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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 눈 가리는 채용 시장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입력2026-06-01 18:09

수정2026-06-01 23:41

지면 30면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티켓값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극장에 들어가는 관객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재 채용 시장 구직자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구직자는 자신의 학벌과 경력·자기소개서까지 이력서에 기재해야 하지만 기업은 ‘협의 후 결정’이나 ‘내규에 따름’ 같은 모호한 문구를 내세우며 근로 조건의 핵심인 연봉을 숨긴다. 이처럼 철저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대한민국 채용 시장의 현주소다. 채용 플랫폼에 접속해 보면 연봉을 공개하는 기업이 10%도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정보 비대칭의 피해는 일방적으로 구직자만 본다. 임금 정보가 없기에 보통의 구직자들은 직무가 맞기만 하면 기업의 세평, 인터넷에서 찾은 재직·퇴사자의 후기만 인지한 채로 채용 서류를 제출한다. 이후 각종 검사와 시험·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한 후에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며 연봉을 확인할 수 있다. 낮은 연봉을 확인하고 입사를 포기하거나 입사 직후 퇴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류 준비부터 면접 참여까지 구직자가 투자한 시간·경제적 비용은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손실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기회비용 낭비다. 면접을 볼 때나 서류를 제출할 때 인사 담당자에게 연봉을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인사 담당자 또한 채용 공고에 적힌 ‘협의 후 결정’ 등을 말하며 즉답을 피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입사 전 구직자가 급여에 관해 언급하는 것이 터부시되는 문화까지 있다.

안타깝게도 현행법으로는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을 수 없다. 현행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거짓 채용 광고 금지 및 개인정보 요구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으나 정작 구직자에게 가장 필요한 임금 사전 고지 의무는 빠져 있다. 채용을 가장해 사업장을 홍보하거나 아이디어를 빼내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지만 임금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구직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를 제재할 법적 근거는 전무하다. 채용된 후 근로 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을 막는 조항만으로는 채용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는 정보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제도적 대안으로 현행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4조에 구체적인 임금 범위를 명시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제안한다. 구인자가 채용 공고를 낼 때 해당 직무 수행 시 지급 가능한 연봉의 상한액과 하한액 등 구체적 임금의 범위를 의무적으로 기재하게 하는 것이다.

연봉 공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기업의 임금 공개가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경영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연봉 공개는 이미 공공 부문에서 검증됐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11조 및 제12조의 통합공시 기준에 따라 국내 주요 공공 기관들은 잡알리오 시스템을 통해 신입 사원 초임과 평균 연봉은 물론 인건비 예산 집행 내역까지 대중에게 자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따라서 민간기업 입장에서도 기존에 설정한 내부 연봉 가이드라인을 단순히 외부로 공표하면 되는 것이므로 부담스러운 규제가 아니다.

법이 개정되면 구직자는 자신의 조건과 동떨어진 채용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일부 채용 플랫폼에서는 기업이 납부한 국민연금을 추산해 예상 연봉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정확하지 않다. 구직자들은 더 이상 부정확한 예상액을 보고 막연한 재정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구직자의 당연한 알 권리를 보장해 사회 전반의 낭비를 줄여야 한다. 그릇된 깜깜이 채용 공고의 관행을 끊어내는 것, 투명한 정보공개야말로 구직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정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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