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서비스는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님
만화경
고대 로마는 귀족 계층인 ‘파트리키’와 평민 신분인 ‘플레브스’ 간 계급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광활한 토지와 원로원 고위직을 독점한 파트리키와 달리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플레브스는 과다한 부채와 잦은 군대 징집, 고위직 진출 제한 등의 굴레에 신음했다. 기원전 494년 불공정한 사회 시스템에 분노한 젊은 플레브스들은 집단적으로 로마를 떠나는 이른바 ‘평민 철수’를 단행했다. 체제 불안을 우려한 지배층은 호민관 제도를 도입해 평민 보호와 정부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했고 평민의 집정관 진출도 허용했다. 14세기 흑사병이 휩쓸고 간 영국 역시 비슷했다. 인구가 급감하면서 젊은 농민과 장인의 노동 가치는 크게 올랐지만 정부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정당한 임금 인상 요구를 외면한 채 전쟁 비용 명목으로 인두세까지 부과했다. 결국 1381년 6월 젊은 농민들이 ‘공정 사회’를 부르짖으며 반란을 일으켰고 이는 중세 유럽에 뿌리박힌 농노제 기반을 허물어 하층민 처우 개선의 계기가 됐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리비아·예멘·시리아 등으로 들불처럼 번진 ‘아랍의 봄’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매개로 한 청년 세대의
여명
이달 2일 대만 컴퓨텍스 SK하이닉스 부스를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7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E) 웨이퍼에 사인과 함께 문장 하나를 남겼다. ‘Please Make More(제발 더 만들어 달라).’ 세계 인공지능(AI) 가속기와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사실상 표준을 쥔 기업 수장이 한국 기업에 전한 말은 주문이 아니라 간청에 가까웠다. 사흘 뒤 황 CEO는 서울에 왔다. 나흘 밤 닷새 동안 머물렀다. 일정 내내 SK·삼성전자·현대차·LG·네이버·두산 등 대기업 총수와 경영진, 게임사와 스타트업 대표들을 잇따라 만났다. 엔비디아에 절실히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뿐 아니라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자동차·로봇·게임·플랫폼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리는 ‘피지컬 AI’의 재료가 한 나라 안에 거의 다 모여 있는 까닭이다. 엔비디아의 존재감은 황 CEO 개인의 화제성과 맞물려 방한 내내 더 커졌다. PC방 경품 행사와 예능 출연, 야구 시구, 삼겹살과 소맥이 기업 협력 의제보다 더 주목받기도 했다. 엔비디아가 게임 생태계에서 성장했고 한국이 반도체와 게임 문화를 함께 가진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낯선 조합은
기자의 눈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7명의 사상자가 나와 유족과 동료는 물론 사회에 큰 슬픔을 안겼다. 해당 사업장에서 폭발 사고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과 2019년, 올해까지 8년 새 세 차례나 유사한 사고가 잇따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안전 관리 책임에 대한 날 선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방산은 화약과 미사일·발사체 등을 다뤄 0.1%의 오차조차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성을 지녔다. 지난해 10월 미국 테네시주 군용 폭약 제조 공정(AES)에서도 대규모 연쇄 폭발로 16명이 희생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산 기술력과 인프라를 보유한 미국조차 화약의 물리적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산은 숙명적으로 구조적 위험성과 전쟁 무기를 만든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짊어져 많은 기업들이 기피하는 분야다. 과거 가전·금융·방산 사업을 아우르던 미 제너럴일렉트릭(GE)이 1990년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같은 부담 때문에 방산 부문을 마틴마리에타(현 록히드마틴)에 매각했다. 삼성그룹이 2015년 삼성테크윈을 한화에 매각한 배경에
청론직설
유권자들이 6·3 지방선거에서 여야 어느 쪽에 완승도 완패도 안겨주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16곳의 광역단체장 선거 중 12곳에서 이겼으나 서울시장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서울·대구시장과 경북·경남지사직을 간신히 지켰지만 부산·울산시장과 충북·충남도지사 선거에서 패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 대해 “여권의 오만과 야당의 무기력에 대해 유권자들이 동시에 경고장을 던진 것”이라며 “정치를 복원하고 국정과 당을 쇄신하라는 민심의 명령이 담긴 메시지”라고 진단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을 맡고 있는 강 교수는 집권 2년 차를 맞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집권 초반 ‘모두의 대통령’을 약속했던 이 대통령이 요즘에는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면서 “내란 청산 프레임이 이제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 이번 선거로 확인된 만큼 진영을 나누기보다는 국론 통합으로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6·3 지방선거를 통해 나타난 민심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높은 편이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윤석열
왈가왈부
경제 6단체가 8일 공동성명을 내고 “이재명 대통령이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한 후보자는 기업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규제 혁신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앞장서 달라”는 당부도 했죠. 인공지능(AI) 대전환이 시급한 우리 기업들은 지금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중동 불안, 3고(고환율·고금리·고물가) 위기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를 지낸 한 후보자가 총리에 취임하면 노조에 치우친 노동정책을 바로잡고 기업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는 정책 발굴이 본격화할 수 있을까요.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8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월평균 특별급여가 대기업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월평균 특별급여가 20만 8000원으로 대기업(119만 5000원)의 17.4%에 그쳤죠. 삼성전자발(發) ‘N% 성과급’ 요구가 자동차·바이오·플랫폼 등 전 산업으로 퍼지면서 임금 양극화는 더 심해질 듯하네요. 대·중기 양극화 해소가 공염불로 끝나지 않도록 정부가 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1980년 7월 30일 전두환 신군부는 개인 과외를 전면 금지하고 대학 본고사를 폐지하는 교육 조치를 군사작전처럼 발표했다. 이때 내신제(10등급)가 대학 입시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명분은 공교육 정상화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뒤 국민적 저항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교육 평준화 등을 앞세워 민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았다. 고교 내신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고교 내신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며 변덕이 죽 끓듯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에는 ‘5·31 교육개혁’으로 15등급제로 세분화되고 학교생활기록부가 도입됐다.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는 ‘수·우·미·양·가’ 절대평가와 수행평가가 도입됐다. 내신 줄 세우기 경쟁을 줄이자는 취지였지만 전국 고교에서 ‘수’를 남발하는 내신 인플레이션이 부작용으로 뒤따랐다. 내신의 변별력이 사라지면서 대학과 수험생 모두 혼란에 빠졌다. 노무현 정부가 이를 다시 손봤다. 2005년 고교 1학년부터 9등급 상대평가를 적용해 2008학년도 대입에 처음 반영했다. 그러나 상위 4%에만 1등급을 주면서 학생들은 0.
동십자각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자주 방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엔비디아는 AMD에 맞서 게임에 최적화된 그래픽카드·그래픽칩셋을 개발해 고군분투하던 시기였다. 그는 용산전자상가 외에도 PC방·게임사 등을 찾아다니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판매했고 이를 기반으로 한 게임 개발을 적극 지원했다. 게임 이용자, 개발사, 인프라를 갖춘 한국 시장은 게임 시장에서 GPU가 자리잡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초창기 엔비디아가 생각난 건 황 CEO가 7개월여 만에 이번에 한국을 또 찾으면서다. 이번 방한은 그야말로 황 CEO의 ‘광폭 행보’다. 황 CEO가 방한 기간 만나는 기업의 면면부터 이전과 달라졌다. LG·현대차·SK·두산·엔씨·네이버·크래프톤 측과 황 CEO와의 만남이 성사됐다. 노타AI·위로보틱스·리얼월드 등 스타트업 대표들도 이번 방한 기간 열리는 엔비디아의 각종 행사에 초대됐다. 게임 회사 대표부터 전자상가·PC방 사장님까지 GPU를 판매하기 위해 적극 영업을 뛰던 그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에 더해 엔비디아의 AI 생태계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끝났다. 대한민국 축소판이라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 만큼 여당은 뼈아픈 결과를 받았다. 그간 만신창이였던 보수 진영으로서는 오세훈과 한동훈이 승리함으로써 완벽하지는 못해도 계엄과의 단절을 향한 발판을 놓았다. 보수는 이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의석수가 이전보다 4석이나 줄어든 여당은 민심의 경고를 확인했을 것이다. 선거가 끝난 뒤 도착한 청구서는 하나둘이 아니다. 일단 제도 신뢰의 청구서.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행태에 대해 반드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아무리 유권자의 상당수가 사전투표를 했다고 해도 본투표 투표용지 인쇄를 전체 유권자의 50%로 간당간당하게 하한선을 설정한 이유가 고작 투표용지의 분실과 도난, 유출 우려 때문이라고? 납득하기 어렵다. 또 특정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집중적으로 터진 경위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무능의 문제인지, 구조적 문제인지, 혹은 제도 설계의 허점인지 살펴야 한다. 대충 얼버무리면 국민적 의구심은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나사가 제대로 풀린 선관위의 존재 이유 자체가 의심받고 있다는 점을 정치권
월드컵은 한때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치킨집 대목’이었다. 한국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밤중에도 치킨집 전화기에 불이 났고 편의점 맥주 진열대는 빠르게 비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한국·우루과이전 때는 몰려드는 치킨 주문에 배달 앱이 일시적 서비스 장애까지 겪었다. 자영업자들에게 월드컵은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매출을 올려주는 경제 이벤트에 가까웠다. 그랬던 월드컵이 달라졌다. 북중미 월드컵 개막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거리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다. 12일 한국과 체코의 첫 경기를 앞두고도 들뜬 기색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같은 날 예정된 미국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기업공개(IPO)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시간이다. 한국 대표팀 조별 리그 경기는 모두 평일 오전 10시 또는 11시에 열린다. 퇴근 후 치킨집을 북적이게 만들었던 ‘월드컵 치맥’을 기대하기 어렵다. 편의점들이 점심 간편식 마케팅에 나서는 것도 그래서다. 직장인들이 경기 시청 후 찾을 점심 수요를 겨냥한 것이다. 치킨집 사장들의 한숨을 더 깊게 하는 것은 천정부지로 오른 닭고기 가격이다. 지난해 겨울
“은행부터 증권사까지 한국 금융기관들은 빠짐없이 만나고 있습니다. 다들 관심은 큰데 아직 함께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더군요.” ‘비트코인 서울 2026’을 찾은 브라질의 한 블록체인 업체 관계자는 온체인 금융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뜨겁지만 이를 사업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미흡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짧은 대화를 마친 그는 서둘러 다음 미팅 장소로 향했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참가자들뿐 아니라 국내 금융사 실무진과 글로벌 웹3 기업 관계자들이 명함을 주고받으며 쉬는 시간까지 쪼개 대화를 이어갔다. 비공개로 진행된 VIP 미팅 역시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행사에 참석한 글로벌 연사들의 메시지는 놀라울 정도로 같았다. 기술은 이미 상당 부분 해결됐다는 것이다. 토큰화 자체가 핵심 경쟁력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은 자산을 연결하고, 더 넓은 시장에서 유통시키며, 제도권 금융과 통합할 수 있느냐다.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비브 디와카르 캔톤파운데이션 총괄의 행보도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금융사와 정부 기관을 잇달아 만나느라 쉴 틈이 없었던 캔톤
여담
지난달 8일 미국 NBC의 심야 토크쇼 ‘투나이트쇼’에는 한국인에게 낯익은 장면이 등장했다.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김이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걸치고 그 위에 소주잔을 올린 뒤 테이블을 내려치자 소주잔이 맥주잔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명 ‘소맥’이었다. 진행자 지미 팰런은 놀라워했고 이내 ‘건배’와 ‘원샷’이 이어졌다. 대니얼 대 김은 “어린 시절에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지금처럼 ‘쿨’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한국 문화는 하나의 ‘현상’이 됐다고도 덧붙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구차한 설명이 필요했던 K는 그 자체로 빛나는 문화 자산이 됐다. K컬처는 그간 장르의 경계를 넘어 확장해왔다. K팝과 K문학을 넘어 뷰티와 푸드·패션·관광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는 더 이상 개별 산업의 성취에 머물지 않는다. 취향이자 생활 양식이며, 전 세계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감각의 언어가 됐다. 바야흐로 ‘K에브리싱(Everything)’의 시대다. CNN이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K컬처의 성공 비결을 조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한국적 스토리텔링의 힘이 크다. 한국 문화에는 격동의 현대사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4일 페이스북을 통해 6·3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송구스럽다”면서도 “어려웠던 선거였지만 희망의 불씨를 지켜냈다”고 자평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당원들과 함께 새 길을 찾겠다”고 강조했죠.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경북·대구·경남 외에 서울 수성에 의미를 두고 당 안팎에서 제기된 지도부 총사퇴 요구에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장 대표는 일부 지역에서 지원 유세마저 거부당할 정도로 당내에서도 외면을 받았는데요. 희망의 불씨를 지켜냈다는 말로 사퇴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 보수 재건을 위해 바람직한지 의문이네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4일 서울시장 선거 승리가 확정되자 “서울의 최대 현안은 뭐니 뭐니 해도 부동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선거 막판 “평범한 시민을 부동산 지옥으로 내모는 정부를 견제해 달라”는 오 후보의 메시지가 역전승의 원동력이라는 분석도 있죠. 실제 오 후보는 강남 3구와 용산·양천·영등포·동작·강동·중구 등에서 승리했습니다. 정부도 전월세난 등을 초래하는 각종 규제를 접고 서민 주거 안정 대책부터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1985년 11월 20일 마이크로소프트(MS)가 PC 컴퓨터 운영체계(OS)인 ‘윈도’를 출시했다. 1983년 IBM 호환 기종용 윈도를 처음 발표했으나 문제점이었던 일부 버그를 해결한 뒤 2년 뒤 윈도1.01을 전 세계에 정식 배포한 것이다. 명령어를 입력하는 도스 시스템이 남아 있던 초기 제품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1992년 도스식 명령어 체계를 완전히 벗어난 윈도3.1은 전 세계에서 대히트를 쳤다. 덕분에 MS의 창립자 빌 게이츠는 최고 갑부 자리에 올랐다. MS가 PC 시장에서 막강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중앙처리장치(CPU) 기업 인텔과의 끈끈한 협력이 한몫했다. 인텔과 MS는 PC 양축인 반도체칩과 소프트웨어의 동맹관계를 강화하며 시장 지배력을 높였다.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는 PC 황금기를 이끈 CPU와 윈도의 결합을 ‘윈텔(MS 윈도+인텔) 동맹’이라고 불렀다. 윈텔 체제에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애플 스마트폰의 등장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OS 무료 개방 등으로 윈텔 동맹의 아성이 도전을 받았다. 하지만 압도적인 생산 인프라, 강력한 하드웨어 호환성, 새로운 모바일 OS의 한계
목요일 아침에
미국 경제의 자존심 제너럴모터스(GM)가 극심한 경영난으로 2009년 6월 1일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부실 규모는 820억 달러로 미국 파산 보호 신청 기업 중 역대 네 번째였다. 1908년 설립된 GM은 포드·크라이슬러와 함께 ‘빅3’ 체제를 구축하며 세계 자동차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브랜드를 차종과 가격대별로 차별화하는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1930년대부터는 포드도 제쳤다. 1954년 미국 시장 점유율이 54%까지 치솟으면서 독과점 문제로 회사를 분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철옹성 같았던 ‘100년 기업’ GM의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는 왜 무너졌을까. 자동차 산업 전환기에 현실에 안주하다 혁신을 내세운 일본 기업에 추월당해 옴나위도 못 할 지경에 빠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1970년대 석유 위기를 겪으면서 일본 기업들은 연비가 뛰어난 소형 승용차를 앞세워 시장을 잠식했지만 GM은 경트럭에 집착하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GM의 기존 대량생산 방식은 도요타가 선보인 유연한 린(lean) 생산방식을 따라가지 못했다. GM의 1대당 조립 시간(HPV)은 26.8로 도요타의 21.6에 크게 밀렸
1850년 46㎞ 길이의 세계 첫 해저 통신선이 도버해협에 설치됐다. 영국·프랑스 간 전보 송수신 용도였던 이 케이블은 개통 당일 밤 어부의 실수로 절단됐지만 뒤이어 북해·아일랜드해·지중해·흑해 밑에도 전신 선로가 깔려 국제 통신 시대를 열었다. 1866년에는 4025㎞에 달하는 대서양 횡단 해저케이블이, 1902년에는 태평양을 횡단한 ‘올레드라인’이 개통돼 지구 반대편 소식을 즉각 접할 수 있게 됐다. 해저케이블은 현재 지구 둘레의 약 35배인 140만 ㎞에 달한다. 전 세계 데이터의 약 99%가 이 회선으로 전송되고 있다. 인터넷도 1988년 개통된 바닷속 광섬유 통신선 ‘TAT-8’ 등을 통해 전 세계로 연결될 수 있었다. 국제금융에서는 하루 약 10조 달러 거래가 바닷속 통신선을 타고 이뤄진다. 수중 인프라에는 해저 송유관, 수중 전력선 등도 있다. 1890년대 말 미국·유럽 연안의 유전과 육상을 연결하며 탄생한 해저 송유관은 현재 전 세계에서 총연장 수십만 ㎞에 달해 에너지 동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811년 처음 등장한 수중 전력선은 1954년 탄생한 해저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에 힘입어 지역과
정치
경제