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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교실

서순탁 경실련 공동대표(전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입력2026-05-26 14:49

서순탁

서순탁

경실련 공동대표

AI 시대의 교실을 묘사한 AI 이미지.
AI 시대의 교실을 묘사한 AI 이미지.

교육은 수 세기 동안 놀라울 만큼 변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정해진 시각에 교실에 모여 교사의 강의를 듣고, 숙제로 그 내용을 복기하며, 시험으로 이해도를 확인한 뒤 다음 단원으로 넘어간다. 이 익숙한 풍경은 산업화 시대의 공장 모델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문제는 우리 모두 이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관성은 강하다. 학교는 물론이고 사교육 시장의 학원까지, 한국 교육의 풍경은 여전히 일 방향 강의가 주를 이룬다.

필자는 대학에서 강단에 서면서, 동시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두 자리에서 마주하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듣기는 하되 묻지 않고, 외우기는 하되 사유하지 않는다. 그 책임을 학생에게 돌릴 수는 없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교실의 구조 자체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제의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 오래된 구조에 결정적인 균열을 내고 있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과제’다. 학생들이 AI에게 답을 묻는 순간, 과제를 통해 얻으려던 학습 효과는 급격히 떨어진다. 사실 이런 현상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1990년대 이후, 검색을 통한 ‘복사·붙여넣기 부정행위’는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AI는 없던 문제를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진행 중이던 흐름을 한층 가속화했을 뿐이다.

다만 AI 이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부정행위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대학은 133년간 이어오던 무감독 시험 전통을 폐기하고, 올해 시험감독관 제도를 부활시켰다. 국내 명문대에서도 ‘AI 컨닝’은 공공연한 화두가 되었다. 더 큰 문제는, AI로 생성된 글인지 사람이 쓴 글인지 구별할 기술적 수단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탐지기는 늘 한발 늦고, 모델은 매달 더 정교해진다.

이제 학교와 교사는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섰다. “AI 사용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이 질문을 미루는 학교일수록, 더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1970년대 계산기, 2020년대 AI

흥미롭게도 우리는 비슷한 장면을 이미 한 번 경험했다. 1970년대 초반, 휴대용 계산기가 교실에 처음 등장했을 때 교육계의 첫 반응은 거부에 가까웠다. 기초 연산 능력의 퇴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분위기는 반전됐다. 1980년 전미수학교사협회(NCTM)는 “모든 학년에서 계산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공식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된 논쟁이 채 10년도 안 되어 공식 입장이 뒤집힌 것이다.

계산기가 등장했다고 수학 공부의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았듯, AI가 등장했다고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 훈련의 필요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AI가 평균적인 답을 손쉽게 내놓는 시대일수록, 그 답을 의심하고 검증하며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힘은 더없이 귀해진다.

블룸의 ‘2 시그마’ 난제와 AI라는 해답

여기서 40년 전에 발표된 한 편의 논문을 다시 꺼내 볼 필요가 있다. 1984년 교육심리학자 벤저민 블룸(Benjamin Bloom)이 발표한 〈The 2 Sigma Problem〉이다. 그는 일대일 개인교습을 받은 학생이 일반 교실 학생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성취를 보인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평범한 학생도 개인교습만 받으면 상위 2% 수준으로 뛰어오른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블룸의 발견은 교육학계에 깊은 숙제를 남겼다. “어떻게 하면 집단 교육에서도 일대일 교습의 효과를 낼 수 있는가.” 수많은 연구가 시도되었으나, 답은 늘 같았다. 유능하고,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하며, 비용까지 저렴한 개인교사—그런 존재를 현실 속에서 길러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2 시그마 문제’는 40년 가까이 풀리지 않은 난제로 남았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 자리에 AI가 도착했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학습 이력을 기억하고, 약점을 진단하며, 인내심을 잃는 법 없이 같은 설명을 거듭해 주는 AI 교사가 등장한 것이다. 칸 아카데미가 개발한 교육용 AI ‘칸미고(Khanmigo)’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앞선 사례다.

그래도 학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AI 성능이 아무리 좋아져도, 학교 자체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교의 오랜 역사가 보여주듯, 교실은 ‘지식 전달’ 이상의 공간이다. 친구와 함께 문제를 풀며 협력의 기술을 익히고, 다툼과 화해를 거치며 사회성을 기르고, 교사의 시선과 격려를 통해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곳이다. 우수한 AI 교사가 곁에 있다 하더라도, 교실은 그 위에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더한다.

다만 분명한 변화는 있다. AI는 교사의 강의 준비를 한층 체계적으로 돕고, 일방향 강의를 학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으로 바꿔 놓는다. 교사가 단순 지식 전달에 쓰던 시간을 줄여, 학생과의 의미 있는 상호작용에—토론과 피드백, 그리고 정서적 교류에—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위태로워지는 것은 ‘학교’가 아니라, 획일화된 강의식 수업 그 자체다.

학생들이 던질 질문, 학교가 답해야 할 질문

머지않아 학생들은 자신이 하는 거의 모든 일에 AI를 곁에 두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교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 과제를 굳이 제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I가 답을 알려주는 시대에, 배움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AI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제 삶에 도움이 됩니까?”

이 질문들에 학교가 답하지 못한다면, 학생은 교실 밖에서 답을 찾을 것이다. 다행히 답의 실마리는 멀리 있지 않다. 가르치는 일의 본질은 정답을 일러주는 데 있지 않고,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있다. AI는 정답을 빠르게 내놓지만, 질문을 던지지는 못한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 그것이 앞으로 교실이 길러야 할 핵심 역량이다.

인식의 전환이 먼저다

결국 먼저 살펴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식인지도 모른다. 강의식 수업이 효율적이고 불가피하다는 오랜 믿음은 이제 한 번쯤 되돌아볼 때가 되었고, AI 또한 막아야 할 위협이라기보다 차근차근 길들여 가야 할 도구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그 도구를 슬기롭게 쓰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인간 고유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더욱 길러야 한다. 우리가 다시 마주해야 할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지금, 교육 방식이 근본부터 재편되는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AI는 교사와 학생의 역량을 함께 끌어올리고, 학습 경험을 재구성하며, 그동안 누구도 풀지 못했던 2 시그마 문제에 처음으로 현실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다만 준비할 일이다. 교실의 풍경을 바꾸는 일은 결국 학생을 위한 일이고, 학생을 위한 일은 곧 우리 사회의 내일이다.

계산기를 받아들였던 그 교실이, 이제 AI 앞에 다시 서 있다.

<용어 해설>

-2 시그마 문제(The 2 Sigma Problem)

1984년 미국 교육심리학자 벤저민 블룸(Benjamin Bloom)이 제기한 교육학 개념으로, 일대일 개인교습을 받은 학생의 평균 성적이 일반 교실 학생의 평균보다 표준편차의 두 배(2σ)만큼 높게 나타난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단체 수업에서 중간 수준(50등/100명)이던 평범한 학생이 개인교습을 받자 상위 2%(2등/100명) 수준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블룸은 이 결과에 환호하기보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개인교습이 그토록 효과적이라면 왜 모두에게 제공하지 못하는가—답은 비용과 인력의 한계였다.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을 알면서도 모두에게 줄 수 없는 딜레마”, 그래서 그는 이를 ‘문제(Problem)’라 명명했다.

-칸미고(Khanmigo)

세계 최대 무료 온라인 교육 플랫폼 칸 아카데미(Khan Academy)가 2023년 오픈AI와 협력해 선보인 교육용 AI 개인교사다. 이름은 ‘칸(Khan)’과 스페인어로 친구를 뜻하는 ‘아미고(amigo)’를 합친 것으로, ‘학생 곁의 다정한 길잡이’라는 뜻을 담았다. 가장 큰 특징은 학생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도 답을 곧장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어디까지 풀어 봤니?”, “이 단계에서 무엇이 막혔니?” 하고 되물으며 학생이 스스로 답에 이르도록 이끈다. 수학 문제 풀이 보조에 그치지 않고, 글쓰기 피드백, 역사 인물과의 가상 대화(예: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론하기), 교사의 수업 준비·평가 보조까지 폭넓게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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