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반드시 낚아채라 : 헨리 제닝스 & 빌 게이츠
허두영 한국과학언론인회 회장
입력2026-05-29 11:16
허두영
과학저널리스트
1715년 7월 약탈한 보물을 싣고 돌아가던 스페인의 ‘보물함대’(Treasure Fleet)가 허리케인을 만나 미국 플로리다 앞바다에서 한 척만 남고 10척이 침몰했다. 현재 가치로 20조원이 넘는 엄청난 보물을 찾기 위해 스페인 해군이 인양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헨리 제닝스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제닝스는 60명 남짓한 스페인 해군이 지키는 인양 기지를 급습해서 바로 항복을 받고 300억원 상당의 전리품을 싣고 돌아왔다.
당시 사략선(私掠船)을 운영한 만큼, 제닝스는 정보에 무척 밝았다. ‘보물함대’ 침몰 소식을 자메이카 총독에게 들었거나, 스페인 함대 연락선을 털어 먼저 안 것으로 보인다. 제닝스는 해적을 동원하는데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단박에 해적선 3척과 200명 남짓한 해적을 끌어 모은 것이다. 전리품을 나누는데도 공정했다. 처음 시도하는 연합작전인데도, 가담한 해적 사이에 전리품을 분배하는데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제닝스가 주도한 작전에 벤자민 호르니골드, 에드워드 티치, 찰스 베인 같은 거물급 해적이 참여하면서, 카리브해의 해적들이 세력을 규합해서 대담한 해적질을 벌이기 시작했다. 연합작전을 벌이는 ‘플라잉 갱’(Flying Gang)이다. 해적들이 자꾸 모여들면서 제닝스는 호르니골드와 함께 바하마의 나소(Nassau)에 ‘해적공화국’(Republic of Pirates)을 건설하고, 호르니골드, 사무엘 벨라미에 이어 공화국을 지휘했다.
자메이카 총독과 뒷거래로 정보를 얻고 편의도 누리면서, 제닝스는 사략질보다 해적질에 재미를 붙여 세력을 점점 키웠다. 정보에 밝고 뒷배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1718년 영국 왕 조지 1세가 해적에게 사면령을 내리자, 제닝스는 영리하게 해적생활을 청산하고 재산을 인정받았다. 자메이카에서 상당히 먼 버뮤다(Bermuda) 섬에 자리를 잡고, 부유한 농장 지주로 안락한 여생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헨리 제닝스의 영리한 해적질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빌 게이츠의 눈치 빠른 경영과 닮았다. 게이츠는 1980년 IBM이 PC 사업에 뛰어들면서 운영체계(OS)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86-DOS’의 판권을 구해 IBM에 납품했다. 다른 누군가 고생스레 확보한 보물을 눈치 빠르게 휙 낚아챈 것이다. 게다가 게이츠는 MS-DOS(Microsoft Disk Operating System)를 통째로 넘기지 않고, 사용료 방식으로 계약하면서 단박에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떠올랐다.
빌 게이츠 곁에도 ‘거물 해적’들이 득시글거렸다. 폴 앨런과 스티브 발머 같은 ‘마이크로소프트’ 동업자는 물론, ‘애플’(Apple)의 스티브 잡스, ‘오라클’(Oracle)의 래리 엘리슨, ‘델테크놀러지’(Dell Technologies)의 마이클 델 같은 경쟁자들이 실리콘밸리의 주도권을 놓고 긴밀하게 협력하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바야흐로 떠오르는 ‘디지털 골드러시’(Digital Gold Rush) 시대의 ‘디지털 해적들’(Digital Pirates)이다.
무엇을 사면받고 싶었을까? 한창 때 악착같이 돈을 벌어 ‘실리콘밸리의 악마’(Demon of Silicon Valley)라는 별명까지 붙고, 성공하고 나서 이런저런 불륜과 추문으로 나중에 세계적으로 체면을 구겼던 그다. 게이츠는 2008년 은퇴를 선언하고 자선사업에 집중했다. 마치 기부하기 위해 악마 같이 돈을 벌었을까 싶을 정도로 자선사업에 온 힘을 쏟았다. 그가 기부한 규모는 2025년 기준으로 자그마치 1000억 달러, 거의 140조원을 넘는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헨리 제닝스는 ‘보물함대’를 터는 연합작전으로 카리브해를 호령하는 해적 두목이 됐고, 빌 게이츠는 아무 기술도 없이 ‘MS-DOS’를 팔아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강자가 됐다. 게이츠가 말했다(말한 걸로 알려져 있다). “햄버거를 굽는다고 체면 깎일 일 없다. 할아버지 세대는 그걸 ‘기회’로 여겼다”(Flipping burgers is not beneath your dignity. Your Grandparents had a different word for burger flipping, they called it opport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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