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논란에 비친 양극화의 그림자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근로자 보상 개별 요구땐 임금격차 커져
반도체 외 산업·지역 경제효과 기대 못해
이익-성장 선순환 이끌도록 지혜 모아야
입력2026-05-26 05:00
수정2026-05-26 05:00
지면 34면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삼성전자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노동조합원의 투표 결과 가결이 유력하지만 주주들의 반발과 협력업체 성과 배분 등 새로운 이슈들이 연달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관심은 점차 사그라지겠지만 이번 협상이 경제 양극화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는 쉽사리 거둘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성과급 논란은 근로자들의 임금격차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노사 잠정 합의안은 경영진이 고수하던 ‘성과에 따른 보상’ 원칙에서 한발 물러나 대규모 초과이익을 거둔 메모리 사업 부문뿐 아니라 현재 적자를 보고 있는 비메모리 사업 부문에도 억대 성과급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조합원 간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 영업이익이 낮은 사업 부문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강조한 노조의 승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영업이익이 높은 사업 부문 근로자는 노조가 그들의 성과에 걸맞은 보상을 충분히 쟁취하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높고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근로자일수록 노조를 탈퇴해 경영진과 개별 협상에 나설 유인이 커지고 경영진도 이런 핵심 인재들에게 차별적인 보상안을 제시할 공산이 크다. 이 결과 노조는 더욱 보호가 필요한 근로자들 위주로 위축되고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조의 협상력은 점차 약화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연구는 미국에서 1978년부터 2007년까지 숙련도에 따른 임금격차 확대가 같은 기간 노조 조직률 하락의 약 40%를 설명한다고 추정했다. 결국 노조의 단기적 승리는 장기적으로 동일 기업과 동일 직종 내 임금격차가 확대되는 역설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번 임금협상 결과는 산업 간 성장률이 양극화되는 K자형 성장에 대한 우려와도 맞닿아 있다. 실증적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예상치 못하게 소득이 증가할 때 소비를 늘리는 정도가 낮다. 삼성전자 근로자들은 대체로 고소득층에 속하므로 성과급으로 소득이 증가할 때 소비를 늘리는 정도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마저도 삼성전자 사업장이 주로 위치한 수도권에 쏠릴 수밖에 없다. 즉 삼성전자의 대규모 성과급 지급으로 반도체 초과이익이 반도체 이외 산업이나 지역 경제로 확산하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실 반도체 호황의 성장 파급효과는 초과이익의 상당 부분이 얼마나 투자로 배분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의 주요 빅테크 기업이 낮은 배당률을 유지하면서도 막대한 기술 투자를 이어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술 패권 경쟁에서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기 때문이다. 주주들도 당장의 배당보다 미래 성장에 따른 주식 가치 상승을 기대한다. 삼성전자 역시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초과이익을 투자로 얼마나 배분하는지는 미래 성장 기반의 문제다. 더욱이 반도체 투자는 한 기업의 설비 확장에 그치지 않고 소재·부품·장비 기업, 전력·물류 인프라, 협력업체 등 공급망 생태계 전반으로 이어지는 수요를 창출한다. 초과이익이 미래 기술 투자와 관련 생태계 대신 이미 소득이 높은 집단 안에서만 순환한다면 기술 경쟁력은 흔들리고 산업 간 양극화는 고착화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우려를 해소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의 내부 임금협상에 개입하는 건 정부의 몫이 아니다. 정부는 성과급 갈등이 노동시장 양극화로 번지지 않도록 근로자의 직무 전환 및 기술 적응 교육 지원, 사회 안전망 강화 등에 힘써야 한다. 또 정부는 반도체 호황이 미래 기술 투자뿐 아니라 공급망 생태계 고도화, 관련 인재 양성 등으로 이어지는 정책 유인을 설계해 K자형 성장의 간극을 메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의 핵심은 누가 받을 자격이 있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은 첨단산업의 성과가 근로자 간 임금 양극화와 산업 간 성장 양극화에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다. 양극화가 심화하면 성장의 과실을 체감하는 산업과 집단이 줄어들어 경제 전체의 활력과 성장의 기반이 약화할 수 있다. 이제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첨단산업의 이익이 더 많은 기회와 성장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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