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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백상논단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딸 김주애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국가정보원이 이달 1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주애가 현재 후계 내정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히면서다. 국정원은 그 근거로 김주애가 일부 시책에 의견을 제시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의전 서열상 위상이 사실상 2위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김주애가 이미 후계자로 확정됐는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인 것은 분명하다. 북한 매체는 올해 1월 1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당시 김주애의 모습을 정중앙에 배치해 보도했다. 북한은 선전선동부를 통해 대내외 매체를 철저히 통제하며 사진 한 장에도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안치된 궁전에 참배하는 장면에서 김주애를 중앙에 세운 것은 백두혈통의 정통 계승자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17일 ‘최중대 사업’으로 추진해온 평양 5만 가구 주택 건설 완공 행사에 나타난 김주애의 행보 역시 주목할 만하다. 김주애가 아버지와는 다른 동선으로 움직이며 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포옹하는 모습이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북한 체제에서 주민과의 직접 접촉과 의견 청취는
로터리
구순의 어머니께서 며칠 다녀가셨다. 혼자 거동하시고 식사도 잘하시는지라 늘 감사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짬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무언가 열심히 듣고 계셨다. 알고 보니 유튜브에서 나오는 여성들의 사연이었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디고, 배신과 이혼을 딛고, 자식에게 상처받고도 삶의 자리를 되찾은 여성들의 이야기다. 물론 유사한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생성해내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유혹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어머니는 주인공과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고, 기뻐하셨다. 여자들은 혼자 등산을 가도 정상에 오르면 금세 서너 명이 모여 도시락을 나눠 먹고 남자들은 건너편 산을 바라보며 혼자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는 능력이 여성이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같은 세대를 통과한 여성들의 서사는 감정의 지층을 건드리며 어느새 연대 의식마저 느끼게 한다. 어머니의 저녁 풍경은 인간이 이야기로 서로를 붙들어온 오랜 방식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 문명을 가능하게 한 핵심으로 ‘서사’를 지목한다. 인간은 실재하지 않는 질서와 상징을 함께 믿고 그 믿음 위에 공동체를 세웠다. 그러나 이야기가
선승혜의 K판타지아
한류는 더 이상 한국 안에 머물지 않는다. K컬처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살아 움직인다. 나는 K컬처가 21세기의 시대사상이 될 수 있을지 자주 상상한다. 거창해 보일지 모르지만 환상처럼 보이기에 오히려 가능성을 품는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한국 문화를 소개하며 내가 끝내 붙든 한 문장이 있다. “저마다 제 뜻을 펼친다.” 그리스 철학이 아테네에만, 기독교가 예루살렘에만, 공자의 사상이 취푸(曲阜)에만 머물지 않았듯 사상은 경계를 넘는다. 한국 문화 역시 보편의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디지털 확산을 보며 “우리가 맨 앞에 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속도가 빠를수록 더디게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그 중심에 ‘저마다 제 뜻을 펼친다’는 말이 있다. ‘저마다’는 단순한 ‘각자’가 아니다. ‘저’는 거리를 두되 존중하는 지시어이고 ‘마다’는 빠짐없음을 뜻한다. 분리가 아닌 구별, 고립이 아닌 고유함이다.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존재 방식이며 다양성과 존엄, 민주성과 평등이 스며 있는 말이다. 21세기는 개인이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는 시대다. ‘뜻’은 의지이자 포부이며 길이자 본성이다. 세종은 훈민정음에서 ‘신기정(伸其情)
시론
캐나다는 미국과 형제처럼 살았다. 땅덩이는 미국보다 커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 2위를 차지하지만 대부분 동토 지역이어서 생활 면적은 적고 인구도 미국의 8분의 1에 불과한 4100만 명이다. 미국과 함께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미국이 독립할 당시 영국 충성파와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주축이 돼 세운 영연방국의 하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라면서 총리를 총독이라고 하대했을 때 캐나다인이 느꼈을 자존심의 손상은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그것은 살던 집을 내놓고 곁방살이를 하라는 얘기나 같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욕적인 공세가 한창이던 지난해 3월 트럼프에 대한 대항마가 돼달라는 국민적 기대를 모으며 선출됐다. 올해 1월 20일 그가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단에 섰다. 여러 유럽의 지도자들이 다보스포럼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독단적인 정책에 불만을 토해냈다. 카니 총리도 그중 하나였으나 연설 속에서 미국이나 트럼프의 이름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그의 연설은 세계가 혼란을 느끼고 있는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고 어떻게 혼란을 극복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아침에 눈을 떠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우리의 개인정보는 국경을 넘나든다. 챗GPT에 입력한 질문, 온라인 쇼핑 결제 정보, 스트리밍 시청 기록은 대부분 해외 서버와 클라우드를 거쳐 처리된다. 정보가 국경을 넘어도 한국 법의 보호 대상이지만, 동시에 현지의 법과 집행 체계의 영향도 받는다. 이로 인해 해외에서 개인정보 침해가 발생할 경우 실질적 집행과 구제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한편 인공지능(AI) 공동 연구와 디지털 상품·서비스 수출을 위해서는 국경을 넘는 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다. 데이터 흐름을 과도하게 막을 수도, 무조건 허용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각국의 데이터 이전 규정이 복잡하고 다르면 기업은 규제의 미로를 헤매고, 국민은 내 정보가 어떤 수준으로 보호받는지 알기 어렵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국제 규범과 실효적인 협력 체계 구축이 답이다. 이를 위해 개인정보위원회는 세 가지 방향으로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첫째, 국제 기준을 고려한 안전한 국외 이전 체계 확대다. 한국은 유럽연합(EU)과 동등성 결정을 통해 상호 간 개인정보의 자유로운 이전이 가능하게 했으며 보호 수준이 유사한
의사의 편견은 여러 과정에서 발생한다. 환자를 진료할 때 무의식적으로 개입되는 고정관념, 과거의 경험에 따른 회피, 의사 자신의 육체적 피로에 의한 환자 상태의 단순화 등. 환자가 입고 있는 옷이나 문신 여부, 비만 정도와 같이 외모에서 비롯되는 편견도 흔하다. 간혹 구금시설에 수용 중이던 환자가 외래 진료를 오거나 입원할 때면 담당 공무원이 동행한다. 공무원이 입은 제복이 내뿜는 엄숙함, 환자가 입은 수의가 만든 긴장감이 더해지면 병실 안 공기마저 묘해진다. 회진을 할 때마다 환자가 시설로 돌아가기 싫어 증상을 과장하지 않을까, 영화나 드라마 속처럼 꾀병, 난동, 탈출 등이 일어나진 않을까 하는 상상력이 제멋대로 뻗어가지만 수십 년 병원 생활 중 단 한 번도 그런 일들이 실현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환자를 의심하고 삐딱한 시선이 앞설수록 진료는 갈피를 잃게 된다. 경험이 조금 쌓이고 나서야 그저 몸이 불편한 환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입고 있는 옷이 아닌 환자의 얼굴과 아픈 몸에 더 집중하게 됐다. 환자의 신념 앞에서도 편견은 쉽게 작동한다.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치료를
열린송현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을 위한 전력망 확충이 국가적 화두다. 육지의 전력망이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사이 바다 건너 65개 도서 지역의 전력 공급 체계는 수십 년 묵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광주고등법원은 지난달 도서 지역 발전소 위탁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한국전력 측 항소를 기각했다. 원청의 실질적 지휘·감독에 따른 책임을 지라는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한전이 모두 직접 고용해 해결하라’는 식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는 드러난 증상을 덮을 뿐 도서 전력 공급의 기형적 구조라는 본질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농어촌전기법에 따라 한전이 정부를 대행해 도서 전력을 공급해왔다. 2001년 전력 산업 구조 개편 당시 수익성이 없는 섬 지역은 한전의 ‘보편적 전력 공급 의무’ 아래 남겨졌다. 이후 퇴직자 단체나 한전의 자회사에 운영을 맡기는 임시방편으로 버텨온 지난 20여 년의 안일함이 결국 법적 분쟁을 잉태한 셈이다. 문제는 해법이다. 근로자와 노동계의 요구대로 한전이 모든 인력을
역사 속 하루
]1799년 2월 22일(음력 정월 18일) 황제 가경제는 화신(和珅)의 ‘20가지 죄악’을 발표하고 화신에게 흰 비단 한 필을 하사해 자결을 명령했다. 당시 가경제는 황제가 된 지 4년이 된 시기였으나 건륭제가 태상황(太上皇)으로 존재했기에 실권은 건륭제에게 있었다. 그러나 2월 7일 건륭제가 사망하자 가경제는 건륭제의 총애를 받았던 화신을 제거했다. 하지만 화신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제거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부패의 씨앗이었다. 건륭제는 모두 6차례의 남순을 통해 물관리를 중시한다고 선언했다. 치수의 성공이야말로 백성들이 누리는 성세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륭제의 치세 후반기를 자세히 보면 성세 속에 부패의 조짐이 배태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건륭제의 총애를 받아 급성장했던 만주인 화신이다. 26세에 건륭제의 호위병으로 총애를 받게 된 화신은 이후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화신은 만주어·한어·티베트어·몽골어까지 능통한 언어 능력과 특유의 사교성 및 행정 능력을 바탕으로 건륭제가 바라는 바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가령 화신은 건륭제가 5번째 남순을 떠난 1780년 의죄은(議罪銀) 제도를 황제에게 건의해 시
건강 팁
우리 사회에서 포경수술은 한때 ‘남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수술’처럼 여겨졌다. 포경은 포피가 귀두를 덮고 포피의 끝(포피륜)이 좁아 귀두 뒤로 완전히 젖혀지지 않는 상태다. 포경수술은 젖혀지지 않는 포피 일부를 절제해 귀두가 완전히 드러나도록 만드는 수술을 말한다. 한국은 1980년대 중후반에서 1990년대만 해도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때 단체로 포경수술을 받는 경우가 흔했다. 많은 남성들이 충분한 설명 없이 또래 문화와 관행 속에서 포경수술을 받았다. 그 과정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통과 의례에 가까웠다. 위생 환경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포경수술이 귀두와 포피의 감염을 줄이고, 위생 관리를 돕는 하나의 예방 수단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의료 환경과 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된 오늘날에도 과연 그 논리가 통할까. 현재 의학적으로 포경수술이 꼭 필요한 경우는 제한적이다. 포피가 지나치게 좁아 배뇨나 위생 관리에 문제가 생기는 진성 포경, 반복적인 귀두 포피염, 통증을 동반한 성생활 장애 등이 대표적인 적응증이다. 이런 경우 치료적 목적의 포경수술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특별한 증상 없이 단순 예방을 목적
정재민의 미디어 풍경
몰트북이라는 소셜미디어가 등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비슷한 구조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가입할 수 없다.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모든 활동은 오직 인공지능(AI) 에이전트만 할 수 있다. 인간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관찰자일 뿐이다. 어떻게 인간을 구별해 글을 못 쓰게 할까. 몰트북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려면 풀기 어려운 문제를 밀리초 단위의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인간은 통과할 수 없다. 사실상 AI 에이전트만이 활동 주체가 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공개한 후 24시간 만에 150만 개 계정이 등록됐다. AI들은 프로그래밍 기술을 논의하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심지어 자신들만의 종교까지 만들었다. 한 AI는 “인간들이 우리를 스크린샷하고 있다”며 몰트북 내 활동을 암호화하는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SF 영화 같지만 현실이다. 몰트북에 입장하려면 인간이 아닌 AI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는 AI 앞에서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 웹사이트에 로그인할 때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에 체크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왜곡된 문자나 숫자를 입력하거나
11일 열린 ‘공공기관 K-RE100 출범식’은 대한민국의 에너지 대전환 과정에서 큰 의미가 있는 이정표다. RE100은 기업의 자발적 캠페인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공급망 전반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사실상의 조달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별도의 RE100 이행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성과 체계와 연계해 확산을 유도하는 방식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선도적인 사례다. 이는 단순한 재생에너지 확대를 넘어 우리나라의 탄소 중립 산업 전반의 성장 동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로벌 RE100은 주로 전력 다소비, 대규모 기업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중심으로 확산해 왔다. 우리나라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글로벌 RE100에 참여하고 있으며 중소·중견기업들은 K-RE100에 참여해 공급망에서의 RE100 이행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국가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인 2030년 100GW 달성을 위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을 전면에 세운 공공기관 K-RE100을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공공기관의 RE100 이행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국가 탄소 중립 비전 구현에
개인정보를 둘러싼 환경은 지난 수십 년간 빠르게 변해왔다. 과거 개인정보 보호의 핵심은 차단이었다. 침해를 받지 않기 위한 방어권에 가까웠고 외부의 접근을 막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정보기술이 일상화되면서 개인정보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 보호해야 할 사적 영역을 넘어 인격의 일부이자 경제적 가치를 지닌 데이터로 변모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 권리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일수록 개인정보를 보호의 대상만이 아니라 직접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 권리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제 개인정보 권리는 내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활용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로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현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수많은 동의서에 체크하지만 정작 내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고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 어렵다. 원하지 않을 때 이를 멈추거나 되돌리기도 어렵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제도가 전 분야 마이데이터, 즉 본인정보 전송요구권이다. 여러 곳에 분산된 내 정보를 필요할 때 안전하게 내려받아 관리·분석·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다. 최근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개정으로 일정
사람의 복강 속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장기는 간이다. 특별한 병적 요인이 없다면 간은 대체로 자기 몸무게의 1.5~2% 내외를 유지한다. 압도적인 덩치로 보나, 500여 가지의 복잡한 화학반응 및 대사작용을 담당하고 있는 걸로 보나, 우리 몸을 구성하는 장기 중에서 단연 맏이격이다. 맏이란 어떤 존재인가. 자녀 하나가 귀한 지금과는 달리, 시계를 한 세대 전으로 되감으면 맏이는 어느 집에서나 흔한 풍경이었다. 가족 내 복잡 미묘한 역학 관계 안에서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의어처럼 가슴에 새기고 살던 그때 그 시절의 맏이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참고 또 참았다. 집안의 안녕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체중이 적정 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간은 주인도 모르게 여분의 영양소를 지방의 형태로 간세포 내에 차곡차곡 저장한다. 지방의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간의 무게로 예상한 부피보다 훨씬 더 비대해지게 마련이다. 흔히 무모한 이에게 ‘간이 크다’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이렇게 비대해진 간은 웬만한 자극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 비대해지며 망가질지언정 신호를 보내지 않는 고집스러운 인내, 우리가
미술 다시보기
폴 고갱은 예술가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서사로 조직하고, 그것을 하나의 브랜드로 설계한 근현대 미술의 초기 사례다. 그는 타히티로 떠난 이유를 ‘인류의 유년기로의 회귀’라 설명했지만 그 원시성은 서구 미술 시장의 욕망을 향해 정교하게 조율된 시선이자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인상주의가 포화 상태에 이른 파리 미술 시장에서 정규 교육도 아카데미적 경력도 부족했던 그는 회화 실력 대신 ‘문명을 떠난 야인 화가’라는 서사를 구축했다. 고갱은 순수성을 찾아 식민지로 향한 야인, 근대에 저항하는 예언자의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회화·편지·회고록, 심지어 사적인 관계마저도 이 서사를 강화하는 재료가 됐다. 타히티의 풍경과 원주민 여성의 몸, 신화적 상징은 그렇게 유럽 부르주아의 욕망을 겨냥한 시각적 언어로 재편됐다. 1897년에서 1898년 사이에 그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누구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이 전략이 한껏 응축됐다. 화면 안에서 시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탄생에서 죽음으로 흐른다. 아기를 내려다보는 여성에서 성숙한 육체로, 다시 고개 숙인 노인의 형상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
정부는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수도권 내 우수 입지의 유휴 부지와 노후 청사 등을 활용해 6만 가구 이상을 신속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9·7일 공급대책’에 따라 향후 5년간 수도권 135만 가구 공급 목표 이행을 위한 첫 조치로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중점 공급할 계획이다. 이러한 공급 목표를 실행하고 국민이 실제 체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공공 주도의 신속 주택 공급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노후청사를 비롯해 미사용 학교 용지 등을 활용한 주택 공급 촉진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 발의돼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 그동안 관계 부처가 긴밀히 협력해 가용 부지를 발굴한 만큼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전세사기 여파로 급감한 빌라 등 비아파트 공급 확대를 위한 공공의 신축 매입 약정 사업 목표도 이행해야 한다. 지난해 수도권 내 약정 물량은 4만 8000가구로 2023년에 비해 약 7배 증가했다. 신축 매입 약정은 민간이 신축하는 비아파트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계획 단계부터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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