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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은 표범의 무늬를 바꿀 수 있는가

서일범 경제부장

국민배당·고환율 성공론 꺼낸 김실장

바탕엔 반도체 초과세수 낙관론 자리

사이클 예측 어렵고 美 압박 가능성도

초호황 급정거 대비 체질 개선 나서야

입력2026-05-26 18:42

수정2026-05-27 10:06

지면 30면

요즘 경제관료 중 스타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단연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실장들(비서실장·정책실장·안보실장)은 “입이 없다”라는 게 기존의 상식이었지만 유독 김 실장만큼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도발적 주제들을 직접 던지고 있다. 반도체 초과세수를 활용한 ‘국민배당금’ ‘저(低)신용자에게 저금리 적용’ 등이 그가 제시한 어젠다들이다. 최근에는 “고(高)환율은 성공의 비용”이라는 요지의 글까지 올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이 높다는 것은 원화가치가 낮다는 것이고, 환율이 상승하면 취약계층의 고통이 커지는데 이를 정면으로 뒤집은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는 환율 상승을 두고 “한국 경제의 성공이 만들어 낸 역설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김 실장의 고민에도 이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무리 경제가 성장을 해도 불평등이 완화되지 않는 지금의 구조적 상황에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 경제가 커지면 어느 시점에서 불평등도 적절하게 해소된다고 믿었던 ‘쿠즈네츠 가설’은 이미 힘을 잃은 지 오래다.

김 실장이 쏟아내는 신(新) 경제 이론에는 한 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지금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상당히 오랜 기간, 그것도 한국의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는 “한국이 ‘기술독점경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고 그 변화가 국가의 성격까지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여기서 발생한 초과세수로 국민들에게 돈을 나눠주면(배당금) 불평등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적어도 내년까지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이어진다는 데 이견을 찾기 어렵다. 시장에서 나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치가 맞아떨어진다는 전제하에 어림짐작해 보면 양 사는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반기마다 합산 50조 원씩 법인세를 납부할 것으로 보인다.

불행하게도 이런 초호황이 내후년 이후에도 이어진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언제 제2의 ‘터보퀀트(구글이 공개한 메모리 사용량 절감 기술)’가 나타날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투자를 줄이기 시작할지 예측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메모리 산업이 경기 순환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기술독점 산업으로 진화했는지 여부도 아직은 불분명하다. 실제 한국의 메모리 산업을 두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표범은 자신의 무늬를 바꾸지 않는다’는 격언이 회자되고 있다. 아무리 반도체 기술이 고도화해도 사이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고유의 특질이 완전히 달라지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미국이라는 초(超)변수를 자극하는 것도 문제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 전 세계 1위인 일본 메모리 산업을 관세와 환율로 단번에 와해시킨 성공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다. 반도체의 중요성이 더 커진 현시점에 미국이 그때와 같은 ‘자살골’을 넣을 가능성은 낮겠지만 언제 삼성이나 SK에 미국 반도체 투자를 더 늘리라고 요구해올지 알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지도자의 눈에 “독점(monopoly) 단계의 반도체 기술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국민들에게 배당금(dividend)을 주겠다”는 최고 경제책임자의 글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런 측면에서 지금은 ‘넘쳐나는 반도체 초과세수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아니라 ‘반도체 초과세수가 끊어지면 어떻게 할까’를 숙고해야 하는 시점이다. 애초에 반도체 초호황이 이재명 정부의 실력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는 점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초호황 열차가 급정거할 때의 충격에 대비하고 사전 구조조정에 착수하고 제2의 미래 산업에 미리 투자하는 게 지금 정부의 사명이 돼야 한다.

최근 저녁 자리에서 만난 한 국무회의 멤버는 김 실장의 글을 두고 “어젠다 세팅은 학자의 일이고 지금 경제관료의 할 일은 체질 개선 프로그램을 내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달라진 표범 무늬를 벗기려 드는 가죽 장수가 될 것인가, 생존 환경 변화에 맞춰 무늬가 더 달라질 수 있도록 돕는 조련사가 될 것인가. 역사적 선택의 길이 김 실장의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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