하고 나섰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는 동일 브랜드 내 소매업체들 사이의 가격경쟁을 줄이는 대신, 그렇게 확보된 마진이 매장으로 하여금 매장 운영ㆍ고객 서비스ㆍ판촉에 투자할 유인을 만들어내고, 이는 결국 서로 다른 제조사의 브랜드들 사이의 경쟁(브랜드 간 경쟁)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독점법의 주요 목적은 이러한 유형의 경쟁(브랜드 간 경쟁)을 보호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원이 직시한 핵심 문제는 무임승차(free riding)였다. 어떤 매장은 고급 전시실에 투자하고, 제품 시연을 제공하며, 숙련된 직원을 두고 교육한다. 소비자는 그 매장에서 정보를 얻고, 정작 구매는 그런 투자를 하지 않은 할인 매장에서 한다. 이 구도가 방치되면 서비스 제공 매장은 결국 서비스를 줄일 수밖에 없고, 그 손해는 소비자 전체에게 돌아간다.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는 바로 이 무임승차의 회로를 차단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이 재판매가격 유지행위의 어두운 면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었다.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가 소매업체 카르텔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 시장지배적 제조사가 신규 진입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양면성이 인정된다는 사실 자체가 당연위법 적용의 정당성을 무너뜨린다는 것이 다수의견의 핵심이었다. 법원은 “최소 재판매가격을 설정하는 수직적 합의는 그것이 형성되는 상황에 따라 친경쟁적 또는 반경쟁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합의들은 당연위법으로 간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반독점 원칙은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지혜에 따라 진화한다”며, Dr. Miles 판결을 96년 만에 폐기했다.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는 문제된 행위의 경쟁촉진적 효과와 경쟁제한적 효과를 모두 고려하여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합리의 원칙(rule of reason)의 영역으로 옮겨갔다.

고려해야 할 질문

K사 임원들이 경영현장에서 따져야 할 질문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권장가가 권유에 그치는가, 강제에 이르는가.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고 가이드라인으로 권유하는 것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그러나 권장가 미만으로 판매한 매장에 출고를 끊거나, 거래 조건에 불이익을 주거나, 사실상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속력을 행사하는 순간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로 문제될 수 있다. 강제의 형식은 명시적 계약 조항일 수도 있고, 반복된 경고와 거래 단절의 패턴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유통사의 자유로운 가격결정권을 사실상 봉쇄한다면 같은 평가를 받는다.

둘째, 가격 통제가 브랜드 전략의 일부로 작동하는가, 단순한 가격 방어에 그치는가. Leegin 판결이 인정한 정당화의 핵심은 매장의 서비스 투자를 지키고 무임승차를 차단한다는 점이었다. 고가 브랜드 전략은 가격선 유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매장 분위기, 진열 기준, 직원의 전문성, 사후 관리 같은 비가격 경쟁 요소가 일관된 체계로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맥락이 부재한 채 권장가만 강제한다면, 그것은 브랜드 전략이 아니라 단순한 가격 고정에 가깝기 때문에 문제된다.

셋째, 가격 고정 정책의 발단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제조사가 브랜드 포지셔닝과 유통망 설계를 위해 자발적으로 도입한 정책인지, 유력 소매상의 요구에 떠밀려 형성된 정책인지가 다른 평가를 낳는다. Leegin 판결도 이러한 정책이 소매업체 카르텔의 도구로 악용될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가격 정책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가 위법성 평가의 갈림길이 되는 셈이다.

100년에 걸친 판례의 진화가 알려주는 것은, 가격 통제는 더 이상 그 자체로 위법은 아니나 그 정당성을 사업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격 통제가 브랜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가격경쟁을 제한하는 수단인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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