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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F 수탁액 3000억을 2년 반만에 4兆로…친정 재건 이끈 30년 베테랑 [CEO & STORY]

■ 김태우 하나자산운용 대표

은행 돈 빌려 신혼집 마련했던 신입 행원

24년만에 하나자산운용 대표로 금의환향

주식형 펀드 수익률도 상위 10%까지 상승

영화 ‘월스트리트’ 보고 펀드매니저 매료

글로벌 외국계 자산운용사 한국총괄 꿈 꿔

매주 수능 성적표 공개되는 듯 중압감 커

기업 한 곳 분석위해 쓴 탐방노트만 15권

매일 땅 일구듯 농업적 근면성이 롱런비결

입력2026-06-03 22:56

수정2026-06-03 23:33

지면 29면

“31년 전 하나은행에서 금융인의 자세와 마음가짐,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 기본기를 배웠던 27세 청년이 24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하나자산운용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제 마지막 소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김태우 하나자산운용 대표가 3일 서울 영등포구 하나자산운용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김태우 하나자산운용 대표가 3일 서울 영등포구 하나자산운용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하나UBS자산운용이 외국계 금융그룹의 이름을 떼고 ‘하나자산운용’으로 새출범하던 2023년 10월 30일. 200여 명의 임직원 앞에 선 김태우 대표의 취임사 마지막 단락이다. 돈 한 푼 없이 은행에서 4500만 원을 빌려 행신동 24평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던 신입 행원이 ‘대표이사’로 친정에 금의환향하는 순간이었다. 김 대표는 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옛 시절 함께 근무했던 ‘대리님’들은 어느덧 사장급 임원이 돼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동료들 몇몇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감동도 잠시, 독립 출범한 하나자산운용 초대 대표 자리는 운용업계 30년 베테랑에게도 가볍지 않았다. 취임사를 마친 김 대표가 직원들 앞에서 가장 먼저 꺼낸 말은 ‘환골탈태’였다. 17년간 51%의 지분을 가진 외국계 합작사(UBS) 체제로 운영된 영향으로 하나금융그룹과의 시너지는 단절됐고 모든 규정과 직제가 외국계 방식을 따른 부작용이 컸다. 수익과 점유율은 매해 감소했고 조직은 깊은 침체에 빠져 있었다.

김 대표는 “금의환향의 기쁨보다는 부담감이 앞섰고 정체된 조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사무실을 리모델링해 경직된 조직 문화를 소통 중심으로 바꾸는 ‘공간적 변화’부터 인사·조직·평가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변신이 이어졌고 조직을 추스르는 데만 반년이 훌쩍 지나갔다.

김 대표는 과거 KTB(현 다올)자산운용 시절 저축은행 배상 문제로 자본금이 전액 잠식되고 투자자 이탈이 가속화되던 조직을 정상화시킨 경험이 있는 업계 ‘구원투수’로 꼽힌다. 그는 새 조직에서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해 ‘명분’과 ‘속도전’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성과급 체계를 투명하게 고치겠다는 약속을 믿고 과거 동료 13명이 자발적으로 하나자산운용으로 이직해 합류하기도 했다. 그는 “정체된 조직을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에게 회사가 좋아지면 각자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보상에 대한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2년 7개월이 지난 현재 하나자산운용 직원들은 “하나UBS 시절과는 180도 다른 회사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100명을 넘어선 인력 중 70%는 김 대표 취임 이후 새롭게 채용된 인사들로 옛 하나UBS 출신 직원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취임 당시 3000억 원이던 상장지수펀드(ETF) 수탁액은 4조 7000억 원(총수탁액은 28조 원에서 40조 원으로 증가)을 넘겼고 이는 신규 진입이 힘든 ETF 분야에서 업계 최대 성장률(1400%)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주식형 펀드 수익률(일반 주식형 기준) 역시 상위 10% 이내로 올라서며 업계 최상위권을 달리는 중이다.

김 대표는 한국 자본시장이 낳은 대표적인 펀드매니저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1993년 하나은행에 입행해 유가증권 운용업계에 뛰어든 그는 2000년대 초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식운용팀장을 맡아 간판 상품인 ‘디스커버리펀드’를 성공시키며 국내 펀드 열풍을 주도했다. 이후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자산운용에 합류해 국내 최초 외국계 한국 주식투자부문 대표(Country Head)를 지냈다. KTB자산운용 대표를 거쳐 하나자산운용에 구원투수로 등판하기까지 30여 년의 업력 중 대표직만 20년 가까이 맡아온 자본시장 승부사로 꼽힌다.

김태우 하나자산운용 대표가 3일 서울 영등포구 하나자산운용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마친 후 하나자산운용을 소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김태우 하나자산운용 대표가 3일 서울 영등포구 하나자산운용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마친 후 하나자산운용을 소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김 대표가 자본시장에 투신하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대학 시절 본 영화 한 편이었다. 김 대표는 “1987년 개봉한 영화 ‘월스트리트’ 속 악역 고든 게코가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며 누리는 화려한 선상 파티를 보며 강렬한 매력을 느꼈고 군 전역 직후 ‘글로벌 외국계 자산운용사 한국 총괄’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당시는 코스피지수가 1000포인트에서 450포인트로 급락해 3대 투신사가 신입 사원조차 뽑지 않던 암흑기였지만 김 대표의 결심은 굳건했다. 학창 시절부터 신영증권 신촌지점 객장을 드나들고 한 통에 50원이 드는 유료 전화로 주가 정보를 얻어가며 과외비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1987년 증권분석 수업을 통해 5명으로 팀을 짜 국가 매크로 분석부터 기업 분석까지 톱다운(거시 항목에서 세부 영역까지 분석하는 방식)으로 골라낸 첫 종목들은 경인에너지(현 SK인천석유화학), 고니정밀, 혜인 등이다. 현 기준으로 바라보면 ‘전기전자·에너지·인프라 스몰캡’에 투자한 셈이다. 그는 “국가에 대한 매크로, 산업, 개별 기업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 틀은 대학교 4학년 때나 지금이나 같다는 점을 새삼스레 느낀다”고 돌아봤다.

학생 시절부터 객장을 드나들던 경영학도는 1993년 하나은행에 입사해 주식과 채권 운용을 도맡게 된다. 2000년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팀장으로 이끈 ‘디스커버리펀드’는 국내 펀드 시장 공전의 히트 상품이 됐다. 하지만 스타 펀드매니저의 길은 영화처럼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성과가 매일 전 국민에게 중계되는 지독한 중압감을 견뎌야 했다.

2001년 밀레니엄 버블 당시 지수가 반토막나며 손실이 난 폐쇄형 뮤추얼 펀드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항의 받던 경험은 ‘남의 돈’을 운용한다는 것의 무거운 책임감을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목숨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 재산이라 생각한다는 김 대표는 “모두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긴 투자자들의 피땀 어린 돈이었다”며 “자산운용업에 임한다면 고객의 생명 다음으로 중요한 것을 운용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선진 시장에서 거장들과 교류하며 얻은 교훈도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피델리티 시절 피터 린치와 영국 역사상 최고의 투자자로 불리는 앤서니 볼턴 등 전설적인 매니저들의 철학을 흡수한 그는 이들에게서 배운 네 가지 글로벌 DNA를 한국에 이식하고자 노력했다. 바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린 자세,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직업의식, 농업적 근면성, 그리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다스릴 자기만의 취미가 그것이다. 김 대표는 “볼턴이 목관 5중주를 작곡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듯 일요일 오후 과천 현대미술관이나 인사동 화랑을 찾아 그림을 감상하고 늦은 밤 오디오 앰프와 케이블을 바꿔가며 음악에 몰입한다”고 말했다.

하나자산운용 본사가 위치한 여의도 하나증권. 하나증권
하나자산운용 본사가 위치한 여의도 하나증권. 하나증권

그는 타고난 직관이 아닌 묵묵한 ‘농업적 근면성’이 극도의 스트레스와 숱한 위기 속에서도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방대한 정보 속에서 핵심을 찾는 통찰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매일 땅을 일구듯 꾸준히 분석하고 현장을 찾는 농업적 근면성이 승패를 가른다”며 “약세장에서 무리하지 않고 ‘보기(bogey) 플레이’를 할 줄 아는 냉철한 리스크 관리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외국계 운용사 특유의 철저한 사전 분석 시스템이 이 근면성에 날개를 달아줬다. 피델리티 시절 기업 한 곳을 분석하기 위해 7년여간 40여 번의 미팅을 가지며 작성한 탐방 요약 노트 15권이 그 치열했던 궤적을 증명한다. 피델리티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해 싱가포르·도쿄 동료들과 함께 500여 개의 해외 경쟁 기업들까지 샅샅이 파헤친 것도 이 무렵이다.

자본시장 생태계에서 30년을 버텨온 베테랑인 김 대표는 자본시장에 뛰어들 후배들을 향해서도 애정 어린 일침을 건넸다. 그는 “펀드매니저는 매주 전 국민에게 수능 성적표가 공개되는 것과 같은 자리”라며 “겉멋에 업을 택하거나 승리자와 패배자가 나뉘는 극심한 경쟁을 견디지 못할 성격이라면 차라리 커리어 내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시중은행에 가는 것이 낫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20년간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펀드매니저는 10명 중 1명이지만 일반 기업은 20년간 안정적인 고용이 보장되지 않느냐는 의미다.

험난한 시장에서 살아남기를 택했다면 필수 자질로 ‘높은 목표’와 ‘즐기는 기질’을 지녀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당장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항상 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당초 설정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며 “지적 호기심과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함께 고집이 아닌 소신을, 우유부단이 아닌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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