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시청권과 미디어 시장의 변화
이수지 법무법인 창경 구성원변호사
입력2026-05-26 14:49
이수지
법무법인 창경 구성원 변호사
올해 초, 사상 최초로 지상파방송에서 동계올림픽을 중계하지 않고 JTBC에서 동계올림픽을 단독 중계하면서 많은 혼란이 있었다. 도대체 어느 채널에서 올림픽 경기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있었고, 한 개의 채널에서만 중계가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종목을 시청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유료방송 미가입 가구나 도서·산간 등 일부 난시청 지역 주민들이 세계인의 이벤트에서 소외되면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수년간 땀 흘려 경쟁하는 순간을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리지 못했다는 씁쓸한 경험이 남았다.
특히 JTBC가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올림픽과 월드컵의 국내 독점 중계방송권을 선점하면서, 올해 6월 개최될 북중미 월드컵도 제대로 시청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번졌다. 이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이벤트에 대한 ‘보편적 시청권’ 논의가 본격화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공영방송인 KBS가 JTBC로부터 북중미 월드컵 중계방송권을 구매해 공동 중계하기로 하면서 당장의 불편함은 해소되었으나, 2026년 5월 7일 국민관심행사에 대한 보편적 시청권을 강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법제화 논쟁이 진행 중이다.
보편적 시청권에 관한 논의는 미디어 시장의 변화 및 스포츠 시장의 확장과 역사를 함께 한다. KBS, MBC, SBS 지상파방송 3사는 1990년대부터 ‘코리아 풀(Korea Pool)’의 형태로 주요 스포츠 경기대회의 중계방송권을 공동으로 구매해 왔다. 그러던 중 2005년경 마케팅 대행사인 IB스포츠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축구경기의 중계방송권을 독점하게 되면서, 국민적 관심이 큰 경기를 더 이상 지상파방송사를 통해 무료로 시청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중계방송권 확보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에 2007년 국민적 관심이 높은 주요 행사에 대하여 누구나 시청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방송법에 ‘보편적 시청권’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구체적으로, 국민관심행사인 올림픽과 월드컵에 대해 전체 가구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는 방송 수단 확보를 의무화하고, 중계방송권의 판매·구매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지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제가 함께 도입되었다.
그러나 2011년경 JTBC, TV조선 등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하고, 가구당 케이블 TV나 IPTV 등 유료방송 가입률이 97%를 넘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상파방송이 아닌 종편 채널로만 중계하더라도 국민 전체 가구 수의 90% 이상이 시청 가능한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과거 무료 보편 서비스를 지키기 위해 고안되었던 ‘90%’라는 숫자가, 시간이 흐르며 미디어 환경이 격변하자 의미 없는 조항으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에 모바일 중심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이 미디어 소비의 중심축으로 급부상하며 중계방송권 확보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반면, 지상파방송사는 극심한 경영난으로 중계방송권 경쟁에서 밀려나는 등 미디어 시장의 패러다임이 통째로 바뀌었다. JTBC의 독점 중계방송권 확보는 바로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 보편적 시청권 제도의 허점과 한계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이번에 과방위를 통과한 방송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고시한 ‘국민관심행사’의 경우, 중계방송권자가 가시청 가구 비율 요건과 상관없이 하나 이상의 전국 단위 지상파방송사인 KBS 또는 MBC를 통한 실시간 중계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종편 채널이 중계방송권을 확보하고 있더라도, 법적으로 최소 한 곳 이상의 무료 지상파방송사에 중계방송권을 재판매(서브 라이선스)하여 송출 통로를 열어두라는 의미이다. 만약 협상 실패 등의 이유로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지상파방송의 중계를 거부·방해할 경우 금지행위 위반으로 시정명령 및 과징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만의 독단적 규제가 아니다. 영국은 방송법 등을 통해 95%의 가시청 가구 수를 만족시키는 무료 지상파방송을 통해 국민이 무료로 시청할 수 있어야 하는 ‘A그룹’ 경기와, 그 외 방송사도 중계방송권을 획득할 수 있으나 하이라이트 및 재방송 등을 지상파방송에 제공하여야 하는 ‘B그룹’ 경기로 구분하여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2024년 미디어법(Media Act 2024) 개정으로 OTT 등 디지털 플랫폼과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도 보편적 시청권 규제 대상에 포함하여, 유료 독점 중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도 유료 방송사가 중계방송권을 확보하더라도 전체 가구의 상당수가 무료로 볼 수 있는 지상파방송에서 방송되지 않는 한 독점 중계를 금지하는 등의 규제를 두고 있다.
이번 방송법 개정안은 본회의 표결 등의 절차를 앞두고, 우리 사회에 다음과 같은 숙제를 던지고 있다.
첫째, 현실적인 중계방송권 재판매 가이드라인의 부재이다. 최근 극심한 광고시장 침체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지상파방송사의 재정 여건상, 합리적인 가격 산정 기준이 없다면 향후 라이선스 협상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이 불가피하다. 지상파방송사의 과중한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원구매자의 정당한 투자 비용을 보전할 수 있는 정교하고 투명한 산정 기준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의 시야 확장이 필요하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OTT 등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미디어 시청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음에도, 여전히 국내의 보편적 시청권 논의가 전통적인 지상파방송사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앞서 언급한 영국의 최신 입법 동향처럼, 서비스 채널을 중계방송권과 디지털 중계권으로 세분화하고 국내외 OTT 플랫폼까지 포괄하는 제도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셋째, 소급입법과 재산권 침해에 대한 위헌성 논란이다. 방송법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 시행될 예정이지만, JTBC는 이미 수년 전 막대한 재원을 투자해 2032년까지의 올림픽·월드컵 중계방송권 계약을 완료했다. 계약 체결 이후에 개정된 법을 근거로 사후적인 재판매 협상을 강제하고 이를 어길 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미디어 시장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와 함께 보편적 시청권의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몇 년 전 특정 사업자가 단독으로 중계방송권을 확보하면서 입법 공백의 신호가 있었음에도, 제도의 정비가 늦어지면서 국민들이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큰 혼란과 불편을 겪어야 했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이번 방송법 개정이 단순히 방송사 간의 이해관계 조율을 넘어,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모든 국민의 문화적 기본권을 세심히 보장하는 진정한 제도 진화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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