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x86’ 아성 흔든 ‘AI 노트북’, AMD 삼키나
■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232>
엔비디아, ‘ARM 기반’ AI PC용 슈퍼칩 공개
MS와 손잡고 에이전트형 컴퓨터 시대 예고
델·HP, 메모리 업체에 어도비까지 반사이익
인텔·AMD의 48년 ‘x86’ CPU 아성은 ‘흔들’
퀄컴·애플도 ‘궁지’...삼성·SK엔 또 新시장
입력2026-06-02 09:19
수정2026-06-04 04:47
미중 정상회담 때 중국용 인공지능(AI) 반도체인 ‘H200’ 수출 활로를 뚫는 데 실패한 이후 긴 조정기를 거친 엔비디아가 AI 기능을 탑재한 노트북과 PC용 윈도우 칩을 공개하면서 오랜만에 반등했다. PC와 노트북 부문은 그간 ‘x86’ 아키텍처(설계 구도) 기반의 중앙처리장치(CPU) 강자인 인텔과 AMD가 주도하던 시장인데, 엔비디아가 ARM의 아키텍처를 들고 이 부문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고가 컴퓨터 시장의 지배력이 흔들릴 경우 AMD와 인텔이 성장성에 상당 부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 ‘ARM 기반’ AI PC용 슈퍼칩 공개...‘핵심 파트너’ MS와 지수 쌍끌이
1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엔비디아는 오랜만에 6.26% 급등했다. 엔비디아는 중국 베이징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지난달 14일 H200 수출 기대로 235.74달러까지 올랐다가,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빈손으로 귀국하자 이후 쉬지 않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종합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서도 엔비디아는 지난달 29일 211.14달러까지 떨어졌다. 2주간 하락률만 10.43%에 이르렀다. 엔비디아는 20일 예상대로 크게 나아진 2027 회계연도 1분기(올 2∼4월) 실적을 공개했음에도 주가 반등에는 실패했다. 대(對)중국 수출 재개처럼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뭔가’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엔비디아가 크게 반등한 것은 이날 황 CEO가 공표한 새 ‘RTX 스파크’ 슈퍼칩 덕분이었다. 황 CEO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정보통신(IT) 박람회 ‘컴퓨텍스’에서 새 RTX 스파크 슈퍼칩을 올 가을부터 미국 델, 중국 레노버, 대만 에이수스 등 글로벌 주요 PC 브랜드의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에 탑재한다고 밝혔다.
RTX 스파크는 엔비디아의 최신 AI 반도체인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 아키텍처, 대만 미디어텍과 협력해 새로 설계한 고효율·고성능 CPU를 하나의 칩에 모두 통합한 제품이다. 이는 엔비디아가 윈도우 PC 시장에 메인 프로세서 공급자로 진입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전망이다. 엔비디아의 슈퍼칩을 도입하면 PC가 기기 내부에서 최대 1200억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대형언어모델(LLM)을 직접 구동할 수 있어, 기존 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에이전트(업무 도우미)형 PC’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엔비디아는 앞으로도 자사 칩을 활용한 고성능 AI PC 제품을 더 다양하게 선보이기로 했다. 젠슨 황 CEO는 행사장에서 “지난 40년은 앱을 클릭하고 타이핑으로 입력하는 시대였지만, 이제는 PC가 요청 사항을 알아서 처리하는 시대”라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AI 노트북 시장 진출 선언은 이 회사의 주가에만 영향을 주지 않았다. 엔비디아의 핵심 협력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도 2.28% 뛰어올랐다. 두 상장사의 강세는 이란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항의하며 미국과 종전안 협의를 중단한다는 소식에 국제 유가가 급등했음에도 S&P500과 나스닥지수가 신고가 행진을 이어갈 수 있게 한 마중물이 됐다.
PC 제조사, 메모리 업체에 어도비까지 반사이익...인텔·AMD 48년 ‘x86 기반’ CPU 아성은 ‘흔들’
마이크로소프트는 엔비디아와 손잡고 AI PC 플랫폼 하드웨어와 운영체제(OS) 최적화를 오랜 기간 함께 준비한 기업이다. 엔비디아는 2012년에도 ‘윈도우 8’ 기반의 경량 운영체제인 ‘윈도우 RT’를 탑재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자체 태블릿 PC에 모바일 칩을 공급하며 동맹을 맺은 바 있다.
앞서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는 지난달 30일 엔비디아의 이번 PC 시장 진출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세대 AI PC 전략에 중대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24년 선보인 ‘코파일럿+’ AI PC 제품군이 핵심 기능인 ‘리콜’의 보안성 논란과 출시 지연 등으로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악시오스는 “업계는 엔비디아의 PC 시장 재진입이 단순한 AI 반도체 확장을 넘어 PC 산업 판도 자체를 뒤흔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엔비디아가 쏘아 올린 AI PC에 대한 기대는 다른 반도체주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PC 제조사인 델과 HP는 엔비디아 칩을 사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업고 각각 10.70%, 9.20% 급등했다. PC 시장이 AI를 중심으로 재편돼 고급 제품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면 이들 기업이 그 수혜를 그대로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RTX 스파크의 아키텍처 기반을 제공한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ARM도 15.73% 수직 상승했다. 이와 함께 마이크론(6.64%), 샌디스크(3.92%) 등 메모리 업체들도 AI 컴퓨터와 서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에 크게 올랐다. 마이크론은 AI 전용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만들고, 샌디스크는 데이터를 영구 저장하는 대용량 저장장치 낸드플래시를 만든다. AI PC로 ‘포토샵’과 ‘프리미어 프로’의 성능을 두 배나 끌어올리게 된 어도비도 5.72% 급등했다.
엔비디아의 AI PC 시장 진출로 인해 40년 이상 x86 아키텍처로 철옹성을 구축했던 인텔과 AMD는 단기적인 충격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실제 이날 인텔과 AMD는 상승장에서도 4.67%, 1.16%씩 하락하며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였다. 엔비디아의 도전은 인텔과 AMD의 고가 노트북 제품군 수요를 직접 잠식할 수 있다는 게 월가의 시각이다. 기존 시장을 엔비디아가 일정 부분 점유하면 AMD와 인텔의 수익성도 떨어질 공산이 크다.
두 회사는 1978년 인텔이 x86 칩의 시초인 ‘8086’ 프로세서를 개발한 이후 치열한 경쟁 관계 속에서 성장했다. AMD는 과거 인텔 칩을 면허 생산하던 대안 공급처(세컨드 소스)에 머물렀으나, 이후 높은 기술력을 필두로 x86 아키텍처 기반 CPU 시장을 양분하기 시작했다. 두 기업은 오랜 기간 적대와 반목의 역사를 거듭하다가 애플, 퀄컴 등 ARM 아키텍처 진영이 AI를 넘어 PC 시장까지 위협하자, 2024년부터 ‘x86 연합체’를 결성하며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AI PC 주도하던 퀄컴, 맥북의 애플도 ‘궁지’...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新시장 또 창출
엔비디아의 도전장에 ‘스냅드래곤 X’ CPU 시리즈로 차세대 AI PC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주도한 퀄컴의 위상도 급격히 흔들리게 됐다. AI PC 시대에 대한 기대로 지난달 한 달 동안에만 39.78%나 주가가 올랐던 퀄컴은 이날 하루에만 8.78%나 뒷걸음질쳤다. 퀄컴도 같은 날 컴퓨텍스에서 ‘드래곤플라이’라는 AI 데이터센터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공개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엔비디아에만 집중됐다.
고성능 배터리와 기술력을 갖춘 맥북 시리즈를 앞세워 노트북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애플도 주가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윈도우 진영이 다시 힘을 얻게 되자 애플의 주가는 1.84% 하락했다. AI 노트북 시장 성장으로 메모리반도체 품귀 현상이 더 심해져 부품값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주가에 반영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이날 같은 행사에서 연구용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중국 유니트리 로보틱스 외에도 미국, 유럽, 한국 기업들과 협력할 것이라는 계획도 발표했다.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 임원들은 황 CEO의 기조연설 이후 “학계 연구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H2’를 제공하기 위해 유니트리 로보틱스와 협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H2는 유니트리 로보틱스가 최근 출시한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제품이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H2 본체는 유니트리 로보틱스가, 손은 싱가포르에 있는 샤르파가, 컴퓨팅(연산 능력) 시스템은 엔비디아가 각각 만든다. 엔비디아는 사이버 보안 강화에 주안점을 두고 협력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또 한국 등의 기업과도 유니트리 로보틱스와 비슷한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라면서도, 해당 기업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엔비디아의 AI PC 부문 진출이 시장을 당장 크게 재편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가 초기 ARM 아키텍처의 호환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전까지는 대중성 면에서 인텔과 AMD 동맹이 우위를 지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고가 PC, 노트북이 아닌 중저~중고가 시장은 AMD가 당분간 방어할 공산도 크다. 주목할 부분은 엔비디아가 기존 인텔과 AMD보다 더 큰 공룡 기업이라는 점이다. 엔비디아가 더 나은 기술력과 투자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점할 경우 인텔, AMD, 퀄컴 등은 설 자리를 점점 잃게 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005930)나 SK하이닉스(000660)의 경우는 마이크론처럼 메모리반도체 추가 수요 시장을 얻게 되는 파급 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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