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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시로 여는 수요일
아내는 비정규직인 나의 밥을 잘 챙겨주지 않는다 아들이 군에 입대한 후로는 더욱 그렇다 이런 날 나는 물그릇에 밥을 말아 먹는다 흰 대접 속 희멀쑥한 얼굴이 떠 있다 나는 나를 떠먹는다 질통처럼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없어진 얼굴로 현관을 나선다 밥 벌러 간다 -이재무 당신을 떠서 온 가족이 먹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식구들 숟가락이 허공에서 부딪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는 건더기 그득한 뚝배기에 당신 얼굴이 비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나를 떠먹다니 안쓰럽지만 자초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광활한 식탁에 물그릇 하나 달랑 놓고 밥 말아 자시고 있다니. 당신이 비정규직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아들 빈자리에 입맛을 잃었거나, 먼저 일하러 간 아내가 ‘반찬 골고루 꺼내 드셔요’ 냉장고 문짝이며 식탁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나를 떠먹고 밥 벌러 가는 얼굴 없는 그대여. <시인 반칠환>
로터리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한 배심원은 모두가 ‘유죄’를 외칠 때 홀로 이의를 제기한다. 그가 원한 것은 당장의 무죄 판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결정 앞에서 “단 1시간 만이라도 제대로 이야기해 보자”는 절차적 정의였다. 관세행정 현장에서도 이와 같은 목소리가 존재했다. 결과만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는 납세자의 사정을 행정이 귀 기울여 듣고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통해 권익을 보호해달라는 요구였다. 2020년 7월 도입된 ‘관세 납세자보호관’ 제도는 그 목소리에 답한 결과다. 수출입 기업을 운영하는 박 모 대표는 수입하는 물품에 대해 과세 당국으로부터 ‘과세가격 결정방법 사전심사(ACVA)’ 승인을 받아 그 기준에 따라 성실하게 수입 신고를 해오던 터였다. 그러나 관세조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과세처분 움직임이 감지되자 그는 막막함에 밤잠을 설쳤다. “정당한 요건을 갖춰 승인받은 대로 과세가격을 신고했는데 어디에 이 답답함을 호소해야 하나.” 과거라면 행정처분이 완전히 내려진 후에야 이의신청이나 심사청구 등의 불복 청구를 통해 길고 지루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자칫 청구 기간을 놓치면 구제
박현영 칼럼
50세 전후의 많은 중년 여성들은 폐경과 함께 신체·정서적 변화를 경험한다. 추운 겨울에도 갑작스러운 열감으로 얼굴이 화끈거리고, 밤에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화장을 해도 가려지지 않는 홍조는 외출을 망설이게 만들고 일상의 자신감마저 흔든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의 대화에서도 “다들 그 나이에는 그렇다”는 말과 함께 TV 광고에서 본 건강기능식품 이야기가 오간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불편함과 고통을 진지하게 나눌 대상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여성으로서의 기능을 잃는다는 상실감, 혹시라도 ‘유난을 떠는 사람’으로 비칠까 하는 사회적 시선은 침묵을 강요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 중년 여성들이 마주한 갱년기의 현실이다. 갱년기 증상은 폐경 전후 여성의 약 80%가 경험할 정도로 흔하다. 문제는 흔하다는 이유로 관리의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 전가돼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30~50%의 여성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증상을 겪고 있지만 국내 조사에 따르면 증상이 심해도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갱년기 자체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과정이지만 그로 인한 과도한 신체·정신적 고통까지 ‘자연스
해외칼럼
미국의 외교정책은 보편주의를 향한 일관된 지향성을 보이고, 이로 인해 십자군적 개입에 대한 유혹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보편주의 쪽으로 당기는 힘은 해외의 현실을 재편하려는 최근의 시도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에 대한 인식에 따라 강화되거나 약화된다. 보편주의는 이같은 신념에 기반한 국가 교리문답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의 아홉 번째 단어인 ‘모든’에서 비롯된다. 모든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여기에는 국민의 동의에 의해 적법성을 인정받는 정부를 가질 권리도 포함된다. 미국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쟁은 이런 교리문답이 국가에 요구하는 책무가 무엇이냐에 관한 것이다. 1823년에 나온 먼로독트린은 서반구를 더 이상의 유럽 식민지화로부터 차단하고, 미국의 암묵적인 개입을 통해 이를 보장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전체 그림이 흐릿해진다. 실제로 미국의 개입을 불러온 동기는 상업적 고려(과거에는 바나나, 요즘에는 석유)와 지정학적 요인이었다. 이 원칙은 제임스 먼로 대통령에 의해 공표되었지만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존 퀸시 애덤스의 이름을 따서 애덤스독트린으로 불려져야 마땅하다. 서반구에서 유럽에 의한 식민
백상논단
지난주 중국 정부가 일본 정치권의 대만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아 일본으로의 이중 용도 물자 수출에 대한 강력한 통제 조치를 예고했다. 이들 물자에는 희토류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내 반발이 거세다. 희토류는 오늘날 첨단산업의 성능 한계를 규정하고 국가 안보 체계의 기술적 기반을 형성하는 핵심 원소군이다. 전기자동차 구동계와 풍력발전용 발전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 초고속 통신 인프라, 의료 영상 장비, 나아가 첨단 무기 체계에 이르기까지 현대 기술 생태계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희토(稀土)라는 명칭과 달리 희토류는 지각 내 극히 적게 존재하기보다는, 산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형태로 분리 정제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원소들이다. 이들 원소는 서로 화학적 성질과 이온반경이 거의 동일해 동일한 광물에 함께 존재하며 이를 개별 원소로 고순도로 분리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환경 부담이 큰 정제 공정이 요구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희토류는 자원 그 자체보다도 정제 기술과 공정 역량이 전략적 가치를 결정하는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희토류는 주기율표에서 란타넘족 15개 원소에 스칸듐과 이트륨을 포함한 17개 원소들인데
기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를 계기로 체결된 한영 자유무역협정(FTA)은 그간 한·유럽연합(EU) FTA를 대체하며 양국 간 교역과 투자의 연속성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글로벌 통상 환경이 급변하고 산업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기존 협정은 기업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관세 철폐 중심의 협정 구조와 엄격한 원산지 기준은 글로벌 분업 체계 속에서 생산과 조달을 운영해온 기업들에 제약으로 작용해왔다. 지난달 이뤄진 한영 FTA 개선 협상 타결은 변화된 환경을 반영해 협정을 ‘FTA 2.0’으로 고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협정의 핵심은 영국 진출 초기 투자 기업들이 겪어온 비자 관련 불확실성을 제도적으로 해소했다는 점이다. 제조업과 정보기술(IT) 분야를 중심으로 우리 기업들은 공장 설립 초기 단계에서 엔지니어와 설비 설치 및 유지 보수 인력, 협력 업체 전문인력 투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간 비자 요건과 절차의 불확실성은 투자 결정의 리스크로 작용해왔다. 이번 협상 타결로 영어 능력 입증 부담이 없는 비자 유형 활용이 가능해졌고 협력 업체 인력도 서비스 계약을 통해 영국으로 초
지난 연말 영국 런던 베이스워터 지역과 토트넘 코트 로드역 부근에 새로 등장한 뱅크시의 벽화가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건물 벽과 담장 위에는 부츠와 코트, 겨울용 털모자를 착용한 두 아이가 땅에 누워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중 한 아이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은 노숙 아동 문제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얼굴 없는 예술가’로 불리는 뱅크시는 늘 그렇듯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허가받지 않은 공공의 공간에 노숙 아동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그림을 남기고 사라졌다. 뱅크시는 전통적인 ‘소유’ 개념을 전제로 한 작업 방식을 거부해온 작가다. 미술관이나 미술 시장의 틀 안에서 작품을 유통하기보다 거리와 공공장소에 흔적을 남김으로써 사회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해왔다.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을 보며 마음은 유난히 무거워졌다. 크리스마스 캐럴과 장식이 넘실거리는 시기에 등장한 거리의 아이는 연말의 들뜬 분위기와 대비되며 결핍을 더욱 또렷이 부각하는 듯 보였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기사에 첨부된 두 장의 자료 사진이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벽화 그 자체보다 벽화와 함께 포착된 이미지의 의미였다. 한 장
열린송현
국제사회는 기후위기와 분쟁,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가 반복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발생 빈도와 강도가 동시에 커지고 있으며 분쟁과 정치적 불안 역시 단기간에 해소되기보다 장기화되고 있다. 유엔 인도적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전 세계 어린이 5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약 4억 명이 현재 분쟁 지역에 거주하거나 분쟁으로 인해 강제 이주하고 있다. 이는 위기가 특정 지역이나 단기간에 국한되지 않고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OCHA는 올해 인도적 지원 수요가 가용 자원을 크게 초과해 인도주의 체계가 필요한 지원의 일부만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 구호 활동은 재난과 분쟁·빈곤 등으로 위기에 놓인 이웃을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보호하고 지원하는 국제사회의 핵심적 실천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각국 정부, 시민사회와 민간단체들이 협력하며 공적개발원조(ODA) 등 다양한 재원을 바탕으로 국제적 연대와 공동 대응을 이뤄간다. 이런 국제 구호는 위기 지역의 불안정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 속에서 인도적 책임을 넘어 국제 평화와 협력, 그리고 지속 가능한
정여울의 언어정담
사람들은 제가 ‘동네책방에서 북토크나 강의를 한다’고 하면 ‘강연료가 얼마냐’고 묻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강연료 이상의 넘치는 보람을 느낀다고 답합니다. 고개를 갸웃하는 분들이 많지요. 강연이라는 노동의 대가는 당연히 금전적인 보상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작가로서, 강연자로서, 강연료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주로 책방 주인의 1인 노동으로 운영되는 작은 공간에서는 그런 수익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대신 책방에는 ‘열광적인 독자들’이 방문합니다. 30명이 강연을 들으면 30명 모두 책을 구입해 제 친필 사인을 받기도 합니다. 눈을 반짝이며 작가의 강의를 들어주고, 깊은 통찰이 담긴 질문을 던지는 독자들의 얼굴을 보면 열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작가로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내 이야기를 그토록 열정적으로 들어주는 독자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동네책방 북토크의 커다란 보람입니다. 동네책방만이 지니는 따스한 공간의 아우라가 있습니다. 책방 주인이 직접 정성 가득한 손글씨 편지로 책을 추천하는 모습을 보면 그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지요. 정성스러운 손글씨로 내가 왜 이 책을 사랑하
막강한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만큼 미국 대통령에게 짜릿한 경험은 없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일 밤 기자들에게 전날 베네수엘라 작전에 대해 이야기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막강한 힘에 대한 자만심은 지난 30년간 거의 모든 행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던 오만함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자신이 전임자들보다 더 똑똑하고 강하다고 믿는 트럼프 같은 지도자에게는 더욱 위험한 함정이다. 그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대가 없이 차지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벙커에서 생포한 놀라운 작전 이후 트럼프는 마치 자신의 권력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말했다. 쿠바는 “무너질 것 같다”고 했고 콜롬비아는 “병든 사람이 통치하고 있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을 좋아하지만 “멕시코는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다”며 미군 파병을 원한다.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의 영토 그린란드도 탐낸다. 트럼프는 세계 질서를 완전히 뒤바꾸려 한다. 그는 자신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듯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를 견제할 전략
글로벌 핫스톡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가 초당적 관심사로 대두되면서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방산 기업인 RTX에 대해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RTX의 사업 구조는 세 개의 핵심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항공기 엔진의 설계·제조·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프랫앤휘트니'가 전체 매출의 약 37%를 차지하고 있으며 항공 전자 시스템과 구조물 등 첨단 항공 시스템을 개발하는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가 33%, 미사일과 통합 방어 시스템을 담당하는 '레이시온' 부문이 31%를 차지하고 있다. 방위와 민항을 동시에 포괄하는 포트폴리오가 구조적 강점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각국의 국방 예산 지출 확대와 맞물린 수주 환경 역시 긍정적이다. RTX는 미국 국방부로부터 F-35 전투기 전 기종에 탑재되는 핵심 엔진 F135의 18차 생산 물량을 제작하는 28억 달러 규모 계약을 수주했다. 미사일 방어와 방공 체계 강화를 위한 예산 편성 확대 역시 중장기 수주 환경에 우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외 지역에서의 방산 매출 비중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해외 수출은 마진이 높아 제품 믹스 개선에 긍정적으로 기
새해 첫날, 남산에 올랐다. 정상에 서니 봉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조선시대 봉수는 국가의 조기경보체계였다. 평온한 때에도 누군가는 쉼 없이 땔감을 준비하고 불씨를 살펴야 했다. 관리가 느슨해져 신호가 끊기는 순간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었다. 크고 작은 유출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는 요즘의 개인정보 환경이 봉수대를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 사회에서 개인정보는 국민의 일상과 안전·존엄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데이터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개인정보 침해의 파급력은 더 빠르게 커진다. 이런 때일수록 기본을 지키고 있는지를 통렬히 물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개인정보 사고가 빈번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한국은 세계 최고의 디지털 인프라를 가졌지만 보안 투자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국내 주요 기업의 정보기술(IT) 투자 대비 정보보호 투자 비중은 6% 남짓이다. 11% 이상을 투입하는 미국 기업들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편리한 서비스 출시에 몰두한 사이 보안 체력은 허약해졌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고민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AI 도입 속도가 보안 거버넌스 구축을 앞지르며 혼란을 겪고 있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있다. 참 염치없는 말이다. 벼룩의 간을 내어 먹다니, 그 조그만 녀석에게 그런 잔인한 짓을 하다니 말이다. 이식외과 전문의로서 십수 년간 간을 다루며 살아온 필자로서는 더욱 용납하기 힘든 비유였다. 그런데 몇 년 전에야 알게 됐다. 벼룩에게는 애초에 간이 없다는 것을. 그 속담은 허언이었던 것이다. 매우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하루살이에게도 간이 없다. 만약 하루살이에게 간이 있었다면 열흘살이, 한달살이가 됐을 수도 있다. 별처럼 빛난 반딧불이도 간이 없다. 며칠간 어둠을 밝혀주는 빛을 내다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다. 간이 없는 동물들은 쉼 없이 먹고 있거나 장내에 음식물이 지나고 있어야 한다. 간이 없는 하루살이의 운명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예견하고 태어난 것이다. 곰이 겨울잠을 잘 수 있는 이유는 간이 있어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람쥐와 너구리도 겨울잠을 잔다. 풍족한 늦가을 포식과 폭식을 거듭해 간에 많은 에너지를 지방의 형태로 축척해뒀다가 에너지를 조금씩 녹여 사용하는 식으로 길고 긴 겨울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매일 잠을 자고 일을 할 수도 있는 건 건강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주주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공공·규범적 목적에서 출발한 제도다. 기업의 자기주식 활용을 주주 환원과 자본시장 신뢰 제고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타당하다. 다만 법과 제도는 목적의 정당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규범이 원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적용 범위와 기준이 법체계 안에서 정합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자기주식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기업이 주주 환원을 목적으로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매입한 자기주식과 인수합병(M&A)이나 주식 교환 등 기업결합 과정에서 발생한 자기주식은 취득 원인부터 다르다. 후자의 경우 기업이 선택한 것은 자기주식 취득이 아니라 합병이나 구조조정이라는 법률행위 전체였다. 자기주식은 그 과정에서 파생된 결과물에 가깝다. 비자발적 취득 자사주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소각을 강제할 경우 상법 체계와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현행 법체계에서 자기주식의 소각은 자본금 감소, 즉 감자로 이어지며 이는 주주총회 특별결의와 채권자 보호 절차를 전제로 한다. 특별결의가 성립하지 않으면 기업은 소각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되
역사 속 하루
사라져서 좋은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소아마비다.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과거의 학교 풍경에는 이 질환을 겪은 친구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없다. 1983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 온 세상에서 그렇게 될 것 같다. 고통의 끝이 보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아이반호’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작가 월터 스콧은 평생 절면서 자신의 증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 역시 네 살부터 갖게 된 장애에 굴하지 않고 소아마비 퇴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폴리오로 불리는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주로 아동의 신경계를 공격하여 신체 마비 증상을 가져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자신도 소아마비를 앓던 조너스 소크가 백신 개발을 발표하기 직전인 1952년 미국에서는 5만 8000명이 감염됐다. 사망자만 3000명이 넘었다. 미국인들이 핵폭탄보다 소아마비를 더 두려워했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소크의 쾌거 배후에는 국립소아마비극복재단(NFIP)이 있었다. 이 재단을 출범시킨 사람이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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