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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3500·1500’…숫자 세개로 본 李정부 1주년

[숫자로 본 경제 성과와 과제]

코스피 2770서 1년새 8700 돌파

3500억弗 패키지로 대미협상 타결

환율은 1500원대 ‘뉴노멀’ 진입

이념보다 국익 중심 실용외교 가속

입력2026-06-02 07:00

진영보다 성장, 이념보다 국익, 부동산보다 증시, 서울보다 지방.”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처럼 ‘대전환’이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보다 성장과 실용을 앞세우고, 외교에서는 이념보다 국익을 기준으로 미국·중국·일본과의 관계를 재설정했다. 경제에서는 부동산 중심 자산시장을 증시 중심으로 바꾸는 데 주력했고, 국가 운영에서는 서울 중심에서 지방 중심으로 무게추를 옮기려 했다.

특히 코스피 8000,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원·달러 환율 1500원대. 이들 숫자는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들이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일인 지난해 6월 4일 2770.84였던 코스피는 1년 만인 1일 8788.38로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부동산 공화국’으로 불리던 한국 자산시장의 무게중심이 증시로 옮겨가는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했다는 의미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도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율 관세 압박 속에서 대규모 투자 카드를 제시하며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반면 코스피 급등에 따른 외국인투자가들의 차익 실현 매도와 중동 정세 불안 등이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를 넘나드는 고환율 국면에 직면했다.

코스피 8000 시대는 단순한 증시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난 1년간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의 방향은 ‘진영보다 성장, 이념보다 국익, 부동산보다 증시’로 요약된다. 정부는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대를 확보하고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반도체·AI·바이오·방산 등 첨단산업 육성에 국가 역량을 집중했다. 연구개발(R&D) 예산도 35조 5000억 원으로 확대해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했다.

신정섭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정치뿐 아니라 경제·사회 전반에 퍼졌던 불안과 불확실성을 빠르게 안정시키며 성장의 토대를 마련한 1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 3월 필리핀을 국빈 방문해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캡처
이재명 대통령이 올 3월 필리핀을 국빈 방문해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캡처

문제는 성장의 성과가 모든 계층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데이터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상·하위 20% 가구 간 흑자액 격차는 388만 4000원으로 2022년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1500원대가 뉴노멀이 된 고환율 역시 물가 상승 압력을 통해 취약 계층의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리며 자산시장 호황과 체감경기 사이의 괴리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반도체·방산 등 성장 앞세웠지만

소득 상·하위 계층간 격차는 확대

“노동·연금 등 구조개혁 골든타임”

청년 일자리 문제는 더욱 심각한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와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지만 AI와 자동화 확산으로 성장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청년 일자리 문제”라며 “노동시장 진입 자체를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는 것은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도 키우게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집권 2년 차를 맞은 이재명 정부의 성패는 성장의 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금·노동·교육 개혁 등 구조 개혁 과제가 거론되는 이유다.

이 교수는 “AI 확산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미래 노동시장을 예고하고 있다”며 “극단적 대립에 갇힌 정치권을 넘어 사회 각계가 참여하는 미래 담론 공론화 기구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6·3 지방선거 이후 2028년 23대 총선 전까지 이어지는 약 2년은 이재명 정부의 구조 개혁 성패를 가를 ‘골든타임’으로 평가된다. 신 교수는 “향후 2년은 정치적 부담이 큰 개혁 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이 대통령이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과감한 승부를 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우창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2년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지난 1년이 성장의 엔진을 다시 켜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2년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국가 체질을 바꾸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美와 핵잠, 中과 70조 통화스와프…유화 제스처에도 대북관계는 난제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출범 당시 일각에서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라는 외교안보 슬로건에 대해 석연찮은 반응이 나왔다.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일 뿐 구체적인 철학이나 전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우려였다. 1년이 지난 현재 주요국과의 관계 복원과 외교 공간 확대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맹국인 미국과는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에서의 첫 정상회담에서 굵직한 성과가 나왔다. 정구연 강원대 정치학과 교수는 “핵추진잠수함, 원자력 협력 등 우리 정부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사안과 관련해 미 측과 협의가 잘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핵잠이나 전시작전통제권 등 안보 사안은 전방위적인 대미 외교도 필요하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중 관계는 회복 국면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및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11년 만에 국빈 방한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올 1월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9년 만에 국빈으로 중국을 찾았다. 20건의 양해각서(MOU) 및 70조 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체결도 발표했다.

1년간 50개국·90회 정상외교

원자력·조선 등 美 협력 강화

대중관계 복원 속 외교 다변화

전문가들은 한중 관계 복원을 넘어 제도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경색됐던 한중 관계를 정상화한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이벤트 중심 외교를 넘어 로드맵 중심 외교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상회담 정례화와 함께 장관·차관·실무급 협의체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분야별 우선 과제와 후속 조치 일정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이 심화된 가운데 이재명 정부는 외교 다변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 1년간 50개국 이상의 정상과 90회 이상 정상외교를 치렀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유럽연합(EU) 국가들과는 실질적인 협력 강화를 천명해왔다.

반면 남북 관계는 여전히 가장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경색된 남북 관계는 전 정부를 거치며 더욱 악화됐고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기조로 이어졌다. 현 정부는 한미 연합훈련 조정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유화적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국정성과 이끈 4인방…2년차 역할변화 주목

김민석(왼쪽부터) 국무총리, 강훈식 비서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김정관 산업장관
김민석(왼쪽부터) 국무총리, 강훈식 비서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김정관 산업장관

이재명 대통령 집권 1년의 성과 뒤에는 국정 전반을 뒷받침한 핵심 참모진과 내각의 역할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 관세 협상과 중동 전쟁 등 대외 변수 속에서도 경제·외교 현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국정 동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이들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에도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는 단연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꼽힌다. 강 실장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 전략경제협력 특사 자격으로 올해 4월 중앙아시아·중동 4개국을 방문해 원유 2억 7300만 배럴을 확보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를 냈다. 정책과 정무를 두루 아우르는 만큼 남은 임기에도 핵심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강훈식, 정책·정무 다방면 활약

김용범, 국정과제 총괄·개혁 집중

김민석, 8월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

김정관, 정부 성장전략 주도 예고

김용범 정책실장은 국정과제를 총괄하는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왔다. 이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폐지 등 주요 정책을 설계·조율하며 정책 추진력을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차기 국무총리 후보군으로도 거론되지만 당분간은 정책실장으로서 현재 진행 중인 개혁 과제를 마무리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향후 거취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김민석 국무총리다. 김 총리는 4선 의원 출신답게 당정청 간 가교 역할을 하며 국정 운영과 입법 과제를 지원해왔다. 여권에서는 올 8월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특히 김 총리가 1일 국무위원들과 만찬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사실상의 ‘고별 행보’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역시 집권 2년 차 핵심 인물로 꼽힌다. 김 장관은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수십 차례 실무 협상을 통해 교착 상태에 빠졌던 협상을 타결로 이끌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장관을 “터프한 협상가”라고 평가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관가에서는 김 장관이 향후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비롯한 주요 산업·통상 과제를 주도하며 정부의 성장 전략을 이끌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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