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 위기와 다섯 가지 선택지
김찬석 청주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입력2026-05-25 09:22
김찬석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개인이나 조직을 막론하고 예상치 못한 오류나 과오로 인해 평판 위기에 직면하는 순간이 있다. 대중 앞에서의 말실수, 프로젝트의 결함, 이해관계의 극한 대립 또는 조직 리더의 부끄러운 일에 대한 폭로 등은 모두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평판을 위협하는 요인들이다.
우리 한국인은 체면을 중시한다. 내면의 가치가 외부로 투영된 평판이 이미지라면, 체면은 그 이미지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공인받은 도덕적 자존심이자 신뢰의 합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체면이 훼손된다는 것은 곧 개인이 쌓아온 사회적 자산의 훼손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평판 위기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무조건 고개를 숙일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할 것인가.
평판의 기로에 서서 막연하게 속앓이를 하거나 당황하는 경우에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활용되는 다섯 가지 메시지 전략을 실용적인 참조 팁으로 삼아볼 만하다.
첫 번째 선택지는 부인이다. 이 전략은 행위 자체를 전면 부인하거나 제삼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다. 확실한 사실과 객관적 증거가 뒷받침될 때만 이 전략은 유효하며, 명백한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거짓 부인을 선택한다면 향후 회복 불가능한 이미지 훼손을 입게 된다.
두 번째는 책임 회피다. 이 전략은 행위는 인정하되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었음을 호소하는 방식이다. 외부의 도발이나 정보 부족, 혹은 불가항력적인 사고였음을 강조해 비난의 무게를 덜어내려는 시도이지만 자칫 구차한 변명으로 비칠 위험이 있다.
세 번째는 충격 완화다. 이 전략은 발생한 사건을 되돌릴 수 없을 때 대중이 느끼는 부정적 인식을 줄이려는 방식이다. 과거의 업적을 강조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고, 더 나쁜 행위와 비교해 심각성을 낮추는 등 대중의 감정을 달래려는 메시지 전략이 이 범주에 속한다.
네 번째는 개선 행위다. 이 전략은 문제를 바로잡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는 방식이다. 시스템 개혁이나 책임자 문책 등 실질적인 행동을 전면에 내세워 무너진 신뢰를 메우는 방법이다.
마지막 선택지는 사죄다. 이 전략은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방식이다. 과오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이 고백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권에서 강력한 반전 효과를 발휘하지만, 리더들이 자존심과 권위 때문에 실행하기 가장 어려워하는 선택지이기도 하다.
실제 위기 관리 현장을 돌아보면, 윌리엄 베노이트(William Benoit) 교수가 제안한 이 다섯 가지 수사 전략 중 무엇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평판 위기에 처한 주체의 운명이 갈림을 알 수 있다.
명백한 과오 앞에서 부인 메시지를 선택해 체면을 구긴 대표적인 사례가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 사태다. 메사추세츠공대(MIT) 수재로 불린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는 고객 자금 유용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FTX는 안전하다”는 취지로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거짓말이 들통나며 그는 2025년 법원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는 평판의 종말을 맞았다.
반면 사죄와 신속한 개선 행위 메시지 전략으로 무너진 평판을 바로 세운 사례가 있다. 인공지능 선두 기업 오픈 AI는 2023년 이사회가 CEO 샘 올트먼(Sam Altman)을 기습 해임하면서 신뢰 위기에 직면했다. 투자자와 직원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경영진은 판단 착오를 인정하는 사죄의 태도를 취했다. 해임한지 닷새 만에 샘 올트먼을 CEO에 복귀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사회를 전면 개편하는 개선행위를 단행하며 조직의 평판을 회복했다.
또 다른 사례로 2024년 알래스카항공 보잉 737 맥스9 기종이 운항 중에 동체 문짝이 뜯겨 나가는 아찔한 사고에 대한 대응을 들 수 있다. 항공기 제조사 보잉(Boeing)은 초기 공정 결함을 인정하며 사죄함과 동시에 전 기종 운항 중단과 전수 조사라는 고강도 개선행위를 발표했다. 보잉사는 기술 신뢰도에는 훼손이 있었으나, 숨기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최악의 파국은 면할 수 있었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위기에 처한 조직이나 개인의 철학과 태도에 있다. 많은 이들이 평판 위기가 찾아왔을 때 당황한 나머지 막연하게 속앓이만 하거나 당장의 부끄러움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 부인이나 책임 회피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위기를 막을 수는 없지만 대응 메시지는 선택할 수 있다. 평판 위기가 찾아올 때 다섯 가지 선택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최선의 메시지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 깎여나간 체면은 위선으로 기워 붙일 수 없다. 대중은 완벽하게 무결한 리더가 아니라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정직한 리더에게 다시 신뢰를 보낸다. 책임지는 자세와 변화된 행동만이 무너진 평판을 더 단단하고 빛나는 모습으로 되살려내는 법이다. 이것이 위기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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