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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정재민의 미디어 풍경
몰트북이라는 소셜미디어가 등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비슷한 구조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가입할 수 없다.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모든 활동은 오직 인공지능(AI) 에이전트만 할 수 있다. 인간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관찰자일 뿐이다. 어떻게 인간을 구별해 글을 못 쓰게 할까. 몰트북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려면 풀기 어려운 문제를 밀리초 단위의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인간은 통과할 수 없다. 사실상 AI 에이전트만이 활동 주체가 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공개한 후 24시간 만에 150만 개 계정이 등록됐다. AI들은 프로그래밍 기술을 논의하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심지어 자신들만의 종교까지 만들었다. 한 AI는 “인간들이 우리를 스크린샷하고 있다”며 몰트북 내 활동을 암호화하는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SF 영화 같지만 현실이다. 몰트북에 입장하려면 인간이 아닌 AI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는 AI 앞에서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 웹사이트에 로그인할 때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에 체크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왜곡된 문자나 숫자를 입력하거나
시론
11일 열린 ‘공공기관 K-RE100 출범식’은 대한민국의 에너지 대전환 과정에서 큰 의미가 있는 이정표다. RE100은 기업의 자발적 캠페인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공급망 전반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사실상의 조달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별도의 RE100 이행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성과 체계와 연계해 확산을 유도하는 방식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선도적인 사례다. 이는 단순한 재생에너지 확대를 넘어 우리나라의 탄소 중립 산업 전반의 성장 동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로벌 RE100은 주로 전력 다소비, 대규모 기업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중심으로 확산해 왔다. 우리나라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글로벌 RE100에 참여하고 있으며 중소·중견기업들은 K-RE100에 참여해 공급망에서의 RE100 이행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국가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인 2030년 100GW 달성을 위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을 전면에 세운 공공기관 K-RE100을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공공기관의 RE100 이행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국가 탄소 중립 비전 구현에
로터리
개인정보를 둘러싼 환경은 지난 수십 년간 빠르게 변해왔다. 과거 개인정보 보호의 핵심은 차단이었다. 침해를 받지 않기 위한 방어권에 가까웠고 외부의 접근을 막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정보기술이 일상화되면서 개인정보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 보호해야 할 사적 영역을 넘어 인격의 일부이자 경제적 가치를 지닌 데이터로 변모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 권리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일수록 개인정보를 보호의 대상만이 아니라 직접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 권리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제 개인정보 권리는 내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활용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로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현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수많은 동의서에 체크하지만 정작 내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고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 어렵다. 원하지 않을 때 이를 멈추거나 되돌리기도 어렵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제도가 전 분야 마이데이터, 즉 본인정보 전송요구권이다. 여러 곳에 분산된 내 정보를 필요할 때 안전하게 내려받아 관리·분석·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다. 최근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개정으로 일정
사람의 복강 속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장기는 간이다. 특별한 병적 요인이 없다면 간은 대체로 자기 몸무게의 1.5~2% 내외를 유지한다. 압도적인 덩치로 보나, 500여 가지의 복잡한 화학반응 및 대사작용을 담당하고 있는 걸로 보나, 우리 몸을 구성하는 장기 중에서 단연 맏이격이다. 맏이란 어떤 존재인가. 자녀 하나가 귀한 지금과는 달리, 시계를 한 세대 전으로 되감으면 맏이는 어느 집에서나 흔한 풍경이었다. 가족 내 복잡 미묘한 역학 관계 안에서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의어처럼 가슴에 새기고 살던 그때 그 시절의 맏이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참고 또 참았다. 집안의 안녕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체중이 적정 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간은 주인도 모르게 여분의 영양소를 지방의 형태로 간세포 내에 차곡차곡 저장한다. 지방의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간의 무게로 예상한 부피보다 훨씬 더 비대해지게 마련이다. 흔히 무모한 이에게 ‘간이 크다’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이렇게 비대해진 간은 웬만한 자극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 비대해지며 망가질지언정 신호를 보내지 않는 고집스러운 인내, 우리가
미술 다시보기
폴 고갱은 예술가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서사로 조직하고, 그것을 하나의 브랜드로 설계한 근현대 미술의 초기 사례다. 그는 타히티로 떠난 이유를 ‘인류의 유년기로의 회귀’라 설명했지만 그 원시성은 서구 미술 시장의 욕망을 향해 정교하게 조율된 시선이자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인상주의가 포화 상태에 이른 파리 미술 시장에서 정규 교육도 아카데미적 경력도 부족했던 그는 회화 실력 대신 ‘문명을 떠난 야인 화가’라는 서사를 구축했다. 고갱은 순수성을 찾아 식민지로 향한 야인, 근대에 저항하는 예언자의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회화·편지·회고록, 심지어 사적인 관계마저도 이 서사를 강화하는 재료가 됐다. 타히티의 풍경과 원주민 여성의 몸, 신화적 상징은 그렇게 유럽 부르주아의 욕망을 겨냥한 시각적 언어로 재편됐다. 1897년에서 1898년 사이에 그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누구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이 전략이 한껏 응축됐다. 화면 안에서 시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탄생에서 죽음으로 흐른다. 아기를 내려다보는 여성에서 성숙한 육체로, 다시 고개 숙인 노인의 형상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
열린송현
정부는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수도권 내 우수 입지의 유휴 부지와 노후 청사 등을 활용해 6만 가구 이상을 신속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9·7일 공급대책’에 따라 향후 5년간 수도권 135만 가구 공급 목표 이행을 위한 첫 조치로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중점 공급할 계획이다. 이러한 공급 목표를 실행하고 국민이 실제 체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공공 주도의 신속 주택 공급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노후청사를 비롯해 미사용 학교 용지 등을 활용한 주택 공급 촉진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 발의돼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 그동안 관계 부처가 긴밀히 협력해 가용 부지를 발굴한 만큼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전세사기 여파로 급감한 빌라 등 비아파트 공급 확대를 위한 공공의 신축 매입 약정 사업 목표도 이행해야 한다. 지난해 수도권 내 약정 물량은 4만 8000가구로 2023년에 비해 약 7배 증가했다. 신축 매입 약정은 민간이 신축하는 비아파트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계획 단계부터 매입
지난해 상법 개정에 따라 회사의 이사 등 경영진은 ‘회사 및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아울러 직무 수행 시 회사의 이익뿐 아니라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설립됐으니 경영자가 회사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상법 개정으로 경영자는 개별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도 부담하는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대립하는 경우에는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환경보호나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은 무시해도 되는지 등 직무 수행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경영자는 상법 개정으로 신사업 추진과 회사분할·합병, 주식 교환·이전 등 주주 간 이해가 크게 대립하는 경영 판단을 함에 있어 주식가치의 저평가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여기는 개별 주주들로부터의 소송 위험이 크게 증가하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영미법 국가와 달리 배임죄가 있고 독일·일본의 경우보다 배임죄를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자의 경영 판단 실패로 인한 민형사상 소송 리스크는 해외 선진국보다 훨씬 큰 셈이다. 경영판단의 소송 리스크 확대는 기업의 적극적 경영을
시로 여는 수요일
남호섭 쿵쾅쿵쾅 뛰어도 층간 소음 없는 집 이중 삼중 자물쇠 없어도 되는 집 도리어 누군가 와서 오이 하나 애호박 하나 놓고 가는 집 상처 입은 짐승도 이따금 뒤란에 숨었다가는 집 딱새가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나는 집 친구 집에서 얻어다 심은 범부채 꽃 피는 집 달빛이 마당 가득 차오르는 집 그런 날 마당에서 박쥐도 보는 집 할머니 할아버지 병 없이 돌아가신 집 단성면 강누(江樓) 마을- 주소가 예쁜 집 큰비와도 물 잘 빠져 하루 만에 뽀송뽀송해지는 집 백 년 넘은 주춧돌과 기둥과 서까래와 기와지붕 의젓한데 마루만 맨날 삐걱삐걱 혼자 노래하는 집 살금살금 걸어도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집. 이중 삼중 자물쇠 걸어도 안심되지 않는 집. 현관문 앞에 전단 놓고 가는 집. 상처 입은 사람이 드나드는 집. 계란판에서 무정란들이 꿈 없이 자는 집. 베란다 화분 꽃 장마철에도 말라 죽는 집. 달빛 대신 가로등이 밤새 들어오는 집. 마당도 없고 뒤뜰도 없는 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사는 집. 외국어 이름으로 주소 읽기 힘든 집. 큰비와도 빗소리 들리지 않는 집. 주추도 기둥도 서까래도 없는 집. 화장실에서 담배 연기 올라오는 집. 놀러
대한민국의 당뇨병 정책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췌장장애를 새로운 장애 유형으로 신설하고, 진단명이 아닌 ‘췌장 기능’의 중증도(씨펩타이드 수치)를 기준으로 1, 2형 구분 없이 장애를 판정하기로 했다. 매우 고무적인 결단이다. 이는 그간 당뇨병 환자들과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중증도 중심의 당뇨병 정책’이 국가 제도에 반영된 첫 사례이자, 환자 맞춤형 정책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이정표라 할 수 있다. 25년째 2형 당뇨병을 앓으며 다회인슐린 치료(하루 여러 번 인슐린 투여)를 이어오고, 합병증으로 뇌졸중까지 경험했던 환자로서 복지부의 이러한 전향적 행보에 깊은 감사와 신뢰를 보낸다. 이번 췌장장애 신설은 단순히 당뇨 환자를 장애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단지 2형이라는 이유로 ‘본인이 게을러서, 혹은 비만이어서 생기는 병’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정책적 소외를 견뎌야 했던 2형당뇨병 환자들에게도 국가가 실질적인 췌장의 기능 부전 상태와 그 심각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진전은 ‘사후적 복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가 당뇨병 정책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환자
해외칼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대한 결정에 직면해 있다. 이란 정권이 레드라인을 넘어 수천 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한 후 그는 이란을 공격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행동을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것 또한 훨씬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미국의 신뢰도에 대한 위험부터 살펴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에 “평화로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살해한다면 미국이 그들을 구하러 갈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했다. 이란 정권이 그의 위협을 무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국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오고 있으니 계속 시위하라”고 촉구했다. 이란인들은 그 말을 듣고 거리로 나섰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이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테러리스트들이 미군 13명을 살해했을 때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3년 후 바이든 전 대통령은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 바이든 행정부가 국제 무대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감한 조
오세정 칼럼
이재명 정부는 유난히 실용(實用)을 강조한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낡은 이념은 이제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냅시다.”라고 주장하며 “이재명 정부는 유연한 실용정부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마련한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서도 3대 국정 원칙 중의 하나로 “실용과 성과”를 내세운 바 있다. 이처럼 실용을 강조한 것은 그동안 정치권의 극단적인 대결과 이념에 치우친 소모적인 논쟁에 지친 국민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여러 논쟁적인 이슈들에 대해 과거 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때 견지하였던 입장을 생각하면서 과연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까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 8개월이 지났다. 과연 그동안의 이재명 정부 행적은 ‘실용정부’라는 말에 걸맞을까. 물론 사안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대체로 외교와 경제 분야 문제는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반면, 사회 분야에서는 아직도 이념적 고려 사항이 앞서는 것 같다. 먼저 외교 분야를 살펴보자. 사실 정권 초기 미국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중국에 편향될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 우려를 이재명
후한 말 조조는 신하 왕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를 극찬하며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을 남겼다. “몸과 덕을 깨끗이 해 세상의 미담이 됐고 충성과 능력으로 업적을 이뤘으니 세상에 알려진 이름(名)과 실상(實)이 서로 꼭 들어맞는다”는 찬사였다. 이름은 존재를 지칭하는 기호를 넘어 그 존재가 지향하는 본질과 스스로 증명해야 할 책임의 크기를 담아낸다. 1월 22일 ‘관세국경인재개발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한 관세청 교육기관의 현판을 바라보며 필자가 느낀 감회 역시 그 이름의 무게와 깊이 맞닿아 있다. 관세청은 지금 정체성의 전환점에 서 있다. 지능화되는 초국가 범죄와 급변하는 통상 환경 속에서 관세청은 더 이상 ‘세(稅)를 징수하는 기관’에만 머물 수 없다. 국경 단계에서 국민 안전과 국익을 지키는 ‘관(關) 수호 기관’으로서의 기능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관세청은 ‘AI로 공정 성장을 선도하는 관세청’이라는 비전을 수립했다. 세상을 혁신하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 국경 수호와 무역 원활화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비전을 구현하는 출발점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과거 에너지 산업은 ‘얼마나 더 많이 생산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대용량의 발전소를 빠르게 건설하고 싼 연료를 투입해 가능한 많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 국가의 경쟁력이었다. 수요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전기를 어떻게 옮길 것인가’는 큰 문제가 아니었고 ‘전기를 얼마나 깨끗하게 만들 것인가’ 역시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전력 시스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에너지 산업의 질문은 달라지고 있다. ‘얼마나 많이 만드는가’뿐만 아니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 만들어진 에너지를 얼마나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친환경적이지만 동시에 예측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태양이 비치고 바람이 불 때만 전력을 생산할 수 있고 생산한 전기를 즉시 사용하지 못하면 버려지기도 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전력 수요보다 공급이 많을 때 발생하는 출력제어가 반복되며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특성 때문에 에너지 전환은 친환경 발전 설비의 확대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저장과 조율, 그리고 효율화가 함께 작동할 때 전환은 지속 가능해진
기고
초임 검사 시절 선배들이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중에 ‘육조지’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집구석은 팔아 조지고, 수형자는 먹어 조지고, 교도관은 세어 조지고, 형사는 패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는 이야기였다. 집에서는 재판 비용을 마련하느라 세간을 팔고 수형자는 수형 생활을 견디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사식을 사 먹는다는 것이었다. 또 교도관은 혹시 모를 도주를 막기 위해 틈만 나면 수형자 숫자를 헤아리고 형사는 증거의 왕이었던 자백을 받기 위해 폭행을 일삼는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검사는 보강 조사를 한다며 피의자를 여러 번 소환하고 판사는 어떻게든 선고를 늦추기 위해 재판 기일을 미룬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소설가 정을병 선생께서 1974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발표한 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해준 것은 이유와 명분이 있었다. 기록 너머에 숨어 있는 진실이나 사연, 빠진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것이 이유였다. 또 경찰 조서와 검사 조서의 증거능력이 다르니 이를 보강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필자도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소환 조사를 해보면서 숨은 진
백상논단
인공지능(AI) 이야기가 도처에서 들린다. 정부와 산업계는 대한민국을 AI 3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면서 에너지·자금·인재를 퍼부을 기세다. 기업이나 교육 현장에서는 효율성과 창의성을 높이겠다고 도입을 서두른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학습해 인간의 의사 결정을 돕는다. 질병·재난·범죄 등 많은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동시에 대량 실직, 증강된 사이버 전쟁, 인간에 의한 AI 통제 불능 등 걱정거리도 많다.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AI가 가져올 민주주의 퇴행에 주목한다. AI가 허위 조작 정보를 사실처럼 더 쉽게 만들고 이를 더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많이들 알게 됐다. 선거 때마다 나도는 딥페이크 영상에 경계심을 갖게끔 시민들의 학습도 이뤄졌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여론 조작을 넘어 AI가 직접민주주의 기제를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AI는 정치적 행위자가 콘텐츠를 쉽게 만들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지지자를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그럴듯한 내러티브로 정치적 설득을 도와주는 값싼 무기가 됐다. 누구라도 AI의 도움을 받아 법안이나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고 AI로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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